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격차'는 잊어라…이재용 "삼성, 아무도 가지 않은 길 가겠다"
입력
수정
지면A15
美 마지막 행선지 실리콘밸리5년 만에 미국을 찾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마지막 행선지는 실리콘밸리였다. 이 부회장은 반도체와 세트(완제품) 연구소인 DS미주총괄(DSA)과 삼성리서치아메리카(SRA)를 방문해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자”고 강조했다. 한 박자 빨리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해 경쟁사들을 따돌리는 ‘초격차’ 전략만으로는 생존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메시지다.
삼성전자 선행 연구조직 찾아
피차이 구글 CEO와 만남
미래 기술 협업 논의한 듯
“초격차만으론 안 된다”
23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21일(현지시간)과 22일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의 DSA와 SRA를 방문해 인공지능(AI)과 6세대(6G) 이동통신 등 차세대 핵심 기술 개발 현황을 점검했다. 이곳은 삼성전자 DS 부문과 세트(완제품) 부문의 선행연구를 맡아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이 부회장은 연구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미래 세상과 산업의 지도가 새롭게 그려지면서 생존 환경이 극단적으로 바뀌고 있다”며 “혁신 노력에 속도를 내달라”고 주문했다. 이어 “추격이나 뒤따라오는 기업과 ‘격차 벌리기’만으론 거대한 전환기를 헤쳐나갈 수 없다”며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를 개척해 새로운 삼성을 만들어가자”고 당부했다.경제계에선 이 부회장의 메시지에 ‘뉴삼성’의 방향이 드러난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전통적인 삼성의 성공 방정식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며 “향후 삼성의 경영 전략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글과의 기술동맹 강화
이 부회장은 22일엔 마운틴뷰에 있는 구글 본사를 방문해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와 면담했다. 두 사람은 시스템 반도체와 자율주행, 가상현실(VR) 등 미래 기술 분야에서 협업을 강화하자는 메시지를 교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이 개별적으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삼성전자와 구글은 ‘안드로이드 동맹’으로 불린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적용한 스마트폰 제조사 중 삼성전자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다.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분야에서도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업계에선 구글이 올해 말 자체 생산하는 스마트폰 ‘픽셀 시리즈 6’에 적용할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의 생산을 삼성에 맡길 것으로 보고 있다.이 부회장은 약 열흘간의 미국 방문에서 동부와 서부를 횡단하며 ‘분초 단위’ 강행군을 이어왔다. 매사추세츠주에서 누바 아페얀 모더나 공동 설립자 겸 이사회 의장, 뉴저지주에선 한스 베스트베리 버라이즌 CEO를 만났다. 워싱턴DC에서 백악관 관계자, 연방의회 의원들을 만나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문제 등과 관련해 의견을 교환했다. 이 부회장은 실리콘밸리 일정을 끝으로 귀국해 25일 재판에 출석할 예정이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