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들어놓는 것이 최고의 말과 글

한경 CMO Insight

광고에서 채굴한 경영 스티커 메시지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광고학회 제24대 회장)
김병희 서원대 교수
우리는 늘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소통을 잘 못하고 있다. 소통이 그토록 자주 강조되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불통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반증이다.

기업의 경영자나 정치인들도 소통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생각대로 잘 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소통을 그토록 중시하면서도 우리 사회는 왜 소통을 잘 못하는 것일까. 결국 나(발화자)와 상대방(수용자)의 의미 교환에서 상호작용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늘 일방적으로 전달하기만 하는데 무슨 상호작용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양방향 소통 혹은 쌍방향 소통이란 용어가 나왔으리라.

아디다스에서 기획한 제18회 독일월드컵 광고 ‘골키퍼’ 편(2006)은 뮌헨공항에서 뮌헨시내로 들어가는 고속도로에 설치된 대형 옥외광고다.상호작용이 가능한 온라인 광고가 아닌데도, 사람들과 광고의 상호작용을 유발하는데 성공했다. 광고에서는 축구 골키퍼가 날쌔게 몸을 날려 골을 잡아내는 장면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광고 모델이 누구인가 싶어 자세히 보니 축구 골키퍼 올리버 칸(Oliver Kahn, 1969~)이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다음 2008년에 프로 축구계에서 은퇴한 그는 누구인가?

현역 시절에 세계 최고의 수문장으로 평가받던 그는 세 번(1999, 2001, 2002)이나 ‘올해의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됐다.그가 바이에른에서 활약하던 14년 동안 그의 소속팀은 분데스리가 리그에서 8번이나 우승했고, 1996년의 유럽축구연맹컵 대회와 2001년의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우승했다.

그는 2002 월드컵에서 최우수 골키퍼에게 주는 야신상과 경기 최우수선수에게 주는 골든볼상도 수상했다.

당시 독일 언론에서는 이 광고가 운전자의 시선을 지나키게 집중시켜 사고를 일으킬 위험이 있다고 보도했다.신화 속의 거인처럼 도로 위로 뻗어 있는 골키퍼의 모습이 너무나 사실적이었다. 따라서 고속으로 달리던 운전자들이 잠깐 멈춤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아 사고의 위험성이 컸다고 한다.

운전자들이 광고판을 넋을 잃고 바라보다 사고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언론의 지적이었다. 대형 옥외광고는 마치 김소월의 <산유화>처럼 “저만치 혼자서” 설치돼 있었지만, 운전자 스스로가 반응하며 광고와의 상호작용을 시도할 가능성을 짚어낸 것이다.
아디다스의 독일월드컵 옥외광고 ‘골키퍼’ 편 (2006)
독일 졸링겐 지역에 있는 마토사의 하비(Hobby) 면도날을 알리기 위한 옥외광고인 ‘잘린 비둘기’ 편과 ‘잘린 바위’ 편(2009)을 보자.

도시 한 복판에 설치된 면도날 설치물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날카로운 면도날이 도심 한 복판에 서 있으니 행인들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거나(왼쪽), 잠시 걸음을 멈추고 광고를 자세히 살펴보며(오른쪽), 광고판에 말을 건네는 것 같다.

길 한가운데 설치된 이 광고판은 거대한 면도날 모양을 하고 있다. 설치물의 크기나 칼날의 예리함 때문에 호기심을 촉발하고 상호작용을 유발한다. 면도날 하단에 표기된 마토 졸링겐(Martor Solingen)은 졸링겐 지역의 마토라는 뜻이다.

졸링겐 지역에서 생산한 칼은 뛰어난 품질로 널리 알려져 있다. 독일 서부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 속해있는 졸링겐 지역에서는 칼과 가위 같은 날카로운 제품을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해 ‘칼의 도시’라는 별명을 얻었다.

광고 설치물 아래 쪽에는 날카로운 마토 면도날에 깔끔하게 반으로 잘린 비둘기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뒤를 돌아보며 지나가는 사람의 얼굴을 보면 비둘기가 정말로 진짜인지 의심할 정도지만, 이 또한 길바닥에 표현된 광고 설치물이다. 절단된 모형 비둘기도 처참해 보인다.

새들이 반으로 잘릴 정도로 면도날이 날카롭다는 점을 이렇게 표현했다(왼쪽). 마토 면도날은 거대한 바위도 단번에 잘라버릴 정도로 예리하다는 뜻이다.

바위의 무게까지 암시하기 위해 길 바닥의 표면도 쩍쩍 갈라지게 했다(오른쪽).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광고와 상호작용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마토의 하비 면도날 옥외광고 ‘잘린 비둘기’ 편, ‘잘린 바위’ 편 (2009)
두 광고에서 채굴한 경영의 스티커 메시지는 상호작용(Interaction)이다. 상호작용이란 둘 이상의 사람이나 대상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며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어떠한 사회적 현상은 구성원들의 사회적 상호작용이 결집돼 형성된다.

이처럼 사람끼리 서로 주고받는 상징적 행동에 대해서는 ‘사회적 상호작용’이란 용어를 쓴다.

온라인 미디어의 댓글도 사회적 상호작용 활동의 하나인데, 여론을 형성하기도 한다. 따라서 경영자들은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로 소비자와 사회적 상호작용을 시도해야 한다.

정치인들도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말은 제발 그만 하시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 메시지로 국민들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시도해야 한다. 상호작용의 가능성 여부를 전혀 가늠해보지 않고 막 내던지니까 헛발질을 자주 할 수밖에 없다.말과 글은 사람의 공감을 유발하기 전까지는 그저 맨송맨송한 말과 글일 뿐이다. 슬픔이든, 기쁨이든, 행복이든, 호기심이든, 뜨거운 어떤 감정을 일으켰을 때, 말은 명언이 되고 글은 명문이 된다.

소비자들이 무관심할 수 없도록 하는 카피가 최고의 광고이듯,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것이 최고의 말과 글이다. 그때 비로소 상호작용을 일으켰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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