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편견에 관한 이야기…방대한 서사에 빠져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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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간짜리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 출연 박지일, 정환국립극단이 오는 26일부터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엔젤스 인 아메리카’는 장장 8시간 동안 이야기가 펼쳐지는 대작 연극이다. 다음달 26일까지 공연하는 파트 1, 내년에 무대에 올리는 파트 2의 공연 시간이 각각 4시간. 배우로선 엄청난 도전이다. 대장정에 나선 박지일·정환 배우를 만났다. 이들은 “도전하는 마음으로 연습만 이례적으로 4개월 동안 하고 있다”며 “오랫동안 작품에 푹 빠져 있을 수 있어 배우로서 매우 행복하다”고 말했다.
박지일 "결이 다른 악랄한 캐릭터
아들 박용우도 함께 출연해 뿌듯"
정환 "복잡한 내면 표현에 초점"
국립극단이 내놓는 연말 대작
두 파트로 나눠 4시간씩 공연
26일부터 한달간 파트1 선보여
‘엔젤스 인 아메리카’는 미국 극작가 토니 쿠슈너의 대표작으로, 1991년 초연 당시 퓰리처상·토니상 등을 석권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세일즈맨의 죽음’ 등을 잇는 명작으로 꼽힌다. 대작인 만큼 1980년대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성소수자, 인종, 종교, 정치, 환경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를 하나로 아우른다.
“방대한 서사라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고 이질감도 들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연습을 할수록 그렇지 않다는 확신이 듭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차별과 편견이 존재하고 있잖아요. 결국 서로 따뜻한 시선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인 것 같아요.”(박지일)
작품은 8명의 배우가 함께 이끌어 간다.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배우 정경호, 전국향, 박용우 등이 출연한다. 박지일과 정환은 극의 서막을 강렬하게 열면서 이야기의 중심축을 담당한다. 박지일은 미국 정계를 좌지우지하는 ‘악마의 변호사’ 로이 역을 맡았다.“지금까지 다양한 역할을 해봤지만 이번 역은 결 자체가 다른 아주 악랄한 캐릭터예요. 거침없이 자기의 분노를 드러내기도 하고 교묘하게 자신의 약점을 감추기도 하죠. 내가 이 역할을 잘 표현하고 있나 끊임없이 의심하며 연습하고 있어요. 개막을 앞두고 막판까지 이렇게 연기한 건 처음인 것 같아요.”(박지일)
정환은 법무관으로 일하다 로이에게 워싱턴의 법무부 일을 제안받는 조 역을 맡았다. 로이는 조를 이용하기 위해 교활하게 설득하려 하고, 조는 고민을 거듭하며 그와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 두 인물 모두 성소수자로서 서로를 알아본다. “조는 화를 내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즐겁기도 한 복합적인 인물입니다. 어느 한면만 부각되는 순간 캐릭터의 폭이 좁게 느껴질 수 있잖아요. 그래서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고, 복잡한 내면을 정교하게 펼쳐 보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정환)1986년 연극 ‘죽음의 푸가’로 데뷔한 박지일은 방송과 영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연기를 해왔다. 정환은 2013년 연극 ‘갈매기’로 데뷔해 드라마 ‘검은 태양’ ‘모범형사’ 등에도 출연했다. 정환은 박지일에 대해 “선생님은 특별히 관여하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부분을 툭툭 얘기해주셔서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박지일은 “나이를 떠나 장벽 없이 같은 동료로서 소통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면서 신뢰가 쌓이고 연기할 때 훨씬 더 편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출은 연극 ‘와이프’ ‘언체인’ 등 감각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작품으로 주목받아온 신유청이 맡았다. 두 작품에도 출연한 정환은 신유청의 연출에 대해 “배우들이 연기할 때의 감정들을 고스란히 느끼는 분”이라며 “냉정하게 연출 노트를 보면서 감정 이입을 하는 것이 신기하다. 함께 작업하는 것 자체가 영광”이라고 했다.
박지일은 이번 작품에서 아들이자 국립극단 시즌단원인 박용우와 처음으로 함께 무대에 오른다. “아들이 배우가 돼 같은 무대에 서니까 정말 자랑스럽고 뿌듯해요. 그런데 막상 연습을 하려니 걱정이 되긴 했어요. 아들이 동료들과 같이 있을 때 행여 부족한 모습을 보일까 봐 신경 쓰였죠. 더 열심히 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이 작품의 파트 2까지 잘 마무리하는 게 두 배우의 당면 목표다. 정환은 “관객들의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있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박지일은 “무대를 무서워하면서도 무대에 서길 늘 갈망해왔다”며 이렇게 말했다. “무대에 서면 제 손짓 하나로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니 마술사가 된 기분이 들어요. 제가 흠모하는 경이로운 무대와 오래도록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