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수의 희귀질환 이야기]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 동향과 개발사들의 전략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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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인수 사노피-아벤티스 코리아 의학부 이사년 코로나19의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신약 허가는 계속됐다. 2020년 한 해 동안 FDA는 총 53개의 신약을 허가했는데, 이 중 31개(58%)의 신약이 희귀질환 지정을 받아 개발된 약제였다. 이는 지난 5년간의 평균 46%를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적으로 많은 투자와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항암제의 경우, 18개(34%)의 치료제가 승인을 받았으니 희귀질환(5년간 평균 25%)의 약진이 얼마나 두드러진지 알 수 있다.실제로 2016년 4개에 불과하던 희귀질환 치료제는 지난 5년간 FDA 승인 건수를 늘려오면서 2019년에는 항암제 승인 건수(10건)의 2배가 넘는 치료제(21건)들이 시판허가 되는 사례도 남기며,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희귀질환 분야의 기전적 특징에서 오는 개발사의 기회
FDA의 신약 허가 경향은 확연히 항암제와 희귀질환 치료제에 집중돼 있으며, 희귀질환 치료제들이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는 많은 제약회사, 바이오텍들이 항암제와 희귀질환 분야를 전략적 성장동력으로 취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실제로 많은 나라들에서 희귀질환에 대한 공공보건 정책을 우선적으로 지원한 1980년 이후부터 희귀의 약품 시장이 성장했고 다양한 글로벌 회사의 등장 및 성공사례들이 배출되기 시작했다.
이런 배경 요인으로는 치료제 개발 시 시장 독점권 부여, 개발 과정에서의 다양한 혜택, 허가과정의 유연화, 진단기술의 발전에 따른 희귀질환 환자 수 증가, 개발사들과 글로벌 빅파마의 인수합병(M&A)를 통한 성공모델의 축적 등을 꼽을 수 있다.앞으로도 전 세계 희귀질환 치료제 시장 규모는 2020년 기준 1614억 달러(약 190조 원)에서 연평균 13.1%씩 성장해 2030년에는 5475억 달러(약 646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돼 이와 같은 희귀질환 시장의 확대는 더욱 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기조는 한국도 다르지 않다. 2020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총 58개의 성분(화 학·생물)이 허가를 받았는데, 이 중 희귀신약 혹은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아 허가된 품목은 28개에 달한다. 허가 신약 절반 가까이가 희귀질환 치료제인 셈이다.각 나라의 규제당국이 치료제의 시판 승인을 내리는 절대적인 기준은 임상시험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 보고에 따르면, 희귀질환 개발에 있어서 재정적 인센티브를 법으로 명시하고 있는 환경에서 희귀질환 치료제의 임상 성공률은 실제로 26%에 달한다.이는 종양학(oncology)의 8%를 크게 상회하는 수치이며, 임상 성공률 2위에 랭크된 비알코올성지 방간염(NASH)으로 대표되는 소화기 질환의 15%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다.
희귀질환 치료제가 임상시험의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이러니 하게도 다양한 혁신적인 임상시험 방법의 도입과 인센티브 환경 등이 오히려 많은 개발사들에게는 기회 요인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된 것이다.
단순히 인센티브제도의 법적 지원과 임상시험의 혁신적인 모델이 도입된다고 해서 연구 개발(R&D)이 활발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까. 어떻게 이렇게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많은 희귀질환 치료제들이 임상시험에 돌입하고 시장을 공격적으로 확장해가고 있을까.가장 근본적인 이유로는 희귀질환 분야의 특성과 신약 개발의 표적 타기팅 전략에 있어서 다른 질환 분야와 차별적인 전략 및 장점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비특이적이고 복잡한 임상 증상, 단순한 발병 기전에 뛰어드는 제약사들
희귀질환 진단이 어려운 것은 환자가 소수라 질환 자체를 의심하기 어려운 것도 있겠지만 그 질환의 병인에 대한 정보나 질환을 특정할 수 있는 임상 증상의 특이적인 관찰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같은 질환이지만 환자마다 증상의 발현이 이질적이고 다른 일반적인 질환으로부터 의심되는 임상 증상들과 중첩되는 비특이적인 양상으로부터 특정 희귀질환을 구분해내기가 매우 어렵다.
하지만 80%가 유전성 희귀질환이면서 단일 유전자 질환인 경우 질환의 임상 증상은 복잡하고 비특이적이지만 신약 개발의 타깃은 매우 단순하고 명확해지는 장점이 있다. 또한 단일 유전자의 문제가 병인이라면 유전자 치료제의 적극적인 도입을 매우 손쉽게 시험해볼 수 있는 효과적인 질환군이 된다.
이와 같은 특성은 희귀질환의 제도적인 인센티브 정책과 만나서 폭발적인 희귀질환 시장의 성장을 이끌었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벤처 회사들에게 큰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어떠한 성공사례들이 있을까. 1980년대 미국의 인센티브 정책하에서 희귀질환 분야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를 많이 만들어낸 질환군으로 리소좀 축적 질환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리소좀 축적질환은 리소좀 내 특정 효소가 유전자 변이로 인해 기능을 하지 못해 세포 내 표적 기질들이 쌓이는 질환으로, 변이 효소의 종류마다 질환의 아형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20년 전에 단일 유전자 혹은 효소를 교정할 수 있는 명확한 타깃을 가지고 첫 치료제가 도입된 이후 36년 동안(1983년~2019년) 128개의 FDA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은 파이프라인들이 임상 개발에 뛰어들었고, 그중 11개의 리소좀 축적 질환을 대상으로 23개의 다양한 기전을 가진 치료제들이 승인받았다.
특히 2010년대 들어서는 유전자 치료제에 개발이 집중되는 양상을 보인다. 30년이 넘어가는 현재에도 여전히 활발한 파이프라인의 도입과 혁신적인 치료제의 R&D가 이뤄지고 있는 것을 본다면, 향후 희귀질환 치료제의 기회요소들이 기업에게 얼마나 크게 다가오고 있는지 실감해볼 수 있다.
이를 성공사례로 든 이유는 기업 입장에서 다양한 성장모델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데이터이자 글로벌 빅파마들의 M&A 전략을 통한 중소 개발사들의 성공스토리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지만, 결국 다양한 치료 옵션도 입에 따른 환자 혜택과 의료진의 치료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좋은 사례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1980년대부터 리소좀 축적 질환의 다양한 치료제를 선두에서 개발해오던 두 제약사 젠자임과 샤이어는 각각 2011년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와 2018년 다케다의 특수질환 사업부로 합병됐다. 이는 중소 제약 기업의 성공 스토리로 많이 회자됐다.
또 글로벌 제약사의 관심이 만성질환에서 특수질환, 희귀질환 분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상징적인 소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이후 많은 글로벌 빅파마가 희귀질환 분야의 파이프라인을 확보하여 미래 성장동력을 이끌기 위한 유사한 합병전략들을 전개하고 있다. 가장 최근엔 아스트라제네카가 알렉시온을,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이 셀진을 인수했다.
리소좀 축적 질환에서의 성공적인 사례와 이어지는 도전,
다른 희귀질환에서도 재현될까
글로벌 희귀의약품 시장은 개발과정에서의 다양한 정책적 혜택(높은 약가, 독점권, 허가 규제 조건의 다양화, 신속화, 유연화)을 통해 전체 헬스케어 산업의 성장률보다 훨씬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더욱 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희귀의약품 시장 역시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국내 기업이 개발한 희귀의약품 또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희귀의약품 시장은 단일 유전자 질환의 특성에서 오는 유전자 치료제의 테스트 베드로 자리매김해 플랫폼 기반의 확장성과 질환 표적의 명확성을 통해 국내외를 막론하고 중소 벤처기업이 기술 기반 연구개발(R&D)에 비교적 손쉽게 도전할 수 있는 시장이 됐다.
제약사의 규모와 상관없이 많은 기업이 희귀질환 치료제 임상 파이프라인의 다양성을 주도하고 있다. 이어서 다음 편에서는 이들 다양한 회사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개발전략을 가지고 있는지 그 유형들을 살펴보고자 한다.<저자 소개>
조인수
사노피-아벤티스 코리아 스페셜티케어 사업부에서 희귀질환 메디컬팀을 맡고 있다. 베링거인겔하임, 바이엘 임상의학부팀에서 한국 및 아시아 국가의 혁신신약 도입을 위한 임상연구와 의과학자문으로 근무했다. KOTRA-Grants4Apps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에서 헬스케어 스타트업 글로벌 진출 및 제약사 지원 연계 역할을 수행한 바 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2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