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시대역행한 韓전기차 보조금 정책

보조금 美 늘리는데 韓은 줄여
국내車 주가 저평가 요인 될 것

고윤상 증권부 기자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보급률을 높이려고 보조금을 늘리는 추세인데, 왜 우리는 시대를 역행하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글로벌 역량을 갖춘 한국 자동차 업체들이 미래차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데 정부가 일조하는 꼴입니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내년도 국내 전기차 보조금 정책 변화를 이해할 수 없다면서 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 산업 초기 투자 심리나 산업 발전 여부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보조금 정책이 글로벌 트렌드와 어긋나고 있다는 지적이 증권업계에서 나오고 있다.환경부에 따르면 내년 전기차 보급 목표는 올해보다 두 배 많은 23만5000대다. 보조금 예산은 1조9532억원으로 올해보다 8000억원, 약 70% 늘었다. 대수당 지급액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최대 보조금은 800만원에서 600만원으로, 보조금 100%를 받기 위한 차량 가격을 최대 600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각각 낮추는 내용을 정부는 추진하고 있다. 보조금을 못 받게 되거나 대폭 줄어드는 모델이 늘어나면서 내년도 전기차 구매자들의 실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미국은 보조금을 늘리려 하고 있다. 올해까진 4만달러 이하 차량에 7500달러 세액 공제 혜택을 제공했다. 미국 하원에서는 이를 2026년까지 최대 1만2500달러로 늘리는 법안이 이달 논의될 예정이다. 미국 내 노조를 보유한 공장에서 생산한 차량은 4500달러를 추가 지급하고, 미국 내 생산한 배터리를 탑재할 경우 500달러를 추가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보조금 지급 차량 가격 상한선은 8만달러로 대폭 올린다. 픽업트럭,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 다양한 전기차 모델 보급을 촉진하기 위해서다.

국내 전기차 수요는 보조금 상한에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보조금 확대가 수입 업체 키워주기’라는 정부 일각의 우려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보조금을 통해 고급 모델까지 다양한 전기차가 보급되는 건 내수시장 입지가 튼튼한 국내 업체에도 장기적으로 유리하다. 오히려 글로벌 투자자가 보기엔 한국 자동차 업체들의 투자 매력만 떨어뜨리는 꼴이 될 수 있다. 안 그래도 현대차의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수준)은 미래차 가치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올 들어 외국인은 현대차를 지난 6일까지 1조620억원어치 순매도했다. 제너럴모터스(GM) 주가가 올 들어 47% 오르는 동안 현대차 주가는 제자리다.

주가 때문만이 아니다. 산업 초기의 작은 변화는 추후 시장 발전 속도에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게 그동안 산업 발전사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최소한 글로벌 트렌드에는 역행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