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딸 피해될까 '에볼라 구호대'도 몰래 갔죠"[인터뷰]

서은지 유엔 평화유지장관회의 기획단장
내달 7~8일 아시아 최초 PKO회의 총괄
"한국은 세계 유일 유엔군 지원받은 국가
PKO 역할 확대 중요해"
서은지 유엔 평화유지장관회의 기획단장./ 송영찬 기자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엔군’ 지원을 받은 국가인 한국이 유엔 평화유지군(PKO)의 미래를 논의하는 회의를 아시아 최초로 유치한 것은 의의가 큽니다.”

서은지 유엔 평화유지장관회의 기획단장은 29일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진행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유엔 가입 2년만에 PKO 활동을 시작한 유일무이한 나라”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한국은 지금까지 12개국 이상에 1만8000명 이상의 PKO 대원을 보냈다”며 “재정 지원 10위권, 병력 지원 30위권의 큰 기여국”이라고 덧붙였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과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해 시작된 유엔 평화유지장관회의는 다음달 7~8일 40여개국 외교·국방 고위급이 직접 참석한 가운데 서울에서 개최된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한국이 유치한 최대 규모의 다자 회의다. 여성 최초로 외교부 내에서 기획단장을 맡은 서 단장은 그동안 2006년 레바논 평화유지단 동명부대 파병, 2013년 태풍 ‘하이옌’에 의해 1만20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필리핀에 ‘아라우 부대’ 파병, 2014년 시에라리온에 ‘에볼라 긴급 구호대’ 파병을 이끌어왔다.

서 단장은 “에볼라 긴급구호대 파견 당시 소식이 알려지면 초등학생이던 두 딸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할까봐 비밀로 하고 갔다”며 “귀국 후에도 먼 발치서 딸을 바라본 뒤 21일 동안 격리돼있었다”고 말했다. 많은 개인적인 어려움에도 “PKO 파병 지역은 분쟁이 끝난 뒤에 여성과 아동들이 많은 희생을 입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PKO내에서도 이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여성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익 증진 차원에서도 활발한 PKO 활동이 중요하다고도 강조했다. 서 단장은 “20여년 간 PKO 파병 장병들은 지역사회에 도움을 주고 한국을 알리는데 앞장서왔다”며 “레바논 동명부대의 경우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동명 서포터즈’를 조직해 운영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이 여러 분야에서 선진국으로 인정을 받는 만큼 유엔 가입 30주년인 올해 평화유지 활동 선도국가가 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뮤지션 적재(맨 왼쪽)와 권진아(왼쪽 두 번째), 샘김(왼쪽 네 번째) 등 안테나 뮤직 소속 뮤지션들이 지난달 21일 서울 광화문 외교부청사에서 열린 서울 유엔 평화유지 장관회의의 효율적 홍보를 위한 업무 협약식에서 서은지 기획단장(가운데)과 함께 마스코트 '세평이' 인형을 들고 있다./ 외교부 제공 . 2021.10.21 [외교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2021-10-21 15:22:50/ <저작권자 ⓒ 1980-202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다음은 서 단장과의 일문일답.
▷유엔 평화유지 장관회의를 한국이 유치하게 된 의의가 무엇인가.“한국은 유엔 평화유지군(PKO) 재정 지원 10위권, 병력 지원 30권의 국가다. 유엔에서는 한국을 PKO 활동에 많은 기여를 하는 국가로 평가한다. 평화유지 장관회의는 1차는 정상회의로 미국에서 열렸고, 2차부터 연례 장관급 회의로 변경돼 영국, 캐나다, 유엔본부 등 서방에서만 개최돼왔다. 한국이 아시아 최초로 이 회의를 유치한 데는 아시아에서 한국이 PKO 활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임했다는 국제사회의 평가가 반영된 것이라고 본다.”

▷한국은 세계 유일의 유엔군 지원을 받은 국가이기도 하다.

“세계 유일의 유엔군 지원을 받은 국가가 여러 유엔 평화유지군(PKO) 활동에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크다. 유엔에서 유엔군을 조직해 파견한 것은 6·25전쟁이 유일하다. 한국은 1993년 소말리아에 최초의 PKO인 상록수부대를 파병했다. 유엔 가입 2년만에 PKO를 파병한 국가는 한국이 유일무이하다. ”▷PKO 내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PKO 파병 지역은 분쟁이 끝난 뒤 평화구축 과정에 있는 국가들이다. PKO는 분쟁이 종식한 뒤에 남겨져있는 여성과 아동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줘야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마음을 알아주고 치유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여성이 더욱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PKO 구성원과 리더십에서의 여성 참여를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동안 여러차례 PKO 파견에 참여해왔다.“외교부 유엔과 서기관 시절이던 2006년 12월에 여기서 레바논에 동명부대를 파병하는 안을 최초로 기안했다. 2013년 태풍 ‘하이옌’으로 필리핀이 큰 피해를 입었을 때, 우리 정부는 6·25전쟁 참전국인 필리핀에 보은한다는 취지로 아라오부대를 보냈다. 당시 국방부 장병들과 첫 실사를 다녀왔다.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할 당시 시에라리온에 민간 의료진과 군 병력으로 구성된 긴급 구호대를 파병할 때 선발대로 다녀왔다. PKO 관련 업무를 맡다보니 국방부와 가장 일을 많이 한 외교관 중 한 명이 됐다.”

▷어려움은 없었나.

“에볼라 긴급구호대 파견 당시에는 ‘에볼라 괴담’이 돌았다. 전 세계적으로 구호대로 다녀온 사람들의 자녀들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다는 괴담이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에볼라 구호대를 지원받을 때에도 대외 공개를 하지 않았다. 얼굴도 가리고 출국했다. 딸 둘과 출장 기간 동안 딸들을 돌봐주신 어머니에게는 다른 나라를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갔다. 오랜만에 귀국했을 때 멀리서 딸들이 껴안으려고 했지만 오지 말라고 했다. 이제 21일동안 엄마한테 가까이 와서도 안 된다고 말해야 했다. 외교관으로서 해야할 일과 엄마로서의 일이 부딪히는 순간이라 마음이 아팠다.”

▷PKO가 파병 지역에서 지역사회와도 잘 소통하나.

“한류 열풍으로 PKO에 대한 지역사회의 신뢰와 인기도 대단하다. 레바논 동명부대의 경우 지역 주민들이 ‘동명 서포터즈’를 자발적으로 만들어서 활동할 정도다.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워낙 높으니 PKO 장병들도 지역 청소년들과 주민들에게 한국 문화를 알리는 일도 많이 하고 있다. 특히 K팝에 맞춰 태권도를 알려주는 등의 활동도 많다. 문화 외교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이번 회의가 갖는 특별한 의미가 있나.

“코로나19로 중단됐던 다자(多者) 외교가 정상 궤도로 올라가는 신호탄이 된다는데 첫 번째 의미가 있다. 두 번째로는 올해는 한국의 유엔 가입 30주년이 되는 해다. 뜻깊은 해의 대미를 장식한다는 의미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가 개발이나 인권 등 다양한 분야에서는 선진국이라고 인정을 받고 있는 만큼 국제 평화유지 활동에서도 선도국가가 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번 회의가 열리는 중 국민들에게도 공개되는 여러 관에는 '한반도 평화관'이 있다. 세계인들에게는 한반도 평화, 국민들에게는 세계 평화의 의미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