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윤의 정책프리즘] 디지털치료제, 리스크 관리 정책 시스템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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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2017년에 국제 비영리단체인 디지털치료제협회(DTA·Digital Therapeutics Alliance)가 출범했다. 디지털 치료제의 표준을 설정하고, 이해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DTA는 디지털치료제를 의학적 장애 또는 질병을 예방·관리 또는 치료하기 위해 고품격 소프트웨어에 의해 구동되는 증거 기반 치료 개입으로 정의했다.
디지털치료제는 24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하므로 데이터를 기반으로 환자 중심의 치료를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임상시험에서 효과성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우선 대조군을 설계하기 위해 필요한 소프트웨어 위약을 만들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디지털치료제는 기준에 따라 유형이 구분된다. 역할에 따라 다른 약이나 기기와 함께 사용되는 경우 보완재로 분류되며, 독립적으로 사용되는 경우 기존 약의 대체재로 분류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디지털치료제를 ‘디지털 치료기기’로 명명하며,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로 분류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디지털 치료기기와 디지털치료제 모두를 디지털치료제로 통용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사용자 편의성 높인 디지털치료제
최근 고령화 및 코로나19라는 환경적 요소를 만나면서 디지털치료제 관련 시장과 연구는 급속도로 성장 중이다. 하지만 디지털치료제가 보편적으로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개발부터 상용화 전 단계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불명확한 과학기술과 정책적 그레이존이 해소돼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이해관계자 간 공감대 형성 및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연구개발 단계에서는 정보기술(IT)기업, 병원, 관련 업체가 협업을 통해 디지털치료제를 개발한다. 제품이 개발된 후에는 규제기관을 통해 인허가를 받고, 보험수가를 책정받아야 한다. 디지털치료제가 허가를 받아 시장에 나오게 되면, 의사의 처방을 통해 최종적으로 환자가 치료제를 사용하게 된다. 이 모든 단계에서 디지털치료제의 유용성 및 안전성에 보편적인 동의와 양해가 없다면 디지털치료제의 효용성을 누리기 어려울 것이다. 디지털치료제는 디지털과 치료제라는 두 가지 분야가 융합되어 등장한 융복합 신기술이다. 기존 의약품과는 다른 특징들을 지닌다. 우선 비침습적이므로 독성 및 부작용이 적다. 더불어 다수를 동시 치료 가능하다는 점에서 의료 접근성이 높다. 24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하므로 환자 중심의 치료를 제공할 수 있다. 환자는 복약 상태를 확인하거나, 치료 상태를 관리할 수 있으므로 보다 능동적으로 치료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더불어 데이터 수집과 분석이 용이하므로, 의료진 또한 개인 특성에 최적화된 치료를 환자에게 제공가능하다. 또한 소프트웨어라는 특성상 최소한의 규모의 경제가 구현되면 임상시험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적게 드는 장점이 있다.
디지털치료제는 기존 의약품과 달리 부작용 걱정이 없다는 점에서 사용자(환자)에게 매력적이다. DTA에 따르면 사용자(환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사용자(환자)에게 직접적인 의료 개입을 제공하고, 개인화된 목표와 결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이용하기 때문에 친숙할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병원에 방문해야 하는 만성질환의 경우,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다프네 조하 미국 바이오텍 퓨어테크헬스 CEO는 “디지털치료제는 철저하게 사용자에게 초점을 맞춰 개발해야 한다”며 “디지털치료제의 개발이 의약품의 전략을 따라가는 것은 어리석다”고 했다.기존 의약품의 개발은 제약사와 의료진 중심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환자의 정보를 모니터링, 수집, 분석하여 업데이트하는 디지털치료제는 사용자 중심의 편의가 대폭 높아지게 된다. 고령화 등을 고려할 때 외면하면 안 되는 긍정적인 부분이다.
임상시험 근거 부족, 원격의료 등 의료계와 합의 찾기 어려워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료계에서는 디지털치료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디지털치료제는 의사 처방이라는 의료적 결정에 의해서 환자에게 제공된다. 따라서 당연히 의료계의 입장과 이해가 중요한 이슈다.
디지털치료제는 의료산업과 IT산업의 합작이다. 개발은 소위 IT업계가 하지만, 처방은 의사가 한다. 결국 상용화의 키는 의료업계가 가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디지털치료제가 보편화되지 않는 한 의료진은 기존 의약품을 처방할 가능성이 높다. 의료계에서는 크게 세 가지 이유에서 디지털치료제의 상용화를 우려하고 있다.첫째, 임상 현장에서 발생하는 미충족 의료수요(unmet needs)에서 디지털치료제의 개발이 시작되기를 의료계는 기대하지만 꼭 그렇게 기술개발의 방향이 잡히지는 않는 것 같다.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많은 회사가 실제 임상 현장에서의 수요를 반영하지 못한 채 조금 다른 초점의 기술개발에 매진하고 있어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실제 상용화 과정에서 기기에 대한 수요 저조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치료 효과에 대한 근거를 쌓는 데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음을 우려한다.
둘째, 식약처의 ‘디지털치료제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디지털치료제 판단 시 ①대한의학회에서 인정한 임상진료지침 ②학술지에 게재된 임상 논문 ③탐색, 연구자 임상시험 자료를 과학적(임상적) 근거로 정하고 있다. ②번이나 ③번에 입각한 근거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①번 임상진료지침이 디지털치료제 판단 근거로서 중요한 현실이다.
그러나 임상진료지침은 전문가들의 임상 경험 및 합의를 통해 개발되는데, 과연 이러한 합의가 객관적·과학적 근거로 적절한가에 대한 의문이 존재한다. 임상진료지침을 개발하는 대한의학회 역시 임상진료지침의 실제 제정 과정에서 임상 근거 중심 방법 적용이 부족해 경험 위주 합의에 의한 기술이 산재함을 지적하고 있다.
셋째, 디지털치료제는 원격의료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원격의료 환자를 모니터링할 수 있기 때문에 디지털 치료행위가 원격진료에 해당할 수 있다. 최근 원격의료 합법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지만, 원격의료에 대한 의료계의 반대가 여전하다.
기존 의료기기 GMP 시설 구축 어려워 개발 난항 겪기도
디지털과 의약품이 결합한 형태의 새로운 치료제이다 보니, 업계에서도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식약처는 작년에 의료기기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을 개정하여 대상품목에 소프트웨어를 추가하고, SaMD(Software as a Medical Device)에 대한 GMP 시설 기준 및 식약처 승인 대상 면제 등 관련 규제 완화 방침을 발표했다. GMP(Good Manufacturing Practice)인증은 의약품과 의료기기 제조에 있어 안전성 확보를 위한 품질관리제도다.
하지만 GMP 기준은 여전히 물리적 의료기기 중심이다. 디지털치료제 대부분이 어쨌든 현행법상 의료기기이다 보니 디지털치료제를 개발하는 통상의 IT회사들은 GMP에 익숙하지 않다. 대부분의 국내 디지털치료제 개발사는 기존 의료기기 GMP 인증 경험이 있는 컨설팅업체를 통해 GMP 인증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시간을 소모하고 있는 현실이다.
보험수가 등 제도적 기틀이 필수, 하지만 정책 개발 전문가 부족한 실정
디지털치료제 개발이 활성화되면서 우후죽순으로 관련 법령 제정, 가이드라인 수립, 육성 방안 등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명확한 기준이 없는 탓에 상용화에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 역시 디지털치료제의 시장 진입에 대해 섣불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식약처는 지난 11월 22일 디지털치료제 허가 및 심사, 규제 지원을 위한 전담 조직을 신설한다고 밝혔다. 기존 의료기기와 형태가 다른 만큼 관련 가이드라인을 발간하고, 법 제도상 개선 사항을 보완하겠다는 취지다.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는 기존 하드웨어 의료기기와 달리 개발부터 제조 공정·품질관리 등이 무형의 형태로 이뤄진다. 또 소프트웨어는 데이터를 주고받는 통신 기반이기 때문에 ‘개인의료정보 보호’와 ‘사이버 보안’에 대한 이슈가 잠복해 있다. 이 때문에 허가 과정에서도 이런 특성에 대한 검토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전까지는 식약처의 의료기기심사부 내에 디지털헬스기기TF가 관련 업무를 맡고 있었다. 당시 TF 구성원은 10명 내외로 디지털치료제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을 갖추기에는 수가 턱없이 부족했다. 올해 디지털치료제 허가 및 심사 전담 조직이 신설되는 만큼 전문인력을 충원하고, 디지털치료제의 특성을 정확하게 반영한 가이드라인 및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허가·심사 외에도 디지털치료제가 넘어야 할 허들은 남아 있다. 보험수가다. 보건복지부는 국민건강보험에 대해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포괄적으로 적용이 가능하고 치료 효과적이고 비용 효과적이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비용·효과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복약순응도가 중요하다. 디지털치료제의 경우 능동적 치료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아직 복약순응도에 대한 자료가 불충분한 상황이다. 복지부는 이런 측면에서 디지털치료제에 보험 수가를 책정하기가 어렵고, 보편성 측면에서도 연령별 차이를 보일 수 있어 급여기준 설정에 반영하기가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즉 디지털치료제가 개발돼 허가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즉각적인 업체의 매출로 이어지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디지털치료제는 우리나라의 산업환경상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좋은 분야다. 한번 해볼 만하다. 하지만 디지털이라는 IT 기반의 위험과 치료제라는 임상 기반의 위험 등 디지털치료제에 내포되어 있는 각종 리스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국민과 의학계의 불안감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 정부는 어떤 기준에 근거하여 정책적 판단을 내려야 하는가.
다소 원론적인 이야기이지만 필자가 주장하고 있는 신중한 경계에 기반한 리스크 관리를 시도해야 한다고 믿는다. 아마도 세계 최고 수준의 리스크 관리 제도가 될 것이다. 즉 ‘리스크 분석 → 평가 → 모니터링 → 피드백’ 단계를 거쳐, 추가된 정보를 반영하여 리스크 재분석과 재평가를 계속해서 진행하는 순환과정을 구축해야 한다.
첫째, 리스크 분석 단계에서는 각 리스크의 발생 가능성을 포용적으로 상정하고 리스크를 적극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분석 시점에서의 첨단 융복합 기술 리스크는 그 특성을 첨예하게 파악하기 어렵고 관련 전문가도 많지 않으므로 세계 최고 수준의 학술적 연구결과와 기술동향 분석을 빠르게 파악해 반영하고 다양한 관점의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협의체를 기반으로 투명하고 신속한 리스크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
둘째, 리스크 평가 단계에서는 과학적(임상적) 데이터를 기초로 리스크가 개인 및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판단해야 한다. 독립적인 기관에서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리스크의 기준을 정하고 리스크의 발생 규모, 지속성, 개연성, 가역성 등 해당 리스크 고유의 특성을 평가해야 한다.
셋째, 리스크 모니터링 단계에서는 보다 많은 가용정보를 확보하여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도록 AI 기반 빅데이터 분석을 도입해야 한다. 복약순응도, 치료 개입 정보, 의무기록, 소프트웨어 품질관리, 데이터 보안 등 여러 형태의 데이터를 AI로 분석하여 리스크의 발생 여부와 피해 규모, 발생 가능성과 예상 피해 규모 등을 파악하는 것이다. 모니터링 단계에서의 발견과 질문은 분석과 평가 단계에 지속적이며 수시로 피드백되어야 한다.
넷째, 리스크 피드백 단계에서는 선행 단계에서 얻은 분석과 평가, 모니터링의 결과를 통합하여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통합된 리스크에 관한 정보를 대중에게 공개하고 대중의 피드백을 유도하여 리스크를 적극적으로 재정의하고, 정부의 리스크 관리에 대한 신뢰를 얻어서 디지털 치료제에 대한 리스크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
또한 선행 단계에서 미비했던 분석을 보완하고 심층 논의를 거쳐서 재분석과 재평가 단계에 이를 반영해야 한다. 미래정책의 핵심속성은 불확실한 과학기술의 리스크에 대한 재분석, 재평가, 재정의의 끊임없는 피드백에 기초한 투명-탄력-최첨단 전문성이다. 이러한 속성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거대한 양의 정보 축적과 스마트한 처리, 즉 AIWare의 조합이 중요한 선결조건이다.
이렇게 디지털치료제 리스크 관리 정책 시스템을 구축해서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한다면, 유사하거나 더욱 극적인 격변적 생명과학기술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정부의 역량을 확충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저자 소개>
김태윤
서울대 경영학과에서 학사를,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정책학 석사와 박사를 취득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서 사업평가국장으로 근무했고,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 위원과 간사위원을 역임했다. 한국규제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행정, 경영, 경제를 두루 섭렵한 석학이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2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