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죽어나가도 손 못써"…구청장들 "의료대응 한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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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장 10인 긴급 인터뷰“이미 감당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었습니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도 손을 못 쓰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요.”
"지역 민간 의료 대폭 활용 등
과감한 조치 없이는 의료붕괴"
공무원·의사·간호사 등 인력
더 못버티고 휴직·사직 잇따라
서울 코로나19 방역 최전선에서 ‘야전사령관’ 역할을 맡고 있는 구청장들이 전한 방역·의료 현장의 실상이다. 코로나19 확진자 폭증과 인력 부족으로 역학조사는 사실상 무의미해졌고, 병상이 없어 응급환자의 상태가 악화하는 것은 일상화하고 있다.현장인력들은 극도의 육체적·정신적 피로를 호소하며 가까스로 버티는 처지다. 구청장들은 “지역의 민간 의료시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등의 단호한 조치 없이는 방역·의료 시스템이 돌이킬 수 없이 붕괴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준비없는 일상회복에 큰 희생”
15일 한국경제신문이 구청장 10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방역·의료 현장상황’에 대한 긴급 인터뷰를 한 결과 구청장들은 “방역·의료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인적, 물적 재원이 임계점에 도달했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인터뷰에 응한 구청장들은 김미경 은평구청장, 문석진 서대문구청장, 박성수 송파구청장, 박준희 관악구청장, 서양호 중구청장, 오승록 노원구청장, 이동진 도봉구청장, 이성 구로구청장, 이정훈 강동구청장, 정원오 성동구청장이다.이들은 지난달 1일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를 기점으로 현장 상황이 급격히 악화했다고 전했다. 정부가 충분한 병상 및 진료소 확충 등 철저한 준비 없이 일상회복을 선언했다가 너무 큰 희생을 치르게 됐다는 것이다.문석진 청장은 “확진자 수가 위드 코로나 이전보다 네 배 급증하다 보니 역학조사를 당일 벌이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예전과 같이 폐쇄회로TV(CCTV) 분석 등을 통한 감염경로 파악 등 심층조사는 기대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문 청장은 “역학조사 지연은 감염 폭증을 불러오는 원인으로 작용해 악순환 고리를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장인력들 ‘번아웃’ 심각
구청장들은 현장의 방역·의료인력이 처한 현실에 대해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밝혔다. 김미경 청장은 “관내 코로나 검사 건수가 하루평균 5000건 이상으로 두 배 늘었고 재택치료자가 하루에 400~500명 나오고 있다”며 “연말연초에 지금보다 더 큰 고비가 올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상황에서 지금 인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공무원들이 2년 이상 지속된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에 ‘번아웃’(무기력)되고 있다는 것도 우려되는 사항 중 하나다. 박성수 청장은 “공무원들이 주말에도 소독이나 키트배부, 재택치료자 관리 등 본업 외에 추가 업무를 하고 파견업무를 나가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진료소에서 추위에 대기하는 검사자의 불만과 민원이 고스란히 현장직원들에게 전해져 심적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고 전했다.최근 휴직·사직하는 공무원이 늘고 있는 것도 코로나19 업무 부담과 무관치 않다. 한 구청장은 “지난해 민간에서 채용한 보건소 의사와 간호사가 더 이상 못 버티고 지난주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보건소 간호직 공무원 휴직·사직자는 2017년 564명에서 지난해 945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또 다른 구청장은 “중앙정부의 방역지침이 오락가락하거나 지역까지 잘 전달되지 않아 일선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가 자가격리 생활지원금 정책변화 등을 사전공지 없이 시행하는 경우가 잦아 현장업무에 오히려 과부하를 부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과감한 대책 없인 극복 어려워”
구청장들은 통제불능 상태에 직면한 방역 현실을 반전시키기 위해 정부에 과감한 대책을 촉구했다. 문석진 청장은 “시즌이 끝나 비어 있는 잠실운동장에 모듈러 병상이라도 만들어야 할 판”이라며 “지금은 정부와 정치권 모두 진영싸움을 떠나 협치하고 병상 확보와 선별진료소 확장, 현장인력 투입에 과감한 재원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구체적인 대안도 제시됐다. 박준희 청장은 “정부나 서울시에서 주말이나 야간에 운영하는 선별진료소를 권역별로 추가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원오 청장은 “의원급 등 민간 병원의 역량을 보건소 등 공공기관과 공유해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 강조했다.하수정/이선아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