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고 늘리고 쪽지예산까지 등장…서울시 예산 전쟁 '점입가경'

의회에서 잘린 내년 서울시 예산 3162억..끼워넣기 53건
오세훈표 정책 모조리 삭감..지역예산 증액 잇따라
서울시-구청장협의회, 혁신교육지구 예산 '갈등'
사진=연합뉴스
1000만 서울시민 혈세로 운영되는 서울시 예산을 둘러싸고 시와 서울시의회, 각 자치구간 전쟁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내년 서울시 예산은 서울시의회 심의과정에서 사업별로 감액과 증액이 이어지며 3000억원 넘게 깎인 것으로 나타났다. 시의원들이 지역구를 챙기기 위해 끼워넣은 ‘쪽지 예산’이 잇따르고, 구청장들도 서울시와 예산을 놓고 ‘공개 대결’ 국면에 돌입했다.

9천억 깎이고 6천억 증액

7일 서울시와 서울시의회에 따르면 서울시의회 9개 상임위원회에서 의결한 2022년 서울시 예산은 총 43조7586억원이다. 서울시가 지난 달 편성한 44조748원보다 3162억원 줄어든 것이다. 서울시가 당초 제출한 예산안 중 218개 사업, 9193억원이 감액되고 253개 사업, 6031억원은 증액된 결과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주도한 정책들은 서울시의회에서 줄줄이 전액 삭감돼 사업 자체가 원천봉쇄됐다. 교육 플랫폼인 ‘서울런’(168억원), 안심소득 시범사업(74억원), 뷰티도시사업(43억원) 등은 예산 전액이 깎였다.

청년 정책 예산도 ‘오세훈표’ 여부에 따라 희비가 갈렸다. 서울시의회는 지역별 서울청년센터에 37억원을 증액하고 전임시장부터 운영해오던 청년공간무중력지대에는 8억원을 추가해준 반면, 오 시장이 추진한 청년 대중교통 요금 지원금 152억원은 전체 삭감했다. 특히 서울사랑상품권 예산 처리는 시와 시의회간 예산 갈등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라는 지적이다. 서울시가 시 전체에서 사용할 수 있는 광역사랑상품권을 내년에 처음으로 선보이려 했으나 의회에서는 여기에 배정된 예산 113억원 전액을 깎았다. 대신 이 금액 그대로 자치구별 발행하는 지역사랑상품권에 추가 지원금을 넣어준 것으로 나타났다.

의회 신설 예산 53건 달해

시와 의회간 예산안 갈등은 서울시 출연기관들에 불똥이 튀었다.

서울시의회는 세종문화회관(42억원 삭감), 서울디자인재단(38억원), 서울산업진흥원(34억원), 서울시립교향악단(9억원) 등 오 시장이 임명한 기관장이 있는 기관들의 출연금을 대폭 깎았다. 서울시가 삭감했던 TBS(교통방송) 출연금을 136억원 되살려 389억원으로 편성한 것과는 대조적인 움직임이다. 내년 선거를 의식한 시의원들의 ‘쪽지 예산’도 줄줄이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의회 상임위 심의 과정에서 새로 들어간 사업은 총 53건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증액 사업 253건의 21%에 해당한다. 서울시가 당초 예산안에서 편성하지 않았던 항목이 의회에서 신설된 것이다.

의회에서 신설한 예산은 서남권 제2세종문화회관 건립(48억원), 서울식물원 일대 문화예술거리 조성(20억원), 우이천 문화거리 조성(17억원), 손기정 탄생 110주년 기념 행사(3억원) 등 지역 사업이 대부분이다.

민주당 소속 구청장 ‘반발’

서울시가 예산을 감액한 서울형 혁신교육지구 지원사업에 대해선 서울시의 민간인 정보요구 등을 두고 구청장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구청장 대행체제인 서초구와 종로구를 제외한 23개 구청장들은 입장문을 내고 “서울시가 자치구에 혁신교육지구 사업과 관련한 단체와 학부모, 학생 명단까지 요구한 것은 사찰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모두 오 시장(국민의힘)과 정당이 다른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서울형 혁신교육지구 지원사업은 지역사회가 협력하는 마을교육공동체 사업이다. 서울시가 관련사업 예산을 감액하고 시의회가 다시 125억원으로 되돌려놓았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달 16일 공개적으로 “전액 복원해달라”고 요구한 것을 의회가 받아들인 것이다.

이에 대해 이창근 서울시 대변인은 “서울형혁신교육지구 사업을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면서 “서울시교육청과 자치구 재정이 상대적으로 여력이 있는 만큼 예산을 분담해달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 대변인은 "개인정보에 해당하는 학부모‧학생 명단에 대해서는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고 통보했다"고 해명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서울시 공무원들의 코로나19 확진 판정으로 시의회 예산 본심사 일정에 차질이 생기게 됐다. 서울시 국·실장을 포함해 공무원 6명이 이날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8일 이후 시의회 예산 본심사 일정이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 서울시의회는 오는 16일까지 서울시 내년 예산안에 대한 본심사를 진행한다. 22일 서울시의회 본회의까지 예산안이 의결되지 않으면 연말까지 임시회의를 통해 협상을 한다. 그때까지도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서울시는 잠정적 예산집행 단계인 ‘준예산 체계’를 적용해 운영하게 된다.

하수정/정지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