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특집 : 현대인의 호시(號詩)> 讚先笑先生(찬선소선생), 姜聲尉(강성위)

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
讚先笑先生(찬선소선생)

姜聲尉(강성위)皆謂笑招福(개위소초복)
世稀多笑人(세희다소인)
對人吾先笑(대인오선소)
誰向吾人顰(수향오인빈)

【自注(자주)】先笑金周植先生之雅號也先生曾學於高大久務於大宇亦專於事業今卽保家奉母伴鶴自適(선소금주식선생지아호야선생증학어고대구무어대우역전어사업금즉보가봉모반학자적)

[주석]
* 讚(찬) : ~를 기리다. 타인을 위하여 지어주는 시문에 많이 사용되는 말이다. / 先笑先生(선소선생) : 선소 선생님.
皆謂(개위) : 모두가 ~라고 하다. / 笑招福(소초복) : 웃음이 복을 부르다.
世稀(세희) : 세상에는 ~이 드물다. / 多笑人(다소인) : 많이 웃는 사람.
對人(대인) : 남을 대하다, 남을 만나다. / 吾先笑(오선소) : 내가 먼저 웃다.
誰(수) : 누가. / 向吾人(향오인) : 나를 향하여, 나에게. ‘吾人’은 ‘나’라는 뜻이다. / 顰(빈) : 얼굴을 찡그리다, 이맛살을 찌푸리다.* 自注(자주) : 자기 작품에 자기가 주석을 붙인 것. / 先笑金周植先生之雅號也(선소김주식선생지아호야) : 선소는 김주식 선생의 아호이다. / 曾學於高大(증학어고대) : 일찍이 고려대에서 공부를 하다. / 久務於大宇(구무어대우) : 오래도록 대우에서 근무하다. / 亦專於事業(역전어사업) : 또한 사업에 전념하다. / 今卽(금즉) : 지금인 즉, 지금은. / 保家(보가) : 가족을 보전하다, 가족을 거느리다. / 奉母(봉모) : 모친을 봉양하다. / 伴鶴(반학) : 학과 짝하다. 은자처럼 지낸다는 말이다. / 自適(자적) : 유유자적이다.

[번역]
선소 선생을 기리며

다들 웃음이 복 부른다 하면서도
세상에는 많이 웃는 사람 드물지
남을 대하여 내가 먼저 웃는다면
누가 나를 향해 얼굴을 찡그리랴 【자주】선소는 김주식 선생의 아호이다. 선생은 일찍이 고려대에서 공부하고 대우에서 오래 근무하였으며, 또한 사업에 전념하였다. 지금은 가족을 거느리고 모친을 봉양하며, 학과 짝하여 자적(自適)하고 있다.

[창작 노트]
호시(號詩)는 간단히 말해 호의 뜻을 설명하거나 호에 모종의 의미를 부여하는 시라고 할 수 있다. 호가 호 주인의 지향(志向)을 개략적으로 알게 해주는 것이라면, 호시는 그 지향을 구체적으로 알게 해주는 것이므로, 호가 있으면 당연히 호시가 있을 법하다. 그러나 실제로 어떤 호에 호시가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호시는 본인이나 누군가가 작정하고 짓지 않으면 좀처럼 ‘지어지지 않는’ 시이기 때문이다. 조선 중엽의 정호신(鄭好信) 선생은 호가 삼휴정(三休亭)인데 다음과 같은 자작 호시를 남겼다.

芳辰賞花(방신상화) 아름다운 때에 꽃을 감상하다가
花落則休(화락즉휴) 꽃이 지면 쉬고
良宵對月(양소대월) 아름다운 밤에 달을 마주하다가
月傾則休(월경즉휴) 달이 기울면 쉬고
閒中得酒(한중득주) 한가한 중에 술이 생겨 마시다가
酒盡則休(주진즉휴) 술이 다하면 쉬리라이 호시를 통해 ‘三休’의 ‘休’가 아름답다는 뜻이 아니라 쉰다는 뜻임을 알 수 있으니, 불필요한 오해를 피할 수 있어 무엇보다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삼휴정’을 세 가지가 ‘아름다운’ 정자로 보더라도 그리 큰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그 세 가지가 무엇인지는 이 호시나 또 다른 기록을 보기 전에는 결단코 알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오늘 소개하는 호시의 주인인 선소 선생과 필자는 방송통신대 출석 수업을 계기로 인연을 맺게 되었다. 다들 아시다시피 방송통신대는 인생의 선배가 자발적으로 학생이 되고 인생의 후배가 도리어 선생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한, 매우 독특하면서 매력적인 배움터이다. 선소 선생이 이 학교를 졸업한 뒤로도 계속하여 서로 알고 지내게 된 것은 SNS라는 좋은 소통 수단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교류를 해오던 차에 자그마한 ‘사건’ 하나가 생겼더랬다.

필자가 그 언젠가 카카오톡 대문글로 “鏡子不先笑(경자불선소)”, 곧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라는 자작 시구(詩句) 하나를 걸어두었는데, 어느 날 선소 선생이 전화를 하여 “先笑”를 본인의 호로 쓰고 싶다는 뜻을 알려왔다. 필자는 이미 두어 개의 호를 쓰고 있던 중이어서 “先笑”라는 호에 굳이 욕심낼 필요가 없었던 데다, “근사한 식사”라는 제안에 혹하여(^^) 그 호를 그날로 바로 넘겨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先笑”는 마침내 김주식 선생의 아호가 되었던 것이다.

언제나 기품 있는 외모에 잔잔한 미소를 먼저 곁들이는 선소 선생에게는 사실 이 “先笑”라는 호보다 더 잘 어울릴 만한 호가 없을 듯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호가 생겨 그런 미소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런 미소가 있어 “先笑”라는 호가 운명적으로 따라가게 된 것은 아닐까 싶다. 물건에는 각기 주인이 있다는 뜻의 “물각유주(物各有主)”라는 말이 어찌 호엔들 적용되지 않겠는가!

예전에 필자의 선생님 한 분께서, “호가 사람이라면 호시는 집이고, 호가 칼이라면 호시는 칼집이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깃들 곳이 있어야 하니 나중에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때 타인에게 덜렁 호만 지어주는 일은 하지 말거라.”라고 하신 가르침이 어제의 일인 듯 생생하기만 하다. 그렇지만 필자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받들지 못하였다. 이따금 친구나 지인들에게 호를 지어주면서 호시까지 지어준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몇몇 친구나 지인들에게는 그들의 호시를 지어 전한 적이 있기는 하다. 선소 선생의 이 호시 역시 그런 호시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그런데 필자는 호는 있어도 호시가 없다. 타인의 호에 집은 지어주면서도 정작 본인의 호는 한 데서 떨게 하고 있으니 도리가 아닌 듯하지만, 이상하게도 딱히 이거다 싶은 아이디어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으니 아직은 어쩔 수 없는 게 아닐까 싶다.

옛사람들은 호가 깃드는 곳이 시(詩)이면 호시 혹은 호사(號詞)로 불렀고, 문(文)이면 호기(號記) 혹은 호변(號辨)으로 칭하였다. 독자님들에게 혹 호가 있다면 본인들 호에 집을 마련해주는 따스한 계절이 되었으면 한다. 호시나 호기를 한글로 지어도 누가 무어라고 할 사람 없으니 겨울 숙제로 한번 도전해 보기를 권하는 바이다. 위의 시는 오언절구가 아니라 오언고시이며, 압운자는 ‘人(인)’과 ‘顰(빈)’이다.

2021. 11. 23.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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