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보다 더 진짜처럼 그리자'…바다에 뛰어든 물고기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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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스토리 - 세밀화가 조광현구릿빛 얼굴과 다부진 몸, 거친 손. 바다와 물고기를 그리는 세밀화가 조광현(62·사진)은 마치 뱃사람처럼 보인다. “사진보다 잘 그리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다 보니 이렇게 됐다”는 설명이다.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어려운 정보는 온갖 자료를 파고들어 찾아내는데, 그러다 4년 전 해양생물공학 석사 학위까지 받았다. 이렇게 그려낸 그림에는 어떤 카메라로도 잡아낼 수 없는 물속 물고기의 정확한 모습이 담겨 있다.
카메라가 못 담는 물고기 그리려
국내외 곳곳으로 수중 탐사
지금은 동해 그리는데 집중
우리 바다 매력 제대로 보여줄 것
조 작가는 지난 20여 년간 물고기를 그려왔다. 지난달 롯데장학재단이 공모한 제4회 롯데출판문화대상에서 대상을 받은 《한반도 바닷물고기 세밀화 대도감》(보리 펴냄)은 그 작업의 총체다. 그가 한반도 주변 바다에 서식하는 물고기 528종을 그렸고, 명정구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자문위원이 글을 썼다. 책 무게만 5.7㎏에 달한다. 지난달 29일 서울 온수동에 있는 작업실에서 조 작가를 만났다.“피사체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진기를 놔두고 왜 그림을 그리냐고들 합니다. 그런데 물고기만큼은 그림이 더 정확해요. 수중 사진은 빛이 부족해서 물고기 색이 잘 안 나오고, 잡아서 뭍에 내놓으면 바로 빛깔이 변해버리죠. 세밀화는 물고기가 살아서 물속을 노닐 때의 모습을 재구성해 보여줄 수 있습니다.”
여러 우연이 그를 물고기 세밀화가로 만들었다.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신혼집에서 가까운 소래포구 인근에 작업실을 차렸다가 갯벌과 그곳에 사는 생물을 그리게 됐다. 1999년 개인전에 건 갯벌 그림들을 접한 해양수산부가 해양환경 교육 교재의 삽화를 그에게 의뢰했다. 조 작가는 “고등학교 때부터 전국 소묘대회에서 여러 번 1등을 했을 만큼 묘사력에는 자신있었다”며 웃었다.
이후 해양 관련 일감이 몰렸다. 2003년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딴 뒤 국내외 곳곳으로 수중 탐사를 다녔다. “육지 동식물과 달리 수중 생물은 세밀화를 그릴 수 있는 사람이 없었죠. 학자들과 원 없이 바다를 누비며 과학도처럼 살았는데, 적성에 딱 맞더군요. 자연을 사랑했던 고(故) 구본무 LG 회장께서 LG상록재단이 펴내는 《한국의 민물고기》 도감에 그림을 그려달라고 한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심해어 등 직접 보기 어려운 물고기를 그리려면 논문은 물론 인터넷에서 해외 다이버들이 찍은 사진까지 샅샅이 뒤져 자료를 모아야 한다. 어종 하나를 그리려고 수년간 자료를 수집한 적도 있다. 군산대에서 해양생물공학을 공부한 건 이 과정에서 답답함을 느껴서였다. 조 작가는 “옛 기록에만 의존해 그림을 그려야 할 때도 있는데, 등허리가 푸르스름하다느니 하는 모호한 설명으로는 불가능했다”며 “석사과정에서 계통학을 공부하고 나서 그리기가 좀 나아졌다”고 했다.
그래도 여전히 물고기 그림은 어렵다. 조 작가는 “비늘이 제일 싫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시작 부분에서 조금만 실수해도 첫 단추를 잘못 끼웠을 때처럼 결과물이 엉망이 돼서다.
그런데도 그는 작업을 하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조 작가는 경기 수원에 있는 서호에 서식하다 1930년대 멸종한 서호납줄갱이 그림을 들어 보였다. “물고기는 카메라로 찍기 어려우니 그리지 않으면 모두 잊히겠죠. 후대를 위해서라도 이런 식으로 기록을 남겨야 해요. 현장에서 만난 여러 학자와 연구기관 관계자들이 ‘국가가 조 작가 작품을 좀 사서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말만 하고 감감무소식이네요. 하하.”조 작가는 이때까지 그려온 물고기 세밀화 중 130여 점을 추려 서울 진관동 사비나미술관에서 전시 중이다. 오는 23일까지 열리는 ‘조광현 세밀화전: 한국의 물고기’다. 이 전시를 끝으로 물고기 세밀화 작업에는 마침표를 찍고, 바다를 소재로 한 유화를 자유롭게 그릴 계획이다.
인터뷰 내내 작업실 한편의 가로 120㎝, 세로 194㎝ 캔버스에 담긴 바닷속 풍경이 눈에 띄었다. 그는 “동해 바다를 그리는 중”이라며 “앞으로 여러 시도를 통해 우리 바다의 매력을 널리 알릴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글=성수영 기자
사진=신경훈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