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개혁] 대선주자 무관심 속 기금고갈 시계 빨라진다

이재명·윤석열, 연금 공약 제시안해…문재인 정부서도 개편논의 멈춤
낙관적 추계로 "2057년 국민연금 기금 바닥"…"연금개혁이 가장 시급"
연금을 동물로 따져서 코끼리에 비유하곤 한다. 거대한 재정이 소요되는 복지정책인 연금이 코끼리처럼 덩치가 크고, 사람들이 코끼리를 좋아하는 만큼 수혜자들은 연금을 좋아해서, 지속가능한 연금으로 개혁하려면 코끼리를 옮기기만큼 어렵고 진통이 따르는 일과 같아서다.

그래서 연금개혁을 도무지 꼼짝하지 않으려는 '코끼리 옮기기'로 표현하기도 한다.

연금개혁은 인기가 없다. 장기적으로 부담은 늘고 혜택은 줄어드는 방향으로 개혁이 이뤄지는 데 대한 국민의 불안감과 거부감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자칫 육중한 코끼리를 옮기려다가 정권 자체를 위협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정치권으로는 연금개혁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막상 이를 이행하는 것은 기피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내년 3·9 대선을 앞둔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연금개혁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유력한 대선 주자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연금 개혁에 관한 공약 제시는 물론 별다른 입장조차 표명하지 않은 채 침묵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경우 2018년 4차 재정계산을 통해 연금개혁의 시동을 거는 듯했지만, 재정안정과 지속 가능성보다는 노후소득보장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국민연금 개편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사실상 멈춘 상태다. 문재인 정부는 당시 ① 현행 유지(소득대체율 40%, 보험료율 9%) ② 현행 유지하되 기초연금 40만원으로 인상 ③ 소득대체율 45% 상향, 보험료율 12% 인상 ④ 소득대체율 50% 상향, 보험료율 13% 인상 등을 사지선다형 개혁안으로 국회에 제출했을 뿐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소득대체율은 생애 평균 소득 대비 노후 국민연금의 비율을 말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연금개혁에 사실상 손을 놓고 골든타임을 놓치면서 미래세대에 엄청난 부담을 안겨주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이처럼 정치권이 연금 개혁을 둘러싼 갈등과 논란을 조정해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적극적 방안을 찾지 않고 땜질 처방으로 무마하는 등 '시한폭탄 돌리기'로 일관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사이에 국민연금은 계속 부실해지고 있다.

낙관적 추계로 꼽히는 2018년 4차 재정계산에 따르더라도 2057년이면 국민연금 기금은 바닥난다.

하지만 지난해 국회 예산정책처의 추계에 따르면 이보다 2년 이른 2055년 기금이 소진된다.

신화연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도 같은 전망을 했다.

신 연구위원의 '인구구조 변화와 공적 연금 재정' 논문에 따르면 출산율 하락 등 인구구조 변화를 반영하고 2019년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를 활용해 추계한 결과 국민연금 기금은 2055년 고갈된다.

지난해 최악의 출산율(0.84명), 올해 예상 출산율(0.7명대)을 고려할 때 연금개혁을 계속 방치하면 앞으로 국민연금의 재정 악화 속도는 더 가팔라질 것으로 우려된다.

일부에서는 국민연금이 재정평가 기간으로 삼는 70년 후인 2088년(평가 최종연도)까지 누적 적자가 1경 7천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대로 놔두면 재정적으로 도저히 지속할 수 없는 제도라는 말이다.

적립기금이 소진되면 고령 세대에게 주는 연금을 당대의 젊은 세대(경제활동 세대)한테서 세금으로 거둬서 충당할 수밖에 없는데, 이럴 경우 세계 최고의 저출산·고령화를 고려할 때 지금 청년층과 미래 세대는 국민연금 보험료로 소득의 30%를 부담해야 할지 모른다는 추산까지 나온다. 윤석명 한국연금학회장(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유력 대선 후보들이 우리 사회의 가장 시급한 연금개혁 과제를 외면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5차 재정 추계를 제대로 해서, 그 결과를 숨기지 말고 있는 현실 그대로 국민에게 보여주고 사회적 대화로 해법을 하루빨리 찾지 않으면 국가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