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로 변한 파월, 급한 유턴…애플만 3% 급등한 이상한 날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경제는 매우 강하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더 높기 때문에 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발표한 자산매입 축소를 아마도 몇 달 더 빨리 끝내는 걸 고려하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다음 FOMC에서 이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예상한다."

연임이 확정된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의 어투는 사뭇 달랐습니다. 30일(현지시간) 오전 10시 미 상원 은행위원회 청문회에 나온 파월 의장은 뭔가 둘러대려거나 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답했습니다.'물가가 이렇게 높은데 계속 채권을 사는 게 바람직하냐'는 질문에 12월 FOMC에서 테이퍼링 속도를 높이겠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밝힌 겁니다. 그것도 미리 준비한 듯, 종이를 보며 읽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는 "높은 인플레이션이 지속할 것이란 위험이 더 커졌다. 높은 물가가 내년 중반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동안 인플레이션이 '일시적'(transitory)이라고 주장해온 그는 '일시적'이란 단어를 쓰는 걸 중단할 때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파월 의장은 "'일시적'이란 단어는 많은 이들에게 '수명이 짧다'라는 의미가 있지만 우리는 더 높은 인플레이션이 영구적 흔적을 남기지 않을 것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라면서 "지금은 그 단어 사용을 중단하고 우리가 의미하는 걸 더 명확히 설명하려고 노력할 좋은 시기"라고 이유를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공급망 혼란으로 인한 문제를 간과했다"라고 인플레이션을 잘못 예상한 실수를 인정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파월 의장의 발언 강도를 듣고 놀랐다. 저런 정도 발언이라면 오는 15일 FOMC에서 테이퍼링 속도를 높여 내년 1분기 채권매입을 끝내는 게 거의 확정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오미크론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데 지금이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란 주장을 접기에 과연 좋을 때인가"라고 반문하면서 "그동안 연임 문제 때문에 파월 의장이 인플레이션 대응에 미적댔던 것이 확실하다. 지난주 연임이 발표되자 지금까지 실수를 인정하고 확실히 인플레이션부터 잡겠다는 뜻을 내비쳤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에드 야디니 야디니리서치 대표는 CNBC 인터뷰에서 "여기서 보고 있는 건 Fed가 팬데믹 상황보다 인플레이션에 대해 더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특히 파월은 기본적으로 지난해 3월에 겪었던 것과 같은 건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Fed는 그동안 인플레이션 곡선 뒤에 있었고 이제 인플레이션을 따라잡고 싶어 한다"라고 밝혔습니다.

Fed는 이달부터 테이퍼링에 착수했습니다. 매달 1200억 달러어치씩 채권을 매입하던 걸 11월부터 매달 150억 달러씩 줄이기로 했습니다. 이대로라면 내년 5월에 양적 완화(QE)가 종료됩니다. 하지만 이 속도를 당장 12월부터 300억 달러로 높이면 채권매입은 2월이면 끝납니다. 그리고 나면 기준금리를 올리겠지요. 더 빠른 테이퍼는 더 빠른 금리 인상의 가능성을 높입니다. 모더나의 스테판 방셀 최고경영자(CEO)가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기존 백신이 이전의 변이보다 오미크론을 다루는 데 훨씬 덜 효과적일 것"이라고 밝힌 여파로 오전 9시 30분 내림세로 출발한 뉴욕 증시는 파월 의장의 발언이 나오자 하락 폭을 크게 키웠습니다. 나스닥은 10시 10분까지는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10시 35분부터 수직으로 떨어졌습니다. 테이퍼링을 가속하겠다는 발언이 나온 직후입니다. 결국, 다우는 1.86%, S&P500 지수는 1.90% 떨어졌고 나스닥은 1.55% 하락한 채 마감했습니다.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주식의 92%가 내렸습니다. 지난주 금요일 90.5%보다 더 나빴던 겁니다. 주요 주식 중 오른 건 애플(3.16%), 화이자(2.54%), 그리고 테슬라(0.68%)밖에 없었습니다. 애플 상승에 대해선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2000억 달러 이상의 현금을 지닌 가치주면서 기술주라는 것이죠.
또 유가는 오미크론으로 인한 수요 감소에 긴축에 따른 수요 감소 우려까지 겹치며 이날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3.77달러(5.4%) 급락한 배럴당 66.18달러에 거래를 마감했습니다. 지난 10월 26일 고점에서 22%나 급락해 기술적으로 하락장에 진입했습니다. 뉴욕 채권시장에서는 단기물 금리는 폭등하고, 장기 금리는 급락했습니다. 이에 따라 채권 수익률 곡선은 극적으로 평평해졌습니다.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진 탓입니다.
사실 전날 오후 5시 파월 의장의 청문회 사전답변 내용이 공개된 직후 단기물 등 금리는 급락했었습니다.

"최근 코로나 감염 사례의 증가와 오미크론 변이 출현은 고용 및 경제 활동에 하방 위험을 초래하고 인플레이션에 대한 불확실성을 증가시킨다"라는 문구가 들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미크론으로 인해 Fed의 통화정책 정상화가 늦춰질 것이라는 시장 일부 기대에 딱 들어맞는 비둘기파적인 문구였습니다.

하지만 그 서면답변에는 "바이러스에 대한 더 큰 우려는 사람들이 일하고자 하는 의지를 감소시킬 수 있으며, 이는 노동 시장의 진행을 늦추고 공급망 혼란을 심화시킬 것입니다"라는 문구도 있었습니다. 구인난과 공급망 혼란이 가중되면 인플레이션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경제와 강력한 노동 시장을 지원하고 더 높은 인플레이션이 고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의 도구를 사용할 것"이라는 말도 있었죠.

그래서 월가에서는 '과연 사전답변 내용이 비둘기파적이냐, 매파적이냐' 논쟁이 많았습니다. 어쨌든 금리는 내림세를 보였습니다. 10년물 금리는 한때 연 1.415%까지 떨어졌고 2년물은 0.429%까지 내렸죠.

하지만 파월 의장이 이날 아침 청문회에 출석해 직접 심중을 드러내자 논쟁은 순식간에 종결됐습니다. 통화정책을 전문으로 하는 경제학자 팀 듀이는 트위터에서 "파월 의장이 비둘기 사냥에 나섰다. 그것도 더블배럴 샷건(쌍발 산탄총)을 가져왔다"라고 평가했습니다.

파월 의장 발언 직후 2년물 금리는 연 0.567%까지 뛰었습니다. 반면 30년물 수익률은 지난 1월 이후 가장 낮은 1.78%까지 떨어졌습니다. 또 10년물 금리는 연 1.44% 수준을 유지하면서 2년/10년 스프레드는 87bp(1bp=0.01%포인트)로 지난 1월 이후 수익률 곡선이 가장 평평해졌습니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지만, 경기는 꺾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년물 등 단기 금리는 기준금리를 추종하지만, 10년물 등 장기 금리는 경제와 인플레이션을 대변하죠.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연방기금금리 선물 시장에서는 내년 6월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전날 59.6%에서 67.1%로 높아졌습니다.

사실 오미크론 변이가 발생하자 월가 일부에서는 테이퍼링, 금리 인상 등이 늦춰질 것으로 기대하는 시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파월 의장은 이를 간단히 일축한 것입니다.

파월 의장은 오미크론 변이와 관련, "지금으로선 위험이며 경제 전망에 고려할 때는 아니다"라면서 "앞으로 10일 혹은 몇 주 내에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경제가 지난해 3월 셧다운으로 발생한 것과 거의 비슷하거나 추가 셧다운이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질병(코로나바이러스)이 아마 오랫동안 존재하는 걸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경제적 효과가 줄어들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라파엘 보스틱 애틀랜타연방은행 총재도 지난 28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가 잇달아 나타나면서 경기가 둔화했지만, 그때마다 경기 침체 정도는 점차 약해졌다"라면서 "오미크론이 델타 변이와 비슷한 궤적을 따라간다면 경기 회복이 느려지겠지만 델타 변이 만큼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파월 의장은 오미크론이 총수요를 감소시킬 정도로 미국 경제에 타격을 주지는 못할 것으로 보는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파월 의장이 12월 14~15일 열리는 FOMC를 앞두고 발언을 바꿀 가능성'에 대해 "파월 의장이 이날 발언을 뒤집을 정도가 되려면 오미크론은 매우 전염성과 치명률이 높고 백신의 예방 효과가 크게 낮은 것으로 나타나야 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과연 경제와 뉴욕 증시에 좋은 일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Fed의 모든 촉각은 인플레이션으로 향할 것입니다. 실제 인플레이션은 정말 곳곳에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날 발표된 콘퍼런스보드의 11월 소비자신뢰지수는 109.5로 집계되어 예상치(110.0)와 전달치(111.6)를 밑돌았습니다.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가 큰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린 프랑코 콘퍼런스보드 수석 이사는 "향후 6개월간 주택, 자동차, 주요 가전을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의 비중이 줄었다. 지출은 물가 상승과 코로나 재확대 가능성으로 역풍에 직면할 것 같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어도비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사이버 먼데이'(11월 29일) 매출은 107억 달러에 그쳐 작년(109억 달러)보다 감소했습니다. 집계가 시작된 2012년 이후 처음 줄어든 것입니다. 앞서 지난 26일 블랙 프라이데이의 온라인 쇼핑액도 올해 89억 달러로 작년 90억 달러보다 감소했었습니다. 이는 인플레이션과 공급망 혼란 여파로 전반적 가격이 오른 탓으로 관측되고 있습니다. 올해 사이버 먼데이 전자제품 평균 할인율은 12%에 그쳐 지난해 27%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의 최종 구매가는 지난해보다 평균 13.9% 높은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유로존에서도 11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30년 만에 최고치인 전년 대비 4.9%까지 치솟았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오미크론이 여전히 와일드카드이긴 합니다.

알리안츠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찰리 리플리 선임 투자 전략가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통화정책의 잠재적인 변화가 임박함에 따라 시장 참여자들은 이 미지의 영역에서 추가적인 시장 변동성을 예상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인디펜던트 어드바이저 얼라이언스의 크리스 자카렐리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경제의 강력한 펀더멘털과 오미크론에 대한 강한 백신 대응이 시장을 단기 매도세에서 회복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월가의 한 관계자는 "Fed가 인플레이션에 뒤처지고 있어서 위험이 커지고 있었는데, 지금이라도 빨리 물가 잡기에 나서서 다행"이라며 "오미크론 불확실성에 파월의 갑작스러운 매파 전환을 감안하면 이날 증시 반응은 그리 나쁜 수준은 아니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이날 유가가 또다시 급락하는 등 원자재 가격이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내년 하반기부터는 정말 인플레이션이 완화될 수 있다고 본다"라면서 "그렇게 되면 Fed가 기준금리를 서너 번 올리면 충분할 것이고, 시장은 그 정도 금리 상승은 버텨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하지만 다른 관계자는 "Fed는 이미 인플레이션에 뒤처졌으며 물가가 잡힐 때까지는 기준금리를 계속 올리는 외에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라면서 "앞으로는 오미크론 등 '나쁜 뉴스'가 나오면 Fed가 돈을 풀 것이라면서 '굿 뉴스'로 받아들이기보다 그냥 '나쁜 뉴스'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2009년까지는 주가 상승분의 절반 가량(48%)가 기업 이익 증가에 기반했는데, 이후에는 21%에 그친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2010년 이후 주가 상승의 52%는 Fed의 자산 증가에 기여한다고 봤습니다.
이날 JP모간은 2022년 전망을 발표했습니다. 내년에 S&P500 지수가 5050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했지만 상승은 대부분 상반기에 이뤄지고 하반기에는 잠잠해질 것으로 봤습니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지원이 사라질 것이란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면서 최종 기준금리가 2%대가 될 것으로 봤습니다. 즉 기준금리를 서너 번 올리고 중단하는 게 아니라 최소 0.25%포인트씩 여덟 번은 인상한다는 예측입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