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빅테크에 더이상 인재 안 뺏긴다"…반격 나선 대기업들
입력
수정
지면A5
삼성 "성과 있으면 고속 승진"앞으로 삼성전자에서 30대 임원, 40대 최고경영자(CEO)가 대거 출현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29일 발표한 인사제도 개편안을 통해 내년부터 임원 직급 체계 단순화와 직급 연한 폐지 등 파격 조치가 실행되기 때문이다. 연공서열을 깨고 능력과 성과 중심의 보상과 빠른 승진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결정이다.
입사 후 10년내 임원 가능
직급 연한 폐지하고 단순화
인사고과 '절대평가'로 전환
현대차·SK·LG 등 주요 그룹
추가 인사개편 나설 가능성
주요 그룹이 국내외 빅테크 기업, 스마트기업들과의 인재 경쟁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이른바 ‘실리콘밸리식 인사제도’가 경제계 전반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초고속 승진자 나온다
삼성은 이날 새로운 제도를 발표하면서 ‘미래지향 인사제도 혁신’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구체적으로 “나이와 상관없이 인재를 중용해 젊은 경영진을 조기 육성하겠다”고 강조했다. 직급연한에 갇혀 나오기 어려웠던 30대 임원과 40대 CEO를 배출할 토대를 마련했다는 의미다.삼성전자는 지금까지 CL(Career Level)이라는 4단계 직급 제도를 운영해왔다. 한 등급 승급에만 10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지만 앞으론 상황이 달라진다. 승급에 필요한 성과를 올리고 ‘승격 세션’을 통과하면 2~3년 만에도 승진이 가능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CL2로 입사한 직원이 3년에 한 계단씩 승급한다고 가정하면 9년 만에 첫 번째 임원인 상무가 될 수 있다. 경제계 관계자는 “삼성 인사팀의 과제는 젊은 인재들에게 삼성이 ‘기회의 땅’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적지 않은 젊은 인재가 조기 승급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직원들의 불만이 컸던 상대평가 제도에도 메스를 댔다. 앞으로는 최상위 10%를 제외한 나머지 고과는 모두 절대평가로 바꾼다. 고과 등급도 EM(Exceeds Most), ES(Exceeds Some) 등으로 명칭이 달라진다. 사람이 아니라 업무를 평가한다는 취지에서다.고과가 미치는 영향이 커진 만큼 부서장에게 권한이 쏠리는 현상을 막기 위해 동료평가 제도를 시범 도입한다. 삼성전자는 동료 간 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는 임직원 의견을 반영해 시범 운영해보고 정규 도입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주요 그룹 대세 된 인사혁신
직급 체계를 단순화하고 수평적 조직 문화 조성에 힘쓰는 것은 다른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애써 키워놓은 인재들을 빅테크 기업과 스타트업에 빼앗기는 일이 반복되면서 연공서열 중심의 인사 제도가 사라지는 모양새다. ‘대리’ ‘과장’ 같은 전통적인 직급과 호칭은 일부 영업 부서에만 남아 있다.임원 직급 단순화의 선봉은 SK그룹이다. 2019년 인사제도 개편을 통해 사장 아래 임원은 모두 부사장으로 일원화하고, 호칭은 본부장·그룹장·실장 등 직책으로만 부르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도 같은 해 임원 직급을 대폭 줄였다. 이사대우와 이사, 상무 직급을 상무로 통합했다. 전무와 부사장 직급은 그대로다. 상무와 부사장만을 남긴 삼성전자는 SK와 현대차의 절충형인 셈이다.임원이 아닌 일반 직원의 ‘직급 계단’도 줄어드는 추세다. 현대차는 2019년 차장과 부장 직급을 통합했다. 5급 사원~부장의 6단계 직급을 G1(5급 사원 및 4급 사원), G2(대리), G3(과장), G4(차장 및 부장) 등 4단계로 정리했다. SK그룹 역시 임원 이하 직급을 PM과 TL, 매니저 등으로 단순화했다. LG그룹은 2017년 기존 5단계 직원 직급 체계를 3단계로 줄였다. 대리~과장은 ‘선임’으로, 차장~부장은 ‘책임’으로 통일했다.
경제계에선 주요 대기업이 인사제도를 추가로 개편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삼성 인사제도의 장단점을 분석해 수용할 만한 제도는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정기승진이 회사에 대한 충성도를 높이고 장기 근무를 유도하는 인센티브로 기능했지만 인사 적체가 가중되면서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며 “젊은 소수의 인재에게 얼마만큼의 보상을 약속할 수 있는지가 새로운 인사제도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했다.
송형석/이수빈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