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불허하나…현대중공업·대우조선 합병 '빨간불'

EU, 독점 해소안 7일까지 요구
현대重, 기한까지 제출 안해
내달 최종결정서 '불허' 가닥
EU는 유럽선사 보호 목적도

현대重 "독점 우려에 동의 못해"
세계 1, 2위 조선사 인수합병(M&A)으로 주목받았던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통합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액화천연가스(LNG)선 시장 독점 해소 방안을 마련하라는 유럽연합(EU) 경쟁당국 요구에 불응하면서 EU 경쟁당국은 합병 불허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EU는 명목상으로 LNG선 독점을 얘기하고 있지만 실제론 두 회사 간 합병으로 인해 유럽 선사가 지출해야 하는 선박 매입 비용이 높아질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U “시장 독점 해소 못해”

EU집행위원회 산하 경쟁분과위원회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 승인 심사를 곧 종결하고, 내달 20일까지 국내에 통보할 예정이다. 앞서 카자흐스탄, 중국, 싱가포르 경쟁당국은 두 회사 합병을 모두 승인했다.

두 조선사 간 통합이 불투명해진 것은 현대중공업이 지난 7일까지 “LNG 운반선 시장 독점 해소 방안을 마련하라”는 EU 경쟁당국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서다. EU는 두 회사의 LNG선 시장 점유율이 60%가 넘는 점을 문제삼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작년 6월부터 독점 해소 방안을 놓고 EU집행위와 협의를 지속해왔다. STX조선 등 국내 중소 조선사에 LNG선 건조 기술을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LNG선 건조 기술을 공개해 경쟁사의 시장 진입을 허용하는 방안도 고려했다. LNG선 가격을 수년간 인상하지 않겠다는 의사도 EU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내 중소 조선사로의 LNG선 기술 이전 협상이 결렬됐고, LNG 건조 기술을 시장에 공개하는 방안은 “실질적인 기술 공개가 이뤄질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EU가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EU는 현대중공업 또는 대우조선의 LNG사업부를 매각하는 등 독점 해소를 위한 구조적 조치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사업부 매각은 현대중공업이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지라는 게 조선업계의 해석이다. 대우조선 인수의 실익을 없애는 조치여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중국 등 해외 조선사로 LNG사업부를 매각하는 것은 미래 먹거리인 친환경 선박의 기술 우위를 포기하는 일”이라며 “EU와 현대중공업의 입장이 좁혀지지 않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현대重 “끝까지 최선 다할 것“

LNG선 분야에서 한국은 압도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전 세계 발주량의 100%를 한국 빅3 조선사가 싹쓸이했을 정도다. 한국 조선사들의 수주 계약 중 유럽 선사 비중은 50~60%에 이른다. EU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이 통합된 ‘슈퍼 빅1’이 등장해 수주를 싹쓸이한 뒤 배값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고 있다. 이 경우 해운업 등 EU의 기반 산업이 흔들릴 수 있어서다. 특히 고부가가치 선박인 LNG선은 친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2024년 이후 수주가 쏟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 조선·해운 시장분석 기관인 클락슨리서치는 진행 중인 LNG 개발 프로젝트를 감안했을 때 2024~2026년 3년간 612척의 LNG선 발주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측은 선주에게 가격 선택의 주도권이 있는 수주 산업 특성상 제작 부문에서 독점 기업이 출현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맞서고 있다. EU 경쟁당국의 LNG 독점 해소 시정 방안 마련 요구에 응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다만 독점 우려를 밝혔다가 승인으로 방침을 바꾼 싱가포르 사례처럼 EU도 합병 승인으로 돌아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 희망을 걸고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EU의 자료 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은 것은 독점 우려가 있다는 EU 경쟁당국의 전제 자체에 동의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라며 “EU의 최종 판단이 있을 때까지 합병 승인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훈/남정민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