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1년] ③ 준비안된 결별에 삐걱…주유대란까지 겪은 영국

"잠재성장률 4% 감소 효과"…유럽 인력 공백으로 공급망 병목현상
물가 급등에 G7 중 가장 먼저 금리인상…"충격회복에 상당한 시간"
영국은 올해 코로나19에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가 겹치며 주유소에 기름이 떨어지는 등 '후진국' 같은 생필품 대란까지 겪었다. 유럽의 저임금 노동자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채우지 못해 일손이 부족해진 탓에 공급망 병목현상이 나타나고 물가가 뛰었다.

브렉시트는 장기적으로 영국 경제의 구조변화를 초래하고 잠재성장률을 낮추는 효과를 낼 것으로 평가된다.

◇'노 딜' 간신히 피해 브렉시트…주유대란 등 삐걱
영국은 '노 딜'을 겨우 면한 상태로 올해부터 브렉시트를 본격 단행했다. 유럽연합(EU)과 미래관계에 관한 협상이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야 타결이 된 탓에 실무적으로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영국-EU간 택배 배송이 중단되는가 하면 일부 온라인 쇼핑몰들이 영국으로 배송 주문을 아예 받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작년 말 크리스마스 후 세일 때 영국 온라인쇼핑몰에서 주문했다가 새해에 물건이 EU 국가에서 왔으니 관세를 내라는 통보를 받는 일도 잇따랐다. 신속성이 중요한 수산물은 수출 타격이 컸다.

초기 혼란이 지나자 구조적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동유럽 인력 유입을 막은 데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로 기존 인력까지 빠져나가자 공백이 생겼다. 영국은 브렉시트를 계기로 저임금 저숙련 노동력 의존도를 낮추고 고임금 고숙련 경제를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지만 전환기 대비가 안 돼 있던 것이다.

식당·호텔 등 접객업종은 일할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이고 슈퍼마켓 진열대가 비었다.

일할 사람이 없어서 도축한 소를 통째로 수출한 뒤 포장된 고깃덩이를 역수입하거나 돼지를 살처분하는 일이 벌어졌다.
특히 대형 트럭 운전사 부족은 심각한 상황을 초래했다.

유류 배송트럭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오자 다들 사재기에 나서 전국 주유소에 기름이 동이 난 '주유대란', 항만에 쌓인 컨테이너를 실어 나르지 못해 선박들이 한참 대기하거나 돌아가는 '항만대란'이 발생했다.

정부는 군 병력을 투입하고 트럭 운전사들에게 단기 비자를 발급하는 처방까지 내렸지만 인력충원이 잘되지 않았고 소비자들의 '패닉'이 진정되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대외적으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도 빨리 되지 않고 있다.

특히 기대를 걸었던 미국과의 FTA 협상은 중단된 상태다.

◇"잠재성장률 4% 낮춰"…"충격 회복에 시간 걸릴 듯"
브렉시트가 영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분석은 계속됐다.

영국 예산책임청 리처드 휴즈 의장은 10월 브렉시트가 장기적으로 영국의 잠재성장률을 4% 낮춘다고 평가했다.

유럽개혁센터(Center for European Reform)는 브렉시트로 영국 상품 무역이 15.8% 감소한 것으로 추정했다.

영국인들의 인식도 마찬가지였다.

여론조사 오피니움의 10월 27∼29일 조사에서도 브렉시트가 영국 경제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답변이 44%로 긍정적(25%) 더 훨씬 높았다.

그중에서도 물가에 부정적이라는 답변은 무려 53%였고 긍정적은 13%에 그쳤다.
영국은 코로나19 이후 공급망 병목 현상이 브렉시트로 인해 다른 나라에 비해 크게 나타났고, 그 여파로 물가도 빠르게 상승해 11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5.1%에 달했다.

물가 상승률이 10여년 만에 최고를 기록하면서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은 12월에 주요 7개국(G7) 중 가장 먼저 금리인상에 나섰다.

영란은행은 코로나19의 새로운 변이종인 오미크론 확산에도 불구하고 물가 대응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한국은행 런던사무소는 최근 '브렉시트 전후 경제적변화 점검 및 평가' 조사연구에서 브렉시트와 코로나19가 겹쳐서 각각의 영향을 분리하기 어렵지만 교역대상국 변동과 EU 회원국 국민 순유출 등에서 브렉시트 충격이 드러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은은 무역중단, 대규모 인구유출, 국경폐쇄 등과 같은 급격한 사건은 없었고 외국인 투자자들의 평가도 부정적이지 않아서 감내할 만한 수준의 충격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금융중심지로서 런던의 위상에도 아직 큰 변화는 없다.

한은은 다만 브렉시트가 경제구조 변화를 초래하기 때문에 충격 회복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은은 또 브렉시트가 한-영간 무역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영국-EU간 공급망 재편에 따른 영향은 불가피할 것으로 봤다. 원산지 규정에 따라 한국산 부품 등이 포함된 상품이 역내 상품으로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