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견제' 110개국 참여 민주주의 정상회의 美 주도로 개막

바이든 "독재자들이 영향력 확대"…"미국도 이상 부응 분투" 몸 낮춰
중국과 러시아 견제 차원에서 미국이 주도한 민주주의 정상회의가 9일(현지시간) 개막했다. 약 110개국 정부와 시민사회, 민간 분야 관계자들을 초청해 화상으로 열린 이 회의는 10일까지 이틀간 진행된다.

바이든 대통령의 개막 연설에서는 한국과 프랑스, 인도, 일본 등을 포함해 약 80개국의 정상이 영상을 통해 얼굴을 맞댔다.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이번 회의는 미국이 권위주의 정권으로 규정한 중국과 러시아를 협공하기 위해 우군을 최대한 넓히고 미국의 리더십을 강화하려는 차원에서 마련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이번 회의는 미중 갈등 격화 속에 미국의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 선언 이후 서방의 동참 국가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열렸다.

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려 탓에 지난 6일 미·러 정상회담이 열리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러시아에 초강경 압박을 이어가는 와중이기도 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개막 연설에서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우려스러운 도전에 직면한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챔피언을 필요로 한다"며 미국의 주도적 역할을 다짐하며 동맹과 파트너의 협력을 강조했다. 또 "외부 독재자들은 전 세계에 영향력을 확대함으로써 그들의 힘을 키우고 억압적 정책을 정당화하려 한다"고 말했다.

국가 명을 거론하진 않았지만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다만 작년 미 대선 후 불복 논란, 1·6 의사당 난동사태 등 민주 국가로서 실추된 이미지를 염두에 둔 듯 "미국 민주주의는 최고의 이상에 부응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고 몸을 낮추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내년에 전 세계 민주주의 증진을 위해 4억2천440만 달러(4천993억 원)를 투자하는 민주주의 회복 구상을 내놓으며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은 이번 회의를 통해 참가국 간에 권위주의 타파, 부패 척결, 인권 증진에 관한 구상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 내년 2차 회의를 개최해 각국의 약속 이행 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다.
초청 대상에서 배제된 중국과 러시아는 강하게 반발했다.

양국의 주미 대사는 지난달 말 한 공동 기고문에서 이 회의가 "전형적인 냉전적 사고로, 이데올로기 대립을 선동해 새로운 분열을 만들 것"이라며 미국을 향해 대립과 선동을 멈추라고 촉구했다.

특히 내정간섭이라고 반발해온 중국은 지난 4일 자체 민주주의 백서를 발간하고 120여 개 국가나 지역에서 참석한 맞불성 국제포럼 행사를 개최할 정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유일하게 초청 대상에서 제외된 헝가리는 EU 집행위원장이 EU를 대표해 연설하는 것을 막으려 하기도 했다. 한편 미국 내에서는 이번 회의에 초청된 나라 중에는 민주주의 모범국으로 보기 힘든 국가도 적지 않아 선정 기준이 불투명하고, 미국이 자국 이해관계에 따라 자의적으로 결정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