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결국 1년 연기, '코인 과세 유예'의 씁쓸한 뒷맛

당국·업계의 준비부실이 낳은 촌극
票 의식해 법 뒤집은 국회도 책임

임현우 금융부 기자
새해에도 코인으로 번 돈엔 세금을 한 푼도 떼지 않게 됐다. 가상자산(암호화폐) 과세를 1년 미루는 내용을 담은 소득세법 개정안이 지난 2일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과세 시행일은 당초 예정한 2022년 1월 1일에서 2023년 1월 1일로, 첫 세금 납부는 2024년 5월로 1년씩 미뤄졌다. 업비트·빗썸 등 암호화폐거래소를 회원으로 둔 한국블록체인협회는 곧바로 “환영한다”는 입장문을 냈다. 투자자들도 “당연한 조치”라며 반기는 분위기다.

기자는 구체적 가이드라인 없이 강행되는 코인 과세가 시장 혼란과 탈세 시도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이런 비판이 입법에 반영돼 1년이라는 시간을 벌게 됐지만, 뒷맛이 썩 개운치는 않다.과세 유예의 빌미는 정부가 제공한 측면이 강하다. 사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상식을 생각하면 코인 과세는 당연히 이뤄져야 한다. 100만원을 벌든 100억원을 벌든 세금을 내지 않는 자산 거래시장이 정상은 아니다. 다만 코인의 이동 경로와 취득가를 투명하게 파악하려면 그만큼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국경 없이 국내외 거래소와 개인의 디지털지갑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게 가상자산이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은 “자신 있다”는 말만 거듭할 게 아니라, 업계가 제기한 여러 법적·기술적 쟁점에 책임 있는 답변을 내놓아야 했다.

정치인들도 이번 입법을 ‘2030을 위한 치적’인 양 홍보할 자격은 없다. 2022년부터 가상자산에 세금을 물리기로 한 기존 소득세법은 지난해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준비에 문제가 없다는 정부 말을 믿었다”지만 그걸로 면피가 될 순 없다. 내년에 대통령 선거가 없고 여야 대선주자의 젊은 층 지지율이 바닥이 아니었어도 과연 손바닥 뒤집듯 법을 바꿨을까.

투자자들은 암호화폐에 대한 정부의 무(無)정책을 비판하면서도 그로 인해 생긴 과세 사각지대를 은근히 즐겼다. 암호화폐업계는 이참에 “사람들이 주식처럼 거래하고 있으니 가상자산도 금융투자소득에 묶어 과세하자”는 주장까지 펴고 있다. 그렇다면 증시에 적용되는 깐깐한 투자자 보호 규제를 가상자산에 똑같이 받을 각오는 돼 있는지 묻고 싶다. 막상 그렇게 하자고 하면 반대할 것이다.

결국 정부의 준비 부족, 투자자와 거래소의 이기심, 여기에 편승한 정치권의 포퓰리즘이 뭉친 결과물이 ‘가상자산 과세 1년 유예’다. 우리 과세정책이 얼마나 즉흥적으로 결정되는지도 보여준 셈이다. 주어진 1년 동안 과세 가이드라인이 명쾌하게 정리되길 기대한다. 내년 이맘때 “한 번 더 미루자”는 논쟁이 반복돼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