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밥 돌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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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돌 전 미국 상원의원이 1997년 백악관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자유의메달을 받을 때 일이다. 그가 갑자기 손을 들더니 뜬금없이 “나 로버트 J 돌은 엄숙히 선서합니다”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좌중이 술렁거리자 그는 “아, 죄송합니다. 엉뚱한 연설(대통령직 수락연설)을 했네요”라고 얼버무렸다. 직전 해 대선에서 클린턴에게 패배한 쓰라림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것이다. 조용했던 자리에 폭소가 터졌다.
그는 표정없는 유머로 유명했다. 대선 패배 승복 연설 때도 “내일은 내 인생에서 아무 일도 없는 첫 번째 날이 될 것”이라고 자축(?)했고, 그 후엔 코미디쇼와 펩시콜라, 던킨도너츠, 심지어 비아그라 광고에도 출연했다. 그는 “선거에서 졌다고 유머까지 잃을 수는 없지 않으냐”며 너스레를 떨었다.밥 돌은 몸이 불편했다. 2차 세계대전 참전 당시 입은 부상으로 오른팔을 쓰지 못했다. 왼팔도 일부 마비됐다. 그러나 넘치는 활기와 재치있는 언행으로 항상 주위 시선을 끌었다. 고향 캔자스주에서 공화당 소속으로 35년간 상·하원 의원직을 수행했다. 공화당 최장수 원내대표 기록도 세웠다. 보수주의 거물로 대선에도 두 차례나 나갔다.
그는 항상 여유 있는 정치를 주창했다. 그러면서 강조한 게 유머와 위트다. 2018년엔 직접 미 역대 대통령 42명의 유머 수준을 평가한 책 《위대한 미국 대통령의 위트》를 내기도 했다. 결론은 유머를 지닌 지도자가 통치력도 뛰어났다는 것. 링컨은 위기 속에서도 “나는 울면 안 되기 때문에 웃는다”며 여유를 보였고, 레이건은 총에 맞아 병원에 실려가는 중에도 “여보, 나 고개를 숙이는 걸 깜빡했지 뭐야”라고 조크를 던졌다.
밥 돌이 5일(현지시간) 9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지난 2월 폐암 4기 판정 후 10개월 만이다. 그와 당은 달랐지만 24년간 함께 상원에서 일하며 우정을 쌓았던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인이 존경할 만한 사람을 잃었다”며 관공서에 조기 게양을 지시했다.한국은 바야흐로 대선의 계절이다. 정치판에서 들려오는 게 국민의 얼굴이 화끈거리는 거칠고 둔탁한 언어들뿐이다. 여야가 선거대책위원회를 본격 가동하기 시작했으니 상황이 더할 게 불 보듯 뻔하다. 밥 돌은 “정치에서 웃음보다 더 강력한 무기는 없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그런 품격의 정치를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박수진 논설위원 psj@hankyung.com
그는 표정없는 유머로 유명했다. 대선 패배 승복 연설 때도 “내일은 내 인생에서 아무 일도 없는 첫 번째 날이 될 것”이라고 자축(?)했고, 그 후엔 코미디쇼와 펩시콜라, 던킨도너츠, 심지어 비아그라 광고에도 출연했다. 그는 “선거에서 졌다고 유머까지 잃을 수는 없지 않으냐”며 너스레를 떨었다.밥 돌은 몸이 불편했다. 2차 세계대전 참전 당시 입은 부상으로 오른팔을 쓰지 못했다. 왼팔도 일부 마비됐다. 그러나 넘치는 활기와 재치있는 언행으로 항상 주위 시선을 끌었다. 고향 캔자스주에서 공화당 소속으로 35년간 상·하원 의원직을 수행했다. 공화당 최장수 원내대표 기록도 세웠다. 보수주의 거물로 대선에도 두 차례나 나갔다.
그는 항상 여유 있는 정치를 주창했다. 그러면서 강조한 게 유머와 위트다. 2018년엔 직접 미 역대 대통령 42명의 유머 수준을 평가한 책 《위대한 미국 대통령의 위트》를 내기도 했다. 결론은 유머를 지닌 지도자가 통치력도 뛰어났다는 것. 링컨은 위기 속에서도 “나는 울면 안 되기 때문에 웃는다”며 여유를 보였고, 레이건은 총에 맞아 병원에 실려가는 중에도 “여보, 나 고개를 숙이는 걸 깜빡했지 뭐야”라고 조크를 던졌다.
밥 돌이 5일(현지시간) 9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지난 2월 폐암 4기 판정 후 10개월 만이다. 그와 당은 달랐지만 24년간 함께 상원에서 일하며 우정을 쌓았던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인이 존경할 만한 사람을 잃었다”며 관공서에 조기 게양을 지시했다.한국은 바야흐로 대선의 계절이다. 정치판에서 들려오는 게 국민의 얼굴이 화끈거리는 거칠고 둔탁한 언어들뿐이다. 여야가 선거대책위원회를 본격 가동하기 시작했으니 상황이 더할 게 불 보듯 뻔하다. 밥 돌은 “정치에서 웃음보다 더 강력한 무기는 없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그런 품격의 정치를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박수진 논설위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