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길곤 서울대 교수 "데이터로 본 코로나 2년, '시민의식' 가장 빛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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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데이터 상황판' 제작“보건학과 교수가 아니라 행정학과 교수가 왜 코로나19 데이터를 모으냐고요? 정부의 방역 정책만큼은 데이터를 정확하게 보고 판단해야 해서 그렇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2년 동안 저와 제자들이 ‘데이터 사관’을 자처한 이유죠.”
작년 1월부터 코로나 데이터 수집
이동량·경제활동 등 40여개 지표
"韓 높은 개인방역으로 경제 선방
'일상회복' 방향도 데이터로 정해야"
서울대 행정대학원에는 특이한 온라인 게시판이 하나 있다. 코로나19 확진자 수, 위중증 환자 수 등은 물론 코로나19와 관련한 신용카드 매출과 영화관 매출 변화 등 40여 개 지표를 한데 모아놓은 ‘코로나19 위험도 상황판’이다. 코로나19가 전파되기 시작한 지난해 초부터 고길곤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사진)와 제자들이 매일 관련 데이터를 기록하고 있다.최근 한국경제신문 기자와 만난 고 교수는 “질병관리청도 기초적인 자료를 제공하고 있지만 의미 있는 분석을 하기 위해서는 경제, 문화, 산업 등 다양한 지표를 비교해야 한다”며 “학자, 행정가, 언론인 등 누군가가 유용하게 쓰길 바라는 마음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했다.
그가 집계하는 데이터 지표는 크게 다섯 가지로 나뉜다. △감염 △검사 및 치료 △백신 접종 △일상회복 후 사회·경제적 지표 △일상회복 후 집단별 위험도 지표다. 질병관리청, 통계청, 서울시, 한국은행,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등이 제공하는 자료를 취합해 비교 분석한다. 일상회복 정책이 시행되면서 일상회복 관련 지표에 더 공을 들이고 있다.
고 교수는 “일상회복이 시작된 11월부터는 인구이동량 지표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돌아왔다”며 “특히 백신 접종 이후 이동량이 크게 늘어나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그가 코로나19 관련 데이터를 모으기 시작한 건 지난해 1월 무렵. 그는 “중국 내 코로나19 관련 데이터들을 보면서 심상치 않다는 걸 직감했다”고 말했다. 평소에도 한국 사회를 데이터로 분석하는 강의를 해온 만큼 코로나 사태도 데이터로 분석해보기로 했다. 이후 제자들과 함께 데이터를 자동 수집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데이터를 쌓아나갔다.
고 교수는 “연구비를 받지 않다 보니 게시판 접속이 몰리면 가끔 속도가 느려지는 게 조금 아쉽다”고 웃으며 말했다.
지난 2년간의 코로나19 사태를 데이터로 분석했을 때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그는 “우리 국민의 높은 개인 방역 의식이 경제 활동을 지켜냈다는 점”을 꼽았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평균적으로 이동량이 50~60%까지 급감한 데 비해 한국은 최대 30% 정도 감소하면서도 비교적 경제 활동을 잘 이어나갔다는 얘기다.고 교수는 “이동성이 줄지 않으면서 경제 활동을 이어나갔다는 건 시민들의 철저한 방역 참여가 돋보인 결과”라며 “이런 데이터가 주는 시사점을 참고해야 한국 사회에 적합한 ‘일상회복’ 모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