日 기술, 세계 최고 자부했는데…'디지털 후진국' 추락 이유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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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에서 찾는 일본의 디지털전쟁 패인
닛케이, 20년전 구글 입사한 일본인 통해 분석
GAFA로 성장한 구글, 디지털후진국된 일본 원인은?
"인재 부족으로 변화에 대응하는 스피드 처져"
'완벽추구' 장인정인이 빠른 전환의 발목
한국이 디지털강국?…대만에도 따라잡혔다
"이 회사에서 나는 하위 그룹에서 중간 정도의 인간이겠구나 싶었다"일본에서 최고 두뇌를 자랑하던 인재들이 20여년 전 구글에 입사할 당시 받았던 첫인상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일본이 왜 디지털 경쟁에서 패했는지를 20년 전까지만 해도 신생 기업에 불과했던 구글에 입사한 일본인의 시각을 빌어 분석했다. 이 기간 동안 구글은 글로벌 정보기술(IT) 공룡 GAFA(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의 하나로 성장한 반면 일본의 디지털 경쟁력은 후퇴를 거듭했다.
◆日 디지털경쟁력 64개국 중 28위
◆인재·수평적인 문화·스피드·스케일
구글이 본격적으로 성장을 시작할 무렵 이 회사에 입사해 미국 IT기업의 진면목을 몸소 체험한 일본인들은 공통적으로 인재, 수평적인 회사 풍토, 스피드, 스케일을 일본의 패인으로 지적했다."눈 앞에 앉아있는 사람의 머리가 나보다 3~4배 빨리 돌아가고 있는게 느껴졌다"라는 말은 2003년 구글에 입사한 도쿠세 겐타로 검색 담당 디렉터가 면접관에게서 받은 인상이다. 도쿠세 디렉터는 '내가 구글에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라는 책의 저자로도 일본에서 인지도가 있는 인물이다. 스탠포드대학에서 석사를 따고 실리콘밸리의 여러 스타트업 기업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수재다.
그런데도 '이 회사에 들어가면 하위그룹의 중간 정도겠구나'라고 느낄 정도로 구글은 인재의 집합소였다. 도쿠세 디렉터에 따르면 대부분의 기업들이 조직과 자금력으로 승부를 보던 당시 구글은 국적과 인종을 가리지 않고 즉시 프로젝트에 투입할 수 있는 천재들이 우글거린 곳이었다.
그런데 불과 1~2년 사이에 위성사진을 표시하는 구글어스, 거리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주는 스트리트뷰 등의 기능이 순식간에 추가됐다. 이제는 스마트폰으로도 사용할 수 있게 진화하면서 구글맵은 매월 10억명 이상이 사용하는 '필수 툴'이 됐다.
또 하나는 스케일의 차이였다. 2008년 소니에서 전직한 이마이즈미 료이치 엔지니어링 디렉터는 '기술로 세계를 더 좋게 만든다'는 단순하지만 낙관적인 구글의 사고방식에 깜짝 놀랐다. 보통의 회사라면 매출 10% 증가, 이익률 5% 개선 같은 현실적이고 달성가능할 법한 목표를 내세우지만 구글은 '10배 혁신' 같은 큰 스케일을 권장했다.
그는 "일본에서 올해 사업목표를 '세계를 바꾸는 것'이라고 밝히면 웃음거리가 되지만 구글은 이를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실현시키기 위해 회사전력을 총동원한다"고 말했다.
이제는 임직원 15만명의 거대기업으로 성장해 플랫폼을 독점한다는 비판을 받는 구글. 초창기 성장할 때의 모습은 여전히 배울게 많다고 당시 구글에 입사한 일본 수재들은 조언했다.
◆日 장인정신이 트랜스포메이션 발목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 디지털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는 뉴노멀 시대가 요구하는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은 누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트랜스포메이션(사업전환)에 성공하느냐다. 성장기 구글의 체질은 뉴노멀 시대에 정확히 들어맞는 것이었다.반면 일본 기업의 강점과는 정확히 반대되는 특질들이다. 일본이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부품과 소재산업의 근간은 '모노즈쿠리(モノづくり)', 즉 장인정신이다. 매일 똑같은 일을 성심성의껏 반복하면 무엇이든지 조금씩 개선할 수 있다는 자세다. 하지만 이 장인정신이 일본 기업의 빠르고 정확한 트랜스포메이션을 어렵게 해서 일본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서비스업의 주류는 애자일 개발방법론(Agile Software Development)을 따른다. 일단 기본 기능을 출시한 뒤 다수의 작은 기능을 계속해서 추가하고 업데이트하는 방식이다. 카카오톡과 같은 SNS 플랫폼이 조금씩 진화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반면 장인정신의 전통이 뿌리깊은 일본 제조업체들은 어설픈 제품을 내놓는 걸 수치스러워 한다. 최고품질의 완성품을 경쟁사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제공하는 것에 사활을 건다. 하루하루 트랜드가 변하는 현대의 사업모델에는 맞지 않는 방식이라는 지적이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