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중이냐 아니냐'…차이나머니에 요동치는 중남미 선거판

속속 친중 노선으로 돌아서는 중남미…온두라스 대선에 뜨거운 감자
중국, 자금·백신 앞세워'대만 단교' 회유…미중 대리전장 분석
중국과 대만의 이른바 '양안 갈등'이 태평양 건너 중남미의 선거 판세를 뒤흔들고 있다. 선거에 나선 후보가 당선 뒤 중국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 대만과 국교를 파기할 것인지가 유권자의 선택을 가르는 핵심 쟁점이 되는 모양새다.

중남미가 지리적으로 미국과 매우 가깝다는 점에서 이 지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는 대만을 지원하는 미국과 중국이 충돌의 대리전장이 됐다.

◇ 속속 친중으로 돌아서는 중남미…뜨거운 감자된 양안 외교
중남미에서는 최근 대만 단교·중국 수교 움직임이 가속화하고 있다. 중남미는 다른 지역에 비해 대만과 국교를 유지하는 국가가 상대적으로 많았던 곳이다.

2017년 파나마를 시작으로 2018년에는 엘살바도르, 도미니카공화국 등이 대만에 등을 돌리고 중국과 손을 잡았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 취임 이후 이들 중남미 3개국을 포함해 총 7개국이 대만과 국교를 끊었다. 최근 온두라스에선 중국과 수교를 내세운 좌파 야당 후보 시오마라 카스트로가 승리하면서 12년 만에 정권에 교체됐다.

이번 선거는 카스트로 후보의 친중 공약으로 온두라스가 대만 단교에 나서게 될지가 주요 관전 포인트 중 하나였다.

그 공약이 현실화하면 이제 15개밖에 남지 않은 대만의 수교국에서 이탈 국가가 추가로 나오게 된다. 중남미는 아니지만 정부의 대중국 외교가 큰 폭력사태를 불러온 곳도 있다.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인 솔로몬 제도에선 지난달 24일부터 수일간 '친중 대 반중'으로 갈려 유혈충돌이 벌어져 사망자까지 나왔다.

친서방 영향권인 말라이타섬 주민들은 친중 외교를 추구하는 미나세 소가바레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격한 시위를 벌였다.

2019년 중앙정부가 대만과의 외교 관계를 끊고 중국과 수교하며 친중 행보를 확대하자 주민들이 크게 반발했고, 정부는 군경을 동원해 이에 맞섰다.
◇ 중국, 미국 '뒷마당' 중남미에 자금지원·백신으로 밀착
양안 외교 문제가 중남미 등에서 가장 뜨거운 정치적 사안이 된 것은 중국의 막대한 경제 지원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엘살바도르 등 대만과 단교를 선택한 국가는 '실용주의 외교'를 명분으로 내세워 그 대가로 중국에서 주요 인프라 투자를 약속받았다.

중국은 2000년대 후반 중남미 투자를 본격화한 것을 시작으로 대규모 직간접 투자, 저이율의 차관, 인프라·원조사업 등을 추진하며 중남미에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특히 이런 대외 정책은 도널드 트럼프 정권 시절 미중 갈등이 첨예해지면서 강화됐다.

중국으로선 미국의 '뒷마당'이라고 할 수 있는 중남미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게 미국과 경쟁 구도 속에서 지정학적으로 긴요했기 때문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중국은 2018년 미국을 제치고 멕시코를 제외한 중남미 지역의 최대 교역국으로 부상했다.

대만은 파라과이 등 동맹국에 부동산 건설과 장학금 지원, 의료·보건 인프라 강화 등 얼마 남지 않은 우방을 붙들기 위해 공을 들였지만 '큰 손' 중국을 따라갈 수 없었다.

2019년 대만의 국제 원조 예산은 3억1천800만 달러였고, 중국은 20배에 가까운 59억 달러였다.

여기에 화웨이, 샤오미, 알리바바 등 중국 기업도 중남미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팬데믹 이후에는 코로나19 백신 외교가 중국의 정치적 전략으로 급부상하기도 했다.

중국은 백신 문제를 대만 단교와 결부시키며 현지 정치권 설득에 나섰다.

대만도 동맹국에 의약품 등을 제공하는 등 대응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당장 백신 확보에 난항을 겪던 온두라스 정부는 지난 5월 백신을 이유로 중국과 외교관계를 시사하기도 했다.

이에 놀란 미 바이든 정부는 중남미에 백신 공급을 우선하겠다고 밝히면서 발 빠르게 진화에 나섰다.
◇ '양안 격전지'인 파라과이서 내부분열도…결국 미중 대리전?
중국은 남미에서 유일하게 남은 대만 수교국인 파라과이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대만 수교국에 태평양 섬나라 등 소국이 많은 상황에서 파라과이가 상대적으로 국력이 크기 때문이다.

파라과이도 양안 수교 문제로 정치권이 양분된 상태다.

지난해 4월 파라과이 상원에서 좌파 야당이 팬데믹 시대에 중국 지원이 필요하다며 중국 수교법을 발의했다.

의회를 장악한 우파의 반대로 법안이 부결되긴 했지만 야당은 정권이 교체되면 친중 외교로 전환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예고했다.

당시 중국은 파라과이가 백신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대규모 시위까지 발생하자 은밀하게 접촉, 대만과 단교하는 조건으로 코로나19 백신을 공급하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이런 사실을 파라과이 외교부가 직접 밝혔지만 중국은 공식적으론 부인했다.

대만은 중국이 생사를 가르는 백신을 정치적 수단으로 삼아 자국 동맹을 끌어들인다고 비판했다.

이에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파라과이를 향해 팬데믹 극복에 있어 대만을 포함한 동맹국과 협력할 것을 촉구했다.
솔로몬제도를 뒤흔든 반정부 시위는 미국과 중국이 배후에서 각 동맹 세력을 지원하면서 갈등을 키웠다는 분석도 있다.

솔로몬제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말라이타섬은 지난해 미국에서 2천500만달러 지원을 약속받는 등 미국과 호주 등 서방의 도움을 받았지만 중앙정부는 중국이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온두라스 대선에서 촉발된 중국 수교 논란도 단순히 양안 관계에서 파생됐다기 보다 결국 미중 갈등의 대리전 양상을 보였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대선 과정에서 카스트로 후보가 중국 수교를 선언하자 미국은 온두라스를 향해 대만 수교를 유지하라고 압박했다.

이를 두고 중국은 미국이 온두라스를 못살게 군다고 비판했다.

일부 전문가는 현재 대만과 각별한 사이를 유지하는 국가도 중국의 경제력을 앞에 두고 계속 흔들릴 수 있다고 말한다.

톰 롱 영국 워릭대학교 부교수는 중국이 막대한 자금력으로 동맹국을 규합하는 반면, 상대적으로 경제규모가 작은 대만은 더욱 각별한 관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수교 관계를 유지하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롱 부교수는 "중국이 제공하는 경제적 인센티브가 친대만 세력에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라며 "파라과이도 차이나머니를 외치는 세력에게 점점 큰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