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가 아니라는 것은 사업주가 입증하라"는 플랫폼종사자법안

지난 11월 11일,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이 ‘플랫폼 종사자 보호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하 ‘플랫폼 종사자법’)’ 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같은 제목의 플랫폼 종사자법안은 이미 같은 당의 장철민 의원이 올해 3월 18일에 발의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돼 있습니다. 6월에 환노위에서 검토됐고 법안심사소위에 회부돼 있습니다. 두 법안은 제목만 같은 것이 아니라 내용도 유사합니다. 같은 당 의원이 이미 발의해서 논의 중인 법안이 있는데, 그와 유사한 내용의 법안을 다른 의원이 다시 발의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서 장철민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플랫폼 종사자 보호와 디지털플랫폼 기업의 책임 강화를 목적으로 합니다. 주요 내용을 보면, 먼저 온라인 플랫폼 운영자의 책임으로, 플랫폼 이용계약서 서면 제공, 계약의 변경 또는 해지시 사전 제공, 종사자의 개인정보 보호, 정보제공, 공제사업 실시 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플랫폼 이용 사업자에게는 계약에서 정한 업무 이외의 업무 요구 금지, 손해 전가 금지, 보수지급 기준 변경시 사전 서면 제공, 계약 해지시 사전 서면 제공, 불이익한 조치 금지, 폭언·폭행·성희롱 및 괴롭힘, 임신·출산·육아 등을 이유로 한 불리한 처우 등의 금지, 플랫폼 종사자의 안전과 건강, 개인정보 및 사생활 보호 등의 책임을 부과합니다.정부의 책임으로 표준계약서 개발 및 보급, 사회보험 적용 지원 등의 의무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일견 플랫폼 종사자 보호를 위한 종합 법률안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 법안에 대해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분명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플랫폼 종사자에게 곧바로 근로기준법이나 노동조합법을 적용하면 될 것을, 별도의 법을 적용하도록 해서 근로자가 아닌 제3의 신분으로 잘못 분류되도록 했다는 것이 노동계가 이 법안을 반대하는 주된 이유입니다. 소위 “오분류”의 문제라고 합니다.

경영계는 이 법률이 플랫폼 노무제공 관계의 구조를 너무 좁게 이해해서 적용범위가 지나치게 좁고, 계약서 서면 제공과 해지・변경 시의 사전 서면 제공 등을 요구하는 것이 실태와 맞지 않으며, 플랫폼 운영자와 이용 사업자에게 지나친 부담을 부과하여 신규 사업자의 시장 진입을 어렵게 하는 진입장벽이 된다는 이유로 반대합니다.정부와 민주당은 당초 이 법안을 2021년 내에 통과시킨다는 계획이었기 때문에, 노사 양측이 일제히 반대하는 상황이 매우 난감했던 것 같습니다. 이수진 의원안의 추가 발의는 아마도 노동계의 우려를 불식시켜서 찬성하도록 만들고 플랫폼 종사자법의 국회 통과 동력을 되살리겠다는 의도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수진 의원안은 노동계의 반대 주장인 ‘오분류’ 문제에 대한 대책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바로 근로자성에 대한 입증책임 전환입니다. 플랫폼 종사자가 플랫폼 종사자법이 아닌 노동법을 적용해달라고 주장하면 원칙적으로 노동법을 적용해야 하고, 그 플랫폼 종사자가 노동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는 근로자가 아니라면 그러한 사실은 플랫폼 운영자나 이용 사업자가 증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래 입증책임은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이 져야하는데, 반대로 그 주장을 받은 사람이 반증하도록 바꾼다고 해서 ‘입증책임’의 전환이라고 합니다.

그 외에 플랫폼 종사자들이 단체를 만들어서 플랫폼 운영자와 이용 사업자에게 협의를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을 제외하면 이 법안은 장철민 의원이 발의한 플랫폼 종사자법과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이수진 의원이 발의한 플랫폼 종사자법 제정안은 장철민 의원안에 근로자성 입증책임 전환과 단체결성 및 협의요구권의 두 가지 사항을 추가하기 위해 발의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종사자를 노동법상 근로자로 볼 수 있느냐의 문제는, 플랫폼 종사자 뿐만 아니라 특수형태근로종사자를 둘러싸고도 오랜 기간 논란이 지속돼왔습니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의 신분이 인정되는 사람에게 특별한 보호를 해주는 법률이고 노동조합법은 근로자의 신분을 가진 사람에 한해서 단체를 결성하고 사용자를 향해 쟁의행위를 할 수 있도록 특별한 권한을 부여하는 법률이기 때문에, 이 법률들의 적용을 받으려면 과연 근로자가 맞는가에 대한 심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법원은 사업주와의 관계에서의 종속성을 심사해서 근로자로 볼 수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근로자성 인정 확대를 추구하는 노동계로서는 법원의 이와 같은 엄격한 요건 판단이 부담스러운 것이 당연합니다. 따라서 이를 우회하는 방법으로 근로자성을 간주하고 반증 책임을 사용자에게 전가하는 내용을 법률에 명시해달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플랫폼 종사자법을 신속히 통과시키기 위해 노동계와 경영계 중 일단 노동계의 반대 의견만 무마하면 된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가장 간단하고 쉬운 방법인 근로자성 간주와 반증책임 전가라는 선명한 방법을 택했습니다.그러나 입증책임 전환은 그렇게 간단하게 정하기만 하면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입증책임은 본래 주장하는 사람이 지는 책임으로, 입증책임을 상대방에게 전환하는 것은 매우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서만 인정되어야 합니다.

계약으로 체결돼 장기간 유지돼오던 어떤 법률관계가 있었는데, 당사자 중 한쪽이 갑자기 그게 아니었다고 하면서 다른 주장을 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간단합니다. 갑자기 주장하는 쪽이 자기 주장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것이 맞을까요? 아니면 그러한 주장을 당한 사람이 반증을 하도록 하는 것이 맞을까요? 새로운 주장을 제기해서 기존의 법상태를 바꾸고자 하는 사람이 자기가 그와 같은 주장을 하는 근거를 입증해야한다고 보는 것이 당연합니다.

“입증책임은 주장하는 자가 부담한다”라는 법원칙은 계약관계의 법적 안정성과 양 당사자의 신뢰 보호를 위해 오랜 기간 동안 확립되어온 매우 중요한 원칙입니다. 여러 가지 미흡한 점이 많아서 반대를 받고 있는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미흡한 점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무거운 법원칙을 간단히 무시하는 우회수단을 택하는 경솔한 입법 태도는 유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입증책임 전환이 실제로 입법된다면, 근로자성 인정 여부를 둘러싼 법률분쟁이 크게 증가하고,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는 단계에 있는 수많은 플랫폼 운영자와 플랫폼 이용 사업자들이 사업을 시작하거나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이미 자금력과 시장지배력을 확보한 일부 지배적 플랫폼 운영자의 독점력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점도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그밖에도 노동법 만능주의로 기우는 것도 경계해야 합니다. 이는 건전한 노사관계의 발전과 노동시장의 안정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플랫폼 종사자법을 무조건 통과시키려고 서두르기보다는 새롭게 제정하는 법률이 플랫폼 종사자의 보호와 플랫폼 산업생태계의 발전을 위해 제기능을 다할 수 있는 법률로 만들어질 수 있도록 기존 법안들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이준희 한국경영자총협회 노사관계법제팀장/법학박사(노동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