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꿀로 고급 美食 상품을 만들 수 있을까 [문정훈의 푸드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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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벌·양벌 비율 1 대 99…꿀 가격도 10배 차이“우리 토종꿀의 성분이 더 우수하다는 것을 꼭 보여주세요.” 3년 전 농림축산식품부 회의실에 모인 토종꿀 생산자들이 연구진에게 간곡히 요청했다. 토종꿀은 일반 꿀에 비해 가격이 월등히 비싼데 토종꿀을 생산하는 토종벌 개체 수가 질병으로 급격히 줄어든 상황이었다. “네. 토종꿀에 어떤 특별한 성분이 있는지 열심히 조사해보겠습니다.” 토종벌의 생육과 채밀(採蜜) 행동 연구를 담당한 곤충생태학자 이승환 서울대 교수, 토종꿀의 성분 및 기능성 연구를 맡은 꿀 품질 전문가 윤병수 경기대 교수와 함께 고군분투한 3년간의 토종꿀 연구 여정이 시작되는 참이었다.
전국 순회하는 '이동식 양봉' 불가능한 토종벌
지역 사계절 피는 다양한 꽃에서 천천히 꿀 모아
다채로운 맛·향 가진 토종꿀, 와인과 꼭 닮아
전국 돌아다니며 찾아낸 꿀 18시간만에 완판
고급 식재료 변신과 생태계 회복 가능성 확인
“토종벌이 사라지니 산꽃과 들꽃도 함께 사라집니다”
토종꿀 상품화 및 홍보 마케팅 연구를 담당한 서울대 푸드비즈니스랩은 첫 1년간은 토종꿀이 일반 꿀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부터 공부해야 했다. 토종꿀은 기본적으로 토종벌이 생산한 꿀을 의미한다. 전 세계적으로 꽃에서 꿀을 따며 생활하는 꿀벌은 현재 여덟 종(種)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아시아에 분포하는 종인 재래꿀벌(Apis cerana)의 아종(亞種) 중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것이 우리 토종벌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 땅에 살아온 꿀벌이다. 19세기, 독일 선교사 퀴겔겐이 유럽의 꿀벌종(Apis mellifera)을 한국에 들여왔다. 흔히 우리가 ‘양벌’이라고 부르는 종이다.이 두 종의 꿀벌은 우리나라 생태계에서 식물 수분(受粉)이라는 중요한 역할과 함께 공존하고 있었는데, 2009년부터 그 공존의 균형이 깨지기 시작했다. 정확한 자료는 없으나 학계에서는 2021년 현재 토종벌과 양벌의 비율을 대략 1 대 99 정도로 보고 있다. 토종벌이 멸종 위기에 처한 것이다. 2009년 발생한 토종벌에 치명적인 ‘낭충봉아부패병’이라는 병 때문인데, 확산 속도가 빠를 뿐 아니라 치사율이 무려 95%다. 놀라운 사실은 이 병은 토종벌에게만 치명적이고 양벌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병으로 토종벌만 대부분 죽으니 많은 토종벌 생산자가 토종벌을 포기하고 양벌을 양봉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토종꿀에 대한 현황 조사를 하다 만난 경북 의성의 한 토종꿀 생산자는 처연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의성에 낭충봉아부패병이 돌면서 산에서 기르던 토종벌 개체가 줄어드니 이상하게도 의성의 산과 들에 피던 이름 모를 산꽃과 들꽃들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야기에 충격받고 이런 관찰이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것인지 관련 해외 연구를 찾아봤다.
그중 한 논문은 같은 지역의 재래꿀벌 벌통과 양벌 벌통 가운데 한쪽 벌통에서만 특정 꽃가루가 발견된다는 점에서 두 종의 벌이 선호하는 꽃이 일부 다르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벌이 채밀할 때 몸에 꽃가루를 묻힌 채 돌아오므로 벌통 속 꽃가루를 분석하면 벌들이 어떤 꽃에서 채밀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이번 공동 연구에서 토종벌의 생태를 관찰 연구한 이승환 교수도 토종벌과 양벌이 선호하는 꽃이 다소 다르다고 보고했다. 의성 토종꿀 생산자의 관찰이 나름 근거 있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토종꿀은 비쌀 수밖에 없다
토종꿀의 가격은 비싸다. 어떻게 해도 양벌의 일반 꿀보다 싸게 판매하기가 어렵다. 양벌은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힘세고 열심히 일하는 일꾼이다. 양벌 한 마리가 날아가서 한 번 채밀해오는 꿀의 양이 37㎎인 데 비해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토종벌은 절반도 안 되는 16㎎을 갖고 온다. 토종벌은 조금씩 천천히 일하고 양벌은 열심히 빠르게 일하는 특성이 있다.두 벌의 특성은 또 다른 흥미로운 행동으로 이어진다. 토종벌은 적게 채밀하는 만큼 자신이 모아둔 꿀을 덜 소비하고, 양벌은 꿀을 열심히 모은 만큼 자체 소비량도 많다. 그래서 양벌이 모은 꿀은 중간중간 내리지 않으면 인간에게 돌아올 몫이 별로 없다. 그래서 여러 번 내려서 수확량이 많다. 반면에 토종꿀은 1년에 딱 한 번, 꽃이 다 진 11월에 토종벌이 겨우내 먹을 몫을 남기고 인간이 먹을 꿀을 내린다. 중간에 여러 번 꿀을 내리려 하면 성질 고약한 토종벌은 벌통을 버리고 날아가 버린다. 이러니 수확량이 일반 꿀에 비해 훨씬 적을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벌이 먹을 꿀을 벌통에 남기지 않고 전부 내려버리는 약탈적 양봉 방식이 유행했지만, 최근에는 벌과 인간이 공존하는 지속가능한 양봉법으로 돌아서고 있다. 인간은 우리에게 꿀을 공급하는 벌을 위해 벌통 인근에 밀원(蜜源)식물을 조성해줌으로써 벌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토종꿀 1.2㎏이 들어가 있는 꿀단지 하나가 20만원을 넘는 경우도 많다. 일반 꿀 가격의 열 배에 달한다. 상품 가격이 이렇게 비싸면 그 비싼 값을 해야 하니, 토종꿀이 일반 꿀과 무엇이 다른지를 찾아내야 했다. 우리 연구진은 그 차별점을 찾아내는 데 연구의 초점을 맞췄다.
“그러니까…토종꿀은 비싼 잡화꿀이네요?”
“토종꿀이 일반 꿀에 비해 기능적으로 특별한 차이가 있다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다. 꿀 품질 전문가인 윤병수 교수는 토종꿀 성분 분석 결과에 대해 과학자로서 책임감 있는 발언을 했다. 회의실에 함께 모인 토종꿀 생산자들의 얼굴엔 실망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래도 성분을 좀 더 찾아봐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생산자들은 연구진에게 호소했다. “좀 더 해보긴 하겠지만,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윤 교수가 담담하게 이야기했다.성분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는데 가격이 열 배나 비싼 꿀을 어떻게 상품화해 팔아야 할까? 앞이 깜깜했다. 상품화를 위해 먼저 어떤 상황에서 꿀을 구매하고, 또 어떻게 꿀을 소비하는지 조사에 나섰다. 일반 꿀은 청을 담거나 꿀차를 마실 때 주로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리용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한국인의 일상에서 꿀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미미했고, 구매 의사가 높지 않았다. 비싼 토종꿀로 청을 내거나, 꿀차를 마시거나, 요리용으로 쓰게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토종꿀을 구매하는 주요 고객은 70~80대로 토종꿀을 약이라고 생각하고 매일 한 숟갈씩 섭취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를 약이라 여기니 구매 의사가 높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과학적으로 토종꿀에 특별한 성분과 효능이 더 있다는 것을 밝히지 못했다.
고급 꿀로 인식되는 유채꿀, 아까시(아카시아)꿀, 밤꿀 등과 같이 특정 꽃 이름이 붙은 꽃꿀은 모두 양벌이 생산한 꿀이다. 이런 꽃꿀은 해당 식물 특유의 향을 즐기는 것으로 어떤 꽃에서 유래했느냐에 따라 확연히 다른 향이 난다. 양벌은 성격이 무던해서 벌통을 이리저리 옮겨도 달아나지 않는다. 그래서 유채꿀은 벌통을 트럭에 싣고 유채꽃이 피는 곳을 쫓아 전국을 순회하며 채밀하는 ‘이동식 양봉’을 통해 얻는다. 양벌은 수확량도 많아 금방 유채꿀이 벌통에 가득 찬다. 그러면 꿀을 내리고 또 빈 꿀통을 트럭에 싣고 유채꽃이 피는 곳으로 가서 근처에 두면 금방 꿀이 다시 찬다.
그러나 성질이 고약한 토종벌은 이런 식으로 이동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꿀통을 금방 가득 채울 만큼 열심히 일하지도 않는다. 인적이 없는 곳 깊숙이 봄에 가져다 놓고 그대로 겨울 초입까지 유지하는 ‘고정식 양봉’만 가능하다. 그 지역에서 사계절 동안 피고 지는 다양한 꽃의 꿀을 천천히 모았다가 한 번에 수확한다. “그러니까 토종꿀은 비싼 잡화(雜花)꿀이라는 거네요?”라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비싼 잡화꿀을 상품화해 파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심적 고통이 만만치 않았다.
토종꿀은 지역의 사계절 향이 담긴 달콤한 와인
외국 꿀에 대해 찾다 보니 스페인에서는 잡화꿀을 ‘미엘 데 밀 플로레스(Miel de Mil Flores)’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말로 번역하니 ‘천(千) 꽃에서 딴 꿀’이라는 의미다. ‘잡화꿀을 참 시적으로 표현했군. 그럼 꿀에서 천 가지 꽃향기가 나겠네?’라며 피식하고 웃다가 별안간 ‘실제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각 지역에서 수집해 온 토종꿀 샘플을 다시 하나씩 맛을 보는데 같은 꿀 안에서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맛과 향의 변화가 느껴졌다. ‘뭐야, 이거 와인 같잖아?’아까시꿀, 유채꿀과 같은 특정 꽃꿀은 해당 꽃의 향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꽃에 따라 개성 있고 강렬하지만 복잡한 향을 갖고 있지는 않다. 어떤 유채꿀을 사봐도 꿀의 향은 동일하다. 반면에 고정식 양봉을 하는 토종꿀은 그 지역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피었다 지는 다양한 꽃의 향이 차곡차곡 벌통 속에 담긴다. 이렇게 1년에 한 번 수확한 토종꿀은 직선적이지 않으며 복잡하고 다채로운 향이 담긴다. 각 지역의 기후와 식생이 서로 다르니 지역마다 꿀의 맛과 향이 확연히 갈린다. 또한 매년 장마 시기와 강수량, 일조량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같은 지역의 토종꿀이라도 매년 맛에 약간의 베리에이션이 생기는데 이게 또 다른 매력이다. 이 개념을 꿀에서 포도로 옮기면 딱 고급 와인이다. 토종꿀 상품화의 방향이 ‘효능’에서 ‘미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타깃은 미식에 관심이 많은 중산층 이상의 중년, 그리고 명절 때 어르신께 고급 선물을 하려는 직장인으로 설정했다.
고급 미식 상품으로 재탄생한 토종꿀
토종꿀을 상품화하는 데 있어 또 하나 어려움은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토종꿀은 알음알음으로 생산자에게 찾아가서 꿀단지를 직접 구매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이를 양성화하지 않으면 접근성이 떨어져 제대로 된 상품 판매를 할 수 없었다. 좋은 토종꿀을 상품화해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해 줄 유통업체를 찾아 나섰으나 모두가 토종꿀은 관심 밖이거나 고가라서 팔기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그렇게 지쳐갈 때쯤 ‘프롬’이라는 온라인 유통 플랫폼 스타트업을 만나게 됐고 함께 의기투합해 토종꿀을 찾아, 전국의 토종꿀 생산자를 찾아 돌아다녔다. 어찌나 많이 돌아다녔는지 토종꿀 생산자들 사이에서 ‘이상한 스파이 같은 사람들이 토종꿀에 대한 정보를 캐고 다닌다’며 신분 확인 전화까지 왔을 정도다.좋은 토종꿀 생산지와 토종벌 생태를 연구하는 이승환 교수 연구진이 1차로 물색해줬고, 서울대 푸드비즈니스랩과 프롬은 전국의 생산지를 발로 뛰며 샘플을 구했다. 그리고 꿀 품질 전문가인 윤병수 교수 연구진은 우리가 구한 샘플에서 설탕물을 먹인 사양(飼養)꿀 여부 등의 품질 검사를 담당했다. 프롬은 상품화 과정에서 전통적인 큰 꿀단지를 버리고 용량을 충분히 줄이고 새로 디자인한 병에 토종꿀을 담았다. ‘오인국 생산자의 2020년산 연천 DMZ 토종꿀’ ‘이명수 생산자의 2020년산 원주 소초면 치악산 토종꿀’ ‘조영선 생산자의 2018년산 제천 덕산면 토종꿀’ 등이 새롭게 탄생한 토종꿀의 상품명이었다. 그리고 소비자가 맛과 향을 비교해 먹을 수 있도록 서로 다른 두세 가지 토종꿀을 묶어 세트 상품을 구성했다. 우리의 목표는 토종꿀을 고급 와인 팔 듯 판매하는 것이었다.
2020년 말 온라인에서 처음 판매하던 날 15만원짜리 토종꿀 100세트를 18시간 만에 완판했다. 대성공이었다. 이 토종꿀 세트 제품을 맛본 한 구매자의 후기를 보자. “2020년산 연천 DMZ 토종꿀은 꽃 향이 정말 엄청나고 산미가 있는 꿀이라 팬케이크와 리코타 치즈에 뿌려 먹으니 맛있었습니다. 커피로 치자면 아리차 내추럴이 떠오르는 맛이에요. 2018년산 제천 덕산면 토종꿀은 처음 먹고 놀랐는데, 스모키 향이 강해서 과테말라 커피가 떠올랐고, 꾸덕하며 나무향도 느껴지고 보디감이 엄청난 꿀이었어요. 향신료라는 느낌까지 들었고, 따뜻한 우유에 타서도 마셔봤는데 부드럽게 어우러졌습니다.” 멸종에 이르고 있던 토종벌의 개체 수가 다시 늘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본 날이기도 했다. 농촌진흥청은 최근 낭충봉아부패병에 저항성이 있는 토종벌을 새롭게 육성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제 시작이다.
3년의 토종꿀 연구 여정은 끝이 났지만, 프롬의 직원들은 지금도 좋은 토종꿀을 찾아 전국을 누비며 상품화에 힘쓰고 있다. 2차, 3차 토종꿀 상품도 완판에 성공했다. 소비자가 토종꿀을 찾아야 더 많은 생산자가 토종벌을 기를 힘이 생기고, 그래야만 생태계의 다양성을 회복하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열 수 있다. 그래서 좋은 상품이 필요하고, 이는 식품 마케터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 문정훈은KAIST 경영과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로 푸드비즈니스랩을 이끌고 있다. 푸드비즈니스랩은 더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노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 모여 흥미로운 작당을 하는 곳으로, 농식품의 가치를 발굴하고 상품화해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먹거리에 세련되고 까다로운 소비자가 이 세상을 구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연다는 믿음 아래 끊임없이 소비자와 소통한다. 자신의 취향을 모르거나 주는 대로 먹는 소비자들이 자기 주도적 소비를 하도록 도움으로써 획일화된 농식품 산업의 관행을 깨뜨리고 다양성의 세계를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