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플랫폼을 냉장고에 넣는 법

김학수 금융결제원장 haksoo_kim@kftc.or.kr
조선왕조실록에 코끼리 이야기가 나온다. 소가 제일 큰 동물인 줄 알았을 당시 사람들이 코끼리를 처음 봤을 때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이 간다. 태종 11년(1411년), 일본의 선물로 우리 땅을 밟은 코끼리는 안타깝게도 사람을 해치고 식사량도 어마어마해서 몇 번의 섬마을 유배 끝에 숨졌다고 한다. 인도에서는 흰코끼리가 애물단지를 상징한다는데 이해가 되기도 한다.

기원전 4세기 그리스부터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 대왕은 코끼리를 전투에 활용했다고 한다. 인도 원정에서 획득한 코끼리 200마리로 코끼리 부대를 창설해 세계를 호령했던 것이다. 크기에 비해 예민한 성격에 다루기는 어려웠지만 그 위압감만으로도 적국 병사들을 혼비백산하게 했으리라. 누구에겐 애물단지인 것을 주요 전력으로 키운 것이다.한때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이라는 유머가 유행한 적이 있다. 냉장고 문을 연다, 코끼리를 넣는다, 냉장고 문을 닫는다. 현실적으로 구현하기 어려운 일을 비유한 것이다. 왜 코끼리를 굳이 냉장고에 넣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나, 알렉산더는 아마도 코끼리가 다치지 않도록 큰 냉장고를 만들어 넣었을 것 같기는 하다.

요즘 시중의 주요 화두 중 하나는 플랫폼 규제다. 플랫폼 기업의 과도한 특혜에 대해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한 메신저 플랫폼이 택시 호출시장을 독점했다고 공분을 산 적도 있었던 것을 보면 건전한 거래 질서와 소비자 보호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은 맞다. 갈등 예방을 위해 성장 경로를 잘 설정해야 하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가맹점에 대한 갑질 방지를 핵심으로 하는 온라인 플랫폼법의 법제화도 속도를 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 플랫폼 규제는 지난해 미국에서 논의를 시작한 이후 우리나라로 건너왔다. 그러나 미국이 규제하고자 하는 플랫폼은 시가총액이 700조원을 넘는 소위 GAFA(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로 불리는 진짜 코끼리다. 개별 기업에 대한 경제력 집중이 경제를 넘어 사회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 논의의 출발점인 것이다. 플랫폼 기업을 규제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유럽연합의 디지털서비스법은 소비자 보호와 플랫폼에 대한 높은 투명성 및 책임 부과를 내세우고 있지만 속내는 다르다. 역내 기업들에 필요한 안전망 제공과 핵심 기술 보호를 통해 GAFA에 맞설 영웅을 키우자는 거다.

혹시 최근의 플랫폼 규제 논의가 우리의 코끼리들을 다 크기도 전에 냉장고에 넣는 방법만 고민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규제와 지원의 균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근 금융당국이 핀테크뿐만 아니라 우리금융의 플랫폼화 지원도 밝힌 만큼 이런 노력이 이어진다면 우리 기업들이 조만간 세계적인 플랫폼으로 성장해 세계 경제를 리드한다는 뉴스를 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