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안정'으로 몸 돌린 중국 수뇌부…부동산 규제 완화 시사

내년 경제 방향 논의 정치국 회의서 '안정' 최우선 과제 제시
'부동산 양성 순환' 새로 언급…"정책 조정, 경제 하방압력 가중 인식 반영"
헝다(恒大·에버그란데) 부채 위기의 폭발이 중국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가운데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한 중국 수뇌부가 '안정'을 내년 경제 운용의 최우선 목표로 제시하면서 경기 위축의 핵심 요인이 된 부동산 규제 완화를 시사했다. 중국은 올해 주택 가격 안정을 위한 부동산 산업 억제, 빅테크(거대 정보기술기업) 규제, 사교육 금지, 저탄소 전환 등 자국의 경제의 장기 발전 기틀을 마련하는 '구조 개혁'에 주력해왔는데 경기 하방 압력이 심각해졌다는 판단하에 정책 우선순위 조정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 시진핑 장기 집권 20차 당대회 앞 환경 안정 도모
7일 인민일보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의 중추 기구인 중앙정치국은 6일 내년 경제 운용 방향을 주제로 한 회의에서 가장 먼저 경제 안정 유지를 강조했다.

정치국은 "내년 경제 업무를 펴는 과정에서 '안정'이라는 단어를 가장 우선하는 가운데 온중구진(溫中求進·안정 속에서 나아감)을 견지해야 한다"며 "적극적 재정정책과 온건한 통화정책을 계속 실시하는 가운데 재정정책의 효율성은 높이고, 통화정책의 유연성을 높여 유동성 수요를 합리적으로 충족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정치국은 이어 "계속해서 민생을 개선하는 가운데 전력을 다해 거시경제의 큰 틀을 안정시켜 경제 운영이 합리적 구간에서 유지될 수 있도록 유지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사회 안정을 유지하고 20차 당대회의 승리적 개최를 맞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중국 당국이 시 주석의 장기 집권의 문을 열 내년 가을 20차 당대회를 앞두고 경제·사회 안정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과거 정치국 회의와 비교했을 때 이번 정치국 회의에서 경제 안정 메시지가 크게 강조됐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왕타오(汪濤) UBS 중국 담당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회의에서는 안정적 성장이 최우선 임무로 규정됐다"며 "이번 정책 기조 조정은 부동산 위축으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포함한 경제 하방 압력의 가중 상황을 의식하고 실무적 조정으로 대응하겠다는 고위층의 의중을 반영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부동산 개발업체들의 유동성 위기가 중국 채권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연례 경제 회의(중앙경제공작회의)를 앞두고 중국 지도부가 모여 2022년 경제 안정을 약속했다"고 지적했다.

경기 하방 압력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중국 당국이 전날 지급준비율 인하를 통해 1조2천억 위안(약 223조원)의 장기 유동성 공급에 나서겠다고 발표한 것 역시 중국 당국의 경제 정책 초점이 경제 안정 쪽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 조처로 평가된다. ◇ 경제 위기 고조에 부동산 규제 완화로 전환
전날 정치국 회의에서는 부동산 규제 정책의 변화도 예고됐다.

정치국은 부동산 분야와 관련해 "주택 시장이 주택 구매자의 합리적 주택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지지하고 부동산 산업의 건강한 발전 및 양성(良性) 순환을 촉진한다"고 언급했다.

정치국은 이날 과거 부동산 억제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으레 쓰던 '집은 사는 곳이지 투기 대상이 아니다' 표현을 들어내는 대신 '부동산 산업의 양성 순환'이라는 말을 새로 넣었는데 시장에서는 당국의 부동산 정책 기조 변화를 예고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로빈 싱 모건스탠리 중국 담당 이코노미스트는 "주택 분야와 관련한 어조가 더 비둘기파적이었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 통신도 중국 수뇌부가 부동산 규제 완화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으로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주택담보대출 및 부동산 개발업체의 사업 자금 대출 활성화 등 각종 규제 완화 조처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한다.

왕타오 이코노미스트는 "부동산 활력 약화 흐름을 되돌릴 만큼의 (고강도) 부양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부동산 하방 압력을 완화하고 경제 경착륙을 방지하기 위해 향후 수개월에 걸쳐 정책이 더욱 완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의 심각한 부동산 경기 위축 현상은 당국이 작년 하반기부터 주택 가격 안정 및 부동산 산업 거품 제거 차원에서 강력한 부동산 산업 억제 정책을 펴면서 초래됐다.

중국 당국은 이른바 '3대 마지노선' 제도를 도입, 헝다처럼 차입에 주로 의존한 사업 구조를 가진 부동산 개발 업체들에 금융권의 대출이 어렵게 만들었다.

이 밖에도 당국은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고객에게서 받은 분양 대금을 사업에 활용하지 못하도록 지정 예탁 계좌에 보관하도록 요구하는 등 각종 새 규제를 들고 나왔다.

채권 발행, 금융권 대출, 분양 대금 등 차입금으로 사업을 진행하던 많은 부동산 개발업체들의 사업 진행이 사실상 불가능해져 이들 업체의 심각한 유동성 위기로 이어졌고 사업은 마비됐다.

당국의 지시로 중국 국유은행들이 부동산 자금줄 차단에 나선 가운데 유동성 위기 심화로 중국 안팎 회사채 시장에서 중국 부동산 기업들의 투기등급 채권 금리까지 치솟으면서 중국 부동산 기업들은 어느 곳에서도 자금을 구할 수 없어 집단 디폴트 위기로 내몰렸다.

아울러 중국은 주택담보대출 총량 관리를 통해 주택담보대출 규모를 제한하고 주민들의 주택 구매 자격 문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주택 수요도 강력히 억눌렀다.

이런 중국의 정책은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거의 30%에 해당하는 부동산 시장의 심각한 위축으로 이어졌다.

결국 세계적 원자재 가격 상승, 코로나19 지속 확산 등의 복합 악재 속에서 중국의 경제 둔화 위기가 고조되자 중국 정부가 '부동산 개혁'의 고삐를 늦추는 선택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인터넷 기업 압박 표현도 사라져…"시장 우려에 반응"
한편 경제 안정 기조가 전면화한 가운데 전날 정치국 회의에서는 빅테크 규제에 관한 어조도 한층 누그러져 눈길을 끈다.

정치국은 이번에 "기업의 혁신 주체로서의 지위를 강화하고 과학기술, 산업, 금융의 양성 순환을 실현한다"면서 기업의 역할을 강조했다.

작년 12월 중앙경제공작회의를 앞두고 열린 회의에서는 정치국은 알리바바 등 빅테크를 겨냥, 반독점 원칙을 강조하면서 "자본의 무질서한 확장을 방지한다"는 내용을 처음으로 넣었는데 이번 발표문에서 반독점 등 빅테크를 직접적으로 겨눈 것으로 보이는 표현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간 중국 안팎의 시장에서는 부동산, 빅테크, 사교육, 환경 등 분야에서 중국 당국이 강력히 추진하는 거친 '구조 개혁'이 '규제 리스크'를 불러일으켜 중국 경제에 큰 부담 요인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왕타오 이코노미스트는 "구조개혁과 관련해 이번 회의에서는 시장 주체의 활력을 강화하는 내용이 강조됐다"며 "당국이 이런 표현을 통해 최근 수개월 동안 시장에 존재했던 부분적인 우려와 의문에 간접적으로 답변을 했다"고 해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