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 정 대표 "벤처투자가는 만화가…미래 그릴 상상력 있어야"

실리콘밸리 한인 VC
제이 정 밀레니엄파트너스 대표

인텔·삼성 거쳐 블랙스톤 VC 합류
'잡초정신'으로 언어·문화장벽 넘어
"VC 필요한 자질은 '상상력'
모빌리티·우주·로봇 성장성 높아"
JABCHO. ‘잡초’로 읽히는 이 알파벳 조합은 제이 정 밀레니엄테크놀로지밸류파트너스 대표(사진)가 얼마 전까지 쓰던 이메일 패스워드다. 인텔 본사 수석매니저, 삼성벤처투자 미국법인 상무, SK그룹 e모빌리티그룹 헤드(전무) 등을 거쳐 세계적인 투자회사 블랙스톤 계열 벤처캐피털(VC)에 합류한 정 대표가 굳이 잡초를 패스워드로 쓴 이유가 뭘까.

2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 대표는 “스스로를 ‘밟아도 다시 일어나는 잡초’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성공을 위해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달려왔다는 얘기다.그의 화려한 이력 뒤엔 고난의 순간이 적지 않았다. 자신의 삶에 대해 ‘턱걸이 인생’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미국 고교 재학 시절 “대학에 가겠다”는 그의 말에 교사가 피식 웃을 정도로 문제아 취급을 받았다. 미국 명문 UC버클리, 코넬대 경영전문대학원(MBA)을 거쳐 세계적인 반도체기업 인텔에 입사했지만 장벽은 만만치 않았다.

그는 현지인의 ‘이너서클’에 들어가기 위해 정공법을 택했다. 완벽하게 일을 해내는 것은 기본이고 짧은 영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공통 화제를 갖기 위해 미국 스포츠에 대해 공부했고, 분위기를 녹일 수 있는 농담도 미리 준비했다. 삼성벤처에서 일할 땐 투자한 회사의 이사회 이사를 맡아 창업자들과 친분을 쌓았다.

그렇게 20년, 정 대표는 실리콘밸리 딥테크(고급 테크놀로지)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스스럼없이 바비큐파티에 초대하는 벤처투자가가 됐다. 그는 “실리콘밸리 창업자들과 친해지기 위해 1 대 1로 만나 사적인 이야기를 먼저 했다”며 “이너서클에 들어가면서 많은 고급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상상력도 벤처투자가가 갖춰야 할 자질로 꼽았다. 주인공이 시계를 통해 소통하고 전화기를 들고 다니는 ‘형사 가제트’를 그린 만화가처럼 벤처투자가도 기업의 미래를 그릴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정 대표는 “실적이 없는 얼리 스테이지 기업에 투자할 때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밀레니엄뉴호라이즌스 2호 펀드를 준비 중이다. 딥테크와 모빌리티 업종에 속한 유망 스타트업을 초기 단계에 발굴해 투자하고 높은 수익을 거두는 것이 목표다.

모빌리티와 관련해선 “향후 10년간 혁신 기업이 계속 나올 것”으로 전망했다. 정 대표는 “2025년까지 세계적으로 2500억달러가 모빌리티 분야에 투자될 것”이라며 “무인자동차가 구현되는 과정에서 유망 스타트업들이 탄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딥테크 분야 중에선 특히 우주, 로봇 자동화 분야의 성장성이 높다는 게 그의 평가다. 정 대표는 “로봇이 인공지능(AI) 발달에 힘입어 복잡한 업무도 해낸다”며 “공장, 물류창고를 자동화할 수 있는 스타트업들을 스터디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황정수 특파원/이상은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