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드라마보다 더해"…V리그 사령탑이 말하는 기업은행 사태

"무단이탈한 선수·코치 놔두고 감독만 경질…비상식적 대응"
"항명 사태 바로잡지 않으면 제2의 조송화·김사니 나올 수 있어"
"선수들이 감독을 고르는 팀인데, 그 팀에서 어떤 지도자가 선수들에게 한마디라도 할 수 있을까요?"(A 감독)"팀을 뛰쳐나간 코치를 감독대행에 앉힌다는 게 말이 됩니까. 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100명 중의 100명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할 겁니다."(B 감독)

주전 세터 조송화와 김사니 코치의 무단이탈 등으로 최근 팀 내 불화설이 불거지며 극도로 혼란을 겪고 있는 여자 프로배구 IBK기업은행이 지난 21일 서남원 감독과 윤재섭 단장을 동시에 경질하는 초강수를 뒀다.

사령탑에세 선수단 관리의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아직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최하위로 떨어진 팀 성적에 대해서 감독은 무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번 경질은 팀 규율을 어긴 선수와 코치를 향한 강력한 조치가 선행되기도 전에 감독 경질 카드부터 먼저 꺼내 들었다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다분하다.

김사니 코치와 조송화는 지난 13일 훈련 도중 팀을 떠났다.조송화는 감독의 물음에 대답도 하지 않는 불성실한 자세로 훈련에 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지난 16일 페퍼저축은행과의 경기를 앞두고 복귀했다가 다시 팀을 나갔다.

그런데도 IBK기업은행은 팀을 무단으로 이탈한 후 돌아온 김사니 코치의 사표를 반려한 뒤 "팀의 정상화를 위해 힘써달라"고 당부하며 '징계의 회초리' 대신 감독대행 지휘봉을 선물했다.서남원 감독은 안중에도 없이 홧김에 관두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떠난 코치를 구단에서 제발 팀에 남아달라고 붙드는 모양새다.
감독에게 반기를 든 코치에게 선수단의 기강을 세워달라고 요청하는 IBK기업은행의 희한한 대응 방식에 V리그 여자부 사령탑들은 할 말을 잃었다.

게다가 IBK기업은행은 조송화에 대해선 상응하는 조처를 할 것이라고만 했을 뿐 구체적인 징계 수위를 언급하지 않았다.

나머지 주축 선수들도 태업을 의심할만한 플레이로 일관해왔음에도 구단은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IBK기업은행의 대처 모습을 보면 오히려 감독에게 불만을 품고 팀을 이탈한 코치와 선수 편을 드는 모습처럼 보인다.

작금의 사태를 지켜본 A 감독은 "팀 내 불화나 선수의 무단이탈에 대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 감독이 지는 게 맞다"라면서도 "그런데 무단으로 이탈한 조송화와 김사니 코치에 대해서는 아무런 징계가 없고, 그런 김사니 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선임했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A 감독은 서 감독과 함께 부임한 조완기 수석코치가 최근 팀을 떠난 데 이어 서 감독까지 경질된 일련의 과정이 지난 시즌의 김우재 전 감독을 연상시킨다고 했다.

김우재 전 감독은 지난 시즌 팀을 플레이오프 무대에 올려놨음에도 모든 화살을 받고 떠났다.

IBK기업은행은 서남원 감독을 새로 영입해서 분위기 쇄신을 꾀했으나 서 감독은 9경기 만에 쫓겨났다.

김우재, 서남원 감독과 갈등을 빚으며 팀 분위기를 들쑤셔놓은 이들은 이번에도 면죄부를 받았다.
A 감독은 "몇몇 고참 선수들이 김사니 코치가 감독이 되도록 상황을 몰아간 것으로 보인다"며 "선수들이 감독을 고르는 팀에서 어떤 지도자가 선수들에게 한마디라도 할 수 있겠느냐"고 탄식했다.

B 감독은 IBK기업은행이 서남원 감독을 희생양 삼아서 이 문제를 어물쩍 넘어가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런 미봉책으로는 '제2의 조송화·김사니'가 또다시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B 감독은 "구단은 선수가 중요한 자원이고 감독과 코치는 언제든지 바꾸면 되는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그런데 감독이 가진 영향력이 있어야만 선수들이 감독을 믿고 따를 수 있다.

김사니 감독대행을 선수들이 과연 신뢰하고 존경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IBK기업은행 내부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에 말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상식선에서 판단하면 너무 말이 안 된다"며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100명 중의 100명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할 것이다.'막장 드라마'보다 더 심하다"고 혀를 찼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