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 인구 250만명…"요즘 비건은 이렇게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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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 수요 급증…유통가 입맛을 바꿨다
편의점·대형마트, 채식주의 제품 선보여
식품업계, 차세대 먹거리 대체육 시도 줄이어
# 간헐적 채식을 하는 직장인 A씨는 일주일에 두 번 편의점에서 채식 도시락을 사먹는다. 원하는 메뉴를 편의점 애플리케이션(앱)에서 미리 예약하면 손쉽게 직장 근처 편의점에서 맛볼 수 있다. A씨는 "팀원들이 번갈아 재택근무를 하는데 회사에 나오는 날에는 편의점 채식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해결하고 있다"며 "두달째로 접어들었는데 몸이 확실히 가벼워진 느낌"이라며 웃음지었다.
# 직장인 B씨는 최근 비건(완전한 채식주의자) 친구와 한 버거 프랜차이즈에서 만나 대체육 너깃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그는 "닭고기와 똑같지는 않지만 소스를 뿌려 먹으니 나름대로 맛이 있었다"며 "비건 친구와 갈 수 있는 음식점이 갈수록 늘어나 새로운 맛을 찾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채식주의자의 메뉴 선택지가 늘어나고 있다.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 소비하는 '미닝아웃' 소비가 확산하면서 대체육 등 채식 관련 시장에 기업들이 앞다퉈 뛰어든 결과다.
"채식주의자 환영"…편의점부터 대형마트 정육점까지
우선 생활 속 장보기 거점인 편의점과 대형마트 등에서 채식주의자를 위한 만반의 대비에 나섰다.10일 업계에 따르면 이달(8일 기준) 편의점 CU의 멤버십 앱 '포켓CU'의 삼각김밥 카테고리 예약구매 판매량 1~3위를 모두 채식 상품이 차지했다. 1위는 ‘채식주의 참치마요 삼각김밥’, 2위는 ‘채식주의 전주비빔 삼각김밥’, 3위는 '언리미트 채식삼각김밥’이었다.
김밥 카테고리에서도 채식 김밥 '채식주의 마요유부초밥’과 ‘채식주의 마요김밥’이 선두권을 다퉜다. 두 상품 모두 식물성 참치를 활용한 제품으로 일반 참치 김밥의 예약구매 수량보다 5.5배나 많은 예약이 접수된 것으로 전해졋다. 도시락 카테고리에서도 대체육과 채식 소스로 맛을 낸 ‘채식주의 볼 파스타’가 출시 2주 만에 예약구매 1위에 이름을 올렸다.특히 채식주의자가 아닌 소비자들도 채식 콘셉트 간편식 구매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점포 채식주의 상품 구입 고객의 동반 구매 상품을 분석한 결과, 4명 중 3명(74.1%)이 컵라면, 핫바, 치즈, 우유 등 일반 상품을 함께 산 것으로 집계됐다.
CU 관계자는 "비건이 아닌 일반 소비자들이 상품에 대한 호기심, 건강 관리 등 다양한 이유로 채식주의 간편식을 구매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풀이했다.대형마트에서도 채식주의자 모시기에 나섰다. 국내 1위 대형마트 이마트는 일부 매장에 채식 상품을 한 데 모은 '채식주의 존'을 연 데 이어 최근 축산 매장에서 대체육 판매를 시작했다. '가짜 고기'인 대체육이 진짜 고기와 함께 진열된 것이다. 신동훈 이마트 육류 바이어는 “가치소비 신념에 따라 채식을 실천하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채식이 하나의 식문화로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매장을 구현할 것”이라고 말했다.
불고기 덮밥부터 너깃까지…다양한 대체육 메뉴 쏟아져
채식 수요 확산 속 대체육은 식품 기업들에게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은 식재료로 떠올랐다. 대체육은 콩고기를 생각하면 쉽다. 식물성 단백질 등을 활용해 모양과 식감을 고기와 유사하게 만든 식재료다.대표적으로 국내 두부 시장 1위 사업자인 풀무원식품이 일가견이 있는 콩을 활용해 '한국식 대체육' 사업을 본격화하기로 했다. 이의 일환으로 식물성 대체육을 함유한 HMR 제품 '식물성 직화불고기 덮밥소스'를 선보였다. 소스에 들어간 대체육은 콩에서 추출한 ‘식물성조직단백(TVP) 소재를 가공해 일반 고기와 유사한 맛, 질감을 구현해냈다고 회사는 설명했다.풀무원식품 관계자는 "한국인에게 익숙한 ‘불고기’와 ‘덮밥’이라는 메뉴에 착안해 아직은 대체육이 생소한 국내 소비자도 일상에서 가볍게 시도해 볼 수 있도록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신세계그룹 계열 신세계푸드의 경우 2016년부터 대체육 연구개발을 진행한 끝에 올해 대체육 브랜드 '베러미트'를 선보였다. 닭고기에 이어 돼지고기 대체육 시장을 공략한 것. 앞서 신세계푸드는 자사 햄버거 프랜차이즈 '노브랜드 버거'에서 대체육 치킨너깃을 선보인 바 있다.롯데그룹의 롯데푸드도 식물성 대체육 브랜드 ‘제로미트’를 운영하고 있다. 식물 유래 단백질로 만든 함박스테이크와 너깃 등을 판매하고 있다. 햄버거 프랜차이즈 롯데리아를 운영하는 롯데GRS는 지난해 대체육을 넣은 버거를 출시했다.
'짜파게티' 등 제품을 통해 드러나지 않게 대체육을 활용 중이던 농심도 적극 공세를 펼치고 있다. 비건 브랜드 '베지가든'의 만두 제품에 독자개발한 대체육을 넣은 점을 내세우며 신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급식사업을 하는 아워홈도 채식 시장에 뛰어들었다. 비건스테이크 세트, 머쉬룸베지버거 등 식물성 대체육을 활용한 구내식당용 메뉴를 선보였다.
아워홈 관계자는 "대체육의 맛과 식감을 살리는 데 주력했고, 양념에도 육류 성분을 배제했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대체육에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는 수요와 명분을 갖춘 신사업이기 때문이다. 우선 환경보호, 식습관 개선, 건강 증진 등을 이유로 식물성 식단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반려동물 인구가 늘면서 비윤리적 사육과 도축에 대한 인식이 확산한 점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업계에서 추산하는 국내 대체육 시장 규모는 지금은 약 200억원 안팎에 그치지만 성장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국내에서 채식을 실천하는 인구는 2008년 15만명에서 올해 250만명으로 급증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엄격한 채식을 하는 비건 외에도 간헐적 채식을 하는 ‘플렉시테리언’ 증가 등으로 채식 인구가 크게 늘고 있다"며 "전통적인 육류 소비 시장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