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기다렸는데…재건축 표류하는 둔촌주공

둔촌주공 조합, 현대건설 본사 항의 집회
공사비 증액 두고 조합-시공사 갈등
둔촌주공 조합원들이 1일 현대건설 계동사옥 앞에서 집회를 벌였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국내 최대 재건축으로 불리던 둔촌주공 재건축이 표류하고 있다. 조합과 시공사인 현대건설 사업단 사이 갈등의 골이 깊어진 탓이다.

1일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원들이 서울 종로구 현대건설 계동사옥 앞에 모여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무상지분 164%, 강남급 내장재 약속 지켜라', '시공사만 대박 조합원은 쪽박', '6000 조합원 신용불량자 X박마라' 등의 문구가 적인 팻말을 들고 "현대건설 갑질 멈춰라", "현대건설은 도둑"이라고 외치며 분노를 토해냈다.이날 집회는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 공사비를 둘러싼 갈등 때문에 벌어졌다. 서울 강동구에서 진행되는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은 현대건설 사업단(현대건설·대우건설·HDC현대산업개발·롯데건설)이 시공을 맡아 1만2032가구에 달하는 '둔촌 올림픽파크 에비뉴프레'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2003년 추진위 승인을 거쳐 2006년 정비구역으로 지정됐고 2018년 주민 이주를 마친 뒤 2019년 기존 아파트 철거를 마쳤다.
서울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아파트 공사 현장 모습. 사진=김범준기자
순항되는 듯 했던 사업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분양보증 과정에서 분양가를 두고 마찰을 빚으며 지연됐고, 기존 조합장이 해임되며 올해 새 집행부가 들어서는 등 내홍도 겪었다. 현재는 시공단과 공사비 증액을 두고 갈등이 빚어졌다. 조합은 2016년 총회에서 공사비로 2조6000억원으로 의결했는데, 전임 조합장이 지난해 공사비를 약 5200억원 증액한 3조2000억원대로 사업단과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당시 조합장은 계약서를 작성한 날 조합원들로부터 해임됐다. 조합 측은 조합 총회를 거치지 않고 작성된 계약서는 적법하지 않으며, 5200억원에 달하는 증액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조합 관계자는 "해당 계약서 내용은 총회를 거치지 않았고 한국감정원의 검증도 거치지 않았다"며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계약서를 이행하라고 현대건설이 강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시공사인 현대건설 사업단은 조합을 대표하는 조합장과 시공단이 맺은 계약을 조합 내부 사정으로 무효라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2016년 계약은 1만1000가구 기준이었지만 지난해 계약은 1만2000가구로 늘었고, 2010년 시공사로 선정된 이후 사업이 10년 넘게 지체된 만큼 원자재와 인건비 상승분을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당초 지난 7월로 예정됐던 일반분양이 지연되면서 7000억원으로 책정된 사업비도 모두 소진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일반분양을 통해 소진된 사업비를 충원할 계획이었지만, 일반분양이 늦춰지면서 시공단의 부담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일정이 크게 지연되면서 자금이 떨어진 탓에 공사 중단 등의 상황이 불가피해졌다는 것이다.
둔촌주공 조합원들이 1일 현대건설 계동사옥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공사 중단과 사업비·이주비 대여 중단이 가시화되면서 조합원들은 현대건설에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다. 사업비 대여가 중단되면 조합이 파산을 피하기 어렵고, 조합원은 이주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지는 탓이다. 조합 측은 "조합원 6000여명을 모두 신용불량자로 만들겠다는 협박"이라며 "이번 집회에 나선 직접적인 계기"라고 불쾌감을 드러냈다.조합과 사업단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둔촌주공 재건축 일반분양 일정도 안개 속에 빠졌다. 분양이 이뤄지려면 조합에서 건축비와 가산비 등을 구청에 제출해야 하는데, 공사비가 확정되지 않으면 이러한 과정을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시공단이 사업비 대여를 중단한다면 공사 중단은 물론, 법적 분쟁으로 이어져 사업이 더욱 지체될 가능성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조합이 계약을 해지하고 시공사를 변경할 수 있지만, 시공사를 바꾸려면 기존에 투입된 공사비를 모두 정산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공사 기간이 길어질수록 사업비와 공사비는 계속 불어난다. 합의를 이끌어내 가능한 빠르게 사업을 마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