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10대 시절 초상…영화 '신의 손'

어떤 시절은 키워드로 기억된다.

이탈리아 감독 파올로 소렌티노의 10대 시절을 관통한 말은 디에고 마라도나였다. 그는 자전적 영화 '신의 손'을 통해 80년대 중후반을 돌아보며 마라도나에 얽힌 자신의 성장사를 풀어냈다.

역동적인 스토리를 선보였던 대표작 '그레이트 뷰티', '유스' 등과 달리 이번 작품에선 뜨거움은 가라앉히고 섬세함은 키웠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로 135분을 채웠다. 소렌티노 감독의 페르소나인 파비에토(필리포 스코티)는 이탈리아 남부 도시 나폴리에 사는 평범한 소년이다.

그 시절 대부분의 이탈리아 소년들이 그랬듯 축구를 사랑한다.

마라도나가 명문클럽 FC 바르셀로나를 떠나 SSC나폴리로 온다는 소문을 듣고 한껏 기대에 차 있다. 몇몇 이웃들은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당시 SSC나폴리는 강등을 겨우 면한 작은 팀이었고 이탈리아 리그에는 유벤투스 FC, AC밀란, AS로마 등 쟁쟁한 팀이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폴리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가난한 도시 중 하나여서 북부 도시 사람들에게 멸시받던 처지였다. 그러나 이런 예상을 깨고 마라도나는 입단 계약서에 서명한 뒤 나폴리 선수가 된다.

파비에토는 마라도나가 뛰는 경기는 물론 연습장까지 찾아다니며 열렬히 응원한다.

직접 가 보지 못할 때는 텔레비전으로 경기를 보고, 발코니에 나가 쏟아져나온 이웃들과 함께 승리의 기쁨을 누린다.
유년 시절을 되돌아봤을 때 기억이 작동하는 방식이 그러하듯 '신의 손'도 일화 중심으로 전개된다.

소렌티노 감독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은 몇몇 장면이 다소 과장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감독의 10대 시절을 그린 초상화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시트콤 같은 재미도 있다.

현실에선 존재하기 어려울 법한 캐릭터가 자주 등장해 극을 이끈다.

한여름에 모피코트를 입은 욕쟁이 할머니, 십수 명의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알몸으로 선탠하는 이모, 찾을 때마다 화장실에 있는 누나….
이들과 한데 어우러져 코미디 같은 일상을 보내던 파비에토 삶의 장르는 한순간 바뀌어버린다.

파비에토가 축구 경기를 보러 간 사이 부모님이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때부터 파비에토에게 더는 마라도나도, 축구도 별 의미가 없어진다.

SSC나폴리가 우승하는 순간마저 즐기지 못하고 말없이 텔레비전을 끈다.

대신 그는 이탈리아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과 운명적으로 조우하면서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꿈이 생긴다.

영화를 본 건 고작 서너 번뿐인 그의 새로운 꿈에 코웃음을 칠 수 없는 이유는 주인공이 다름 아닌 소렌티노 감독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레이트 뷰티'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았고 '신의 손'으로는 제78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은사자상)을 타며 젊은 거장 반열에 올랐다.

소렌티노 감독의 시작점이 이 영화에 담겼다. 1일 극장 개봉, 오는 15일 넷플릭스 공개.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