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아침] 에드워드 웨스턴 '피망'

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굵고 힘있게 휘어진 형체의 표면 위로 빛이 쏟아진다. 윤기 흐르는 표피와 짙은 음영 때문에 이 물체는 꿈틀거리는 생명체 혹은 근육이 잘 발달한 인간의 뒷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장면은 미국의 사진가 에드워드 웨스턴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피망’이다. 평범한 채소인 피망을 촬영한 이 사진은 인간의 눈이 놓친 사물의 느낌을 극대화해 드러냈다. 웨스턴은 ‘렌즈는 인간의 눈보다 많은 것을 본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렌즈의 조리개를 64까지 극단적으로 좁혀 피사체를 선명하고 정밀하게 촬영했다. 웨스턴의 작품들은 어떤 보정도, 주관성도 배제하고 빛과 그림자에 의존해 피사체를 찍은 것이지만 관람자들의 시선을 휘어잡았다. 일상의 물건들로부터 탁월한 조형적 아름다움을 포착해낸 수작들이다. 또한 웨스턴 사진의 바탕엔 모든 사물은 그 자체로 의미 있고 존엄한 존재라는 철학이 깔려 있다. 사진예술의 지평을 활짝 넓힌 웨스턴은 사진계의 피카소라는 평가를 받았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