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공공기관 예산편성 지침' 변경하자···철도公·국민연금 "임금 줄어든다" 아우성

추가수당, 예비비서 주던 관행 제동
인건비에 포함시켜 인상률 관리
노사, 형식적 통상임금 소송 반복
정부 간섭 없이 편법으로 주고받아
사진=한경DB
기획재정부가 지난 9일 모든 임금·수당을 인건비 항목에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공공기관 예산편성 지침을 변경하면서 일부 공공기관 직원의 내년도 임금이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이번 조치는 공공기관 노사가 기재부의 인건비 통제를 회피하기 위해 통상임금 소송으로 얻은 추가 임금을 해당 기관 예비비에서 받아내던 관행을 막는 게 핵심이다. 철도공사, 서울교통공사, 한국조폐공사 등 편법적인 임금 확보 꼼수를 부렸던 대형 공공기관 노조는 정부 결정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기재부 “예비비 편법 사용 안 돼”

기재부는 공공기관 인건비를 총액을 정해 통제해왔다. 그런데 2013년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각종 수당 등 임금을 추가로 지급하라는 소송이 잇따랐고, 공공기관들은 노조가 제기한 소송에 연이어 패소하면서 추가 인건비를 부담하게 됐다.

하지만 패소로 인해 추가 지급되는 인건비는 그동안 해당 기관의 ‘예비비’ 항목에서 지출됐기 때문에 기재부가 매년 정하는 인건비 인상 통제를 받지 않았고, 공공기관 노사는 이런 제도적 허점을 악용해 통상임금 소송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기재부 간섭 없이 추가 인건비를 주고받았다. 보통 통상임금 소송에서 패소하면 기업들은 곧바로 상여금을 기본급에 넣는 등 임금 체계를 개편하지만, 공공기관들은 이마저도 차일피일했다. 한 공공기관 노조 관계자는 “공공기관도 기재부 눈치를 보느라 직원들이 소송을 통해 인건비를 받아가는 걸 선호했다”고 털어놨다.

뒤늦게 문제를 인지한 기재부는 패소로 발생한 추가 인건비를 예비비에서 지급하던 관행에 제동을 걸고, 이를 모두 인건비 항목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노조가 통상임금 소송에서 이겨도 되레 직원들의 전체 임금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가 통상임금 소송이 진행 중인 산하 16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한 결과 통상임금 배당금은 1년에 약 1517억원으로 총인건비의 3% 수준이다. 올해 기재부가 공공기관 인건비 인상률을 1.4%로 결정함에 따라 원칙적으로 초과되는 1.6%만큼 인건비 총액이 줄어들어야 한다.

“수수방관한 정부 책임도 커”

현재 진행 중인 통상임금 소송도 적지 않아 향후 임금이 줄어드는 공공기관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국민연금공단은 지난 9월 대법원에서 100억원 규모의 통상임금 소송에서 패소했다. 같은 달 한국철도공사도 직원 4100여 명이 320억원 규모로 제기한 2심 통상임금 소송에서 졌다. 올해 7월부터 9월까지 공공기관이 패소한 통상임금 소송액 규모는 확인된 것만 600억원이 넘는다.

공공기관이 기재부 눈치를 보며 승산 없는 상소를 하는 바람에 지급할 금액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송촉진 특례법에 따르면 재판이 길어질수록 연 이자가 12%씩 붙는다.기재부는 이번 지침 변경과 관련해 “그간 통상임금 소송에 따라 발생한 추가 임금은 총인건비 한도에 관계없이 집행했지만, 일부 기관에선 적시에 임금체계를 개편하지 않아 유사소송이 반복되는 부작용이 있었다”며 “이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공공기관 노조 관계자는 “인건비와 인건비를 기준으로 주는 경영평가성과급이 늘어난다는 이유로 공공기관의 임금체계 개편을 반대한 건 기재부”라고 반박했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공공기관 직원들은 졸지에 임금이 줄어들게 됐다”며 “제때 대응에 나서지 않은 정부, 임금체계 개편을 차일피일 미룬 공공기관, 임금 총액은 고려하지 않는 노조의 욕심이 빚어낸 합작품”이라고 꼬집었다.

곽용희/노경목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