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숙한 선율·거대한 화음…한경필과 함께한 황홀한 밤
입력
수정
지면A31
롯데콘서트홀서 송년음악회나지막이 흐르는 바이올린 선율에 플루트의 영롱한 소리가 얹혔다. 이내 관악기와 현악기가 어우러지며 웅장한 화음이 뿜어져 나왔다. 어디선가 들어본 친숙한 멜로디다. 듣다 보면 울창한 숲에서 공룡들이 튀어나올 것 같다. 미국의 영화음악 거장 존 윌리엄스가 작곡한 영화 ‘쥬라기공원’의 주제곡이다. 관객들은 잊었던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워했다. 22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펼쳐진 한경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송년음악회 ‘영화음악과 크리스마스 콘서트’의 한 장면이다.
'스타워즈' '인디애나 존스' 등
오케스트라 버전 영화 OST
인천시향 이병욱 객원 지휘
김효영·이동환 등 정상급 성악가
크리스마스 캐럴도 들려줘
'Time to Say Goodbye'
장혜지·이명현 피날레 장식
코로나19를 잠시 잊게 해준 황홀한 공연이었다. 귀에 익은 선율들이 성대한 오케스트라 화음을 타고 증폭됐다. 한경필은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음악을 연달아 들려줬다. ‘스타워즈’ ‘인디애나 존스’ ‘슈퍼맨’ 등 인기 영화 OST에 이어 미국 작곡가 앨런 실베스트리가 작곡한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포레스트 검프’ 주제곡을 선사했다. 1990년대 할리우드 영화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음악으로 중년층 관객들의 마음을 아련하게 적셨다.오케스트라들은 대개 연말이면 베토벤의 ‘교향곡 9번(합창)’,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등을 들려준다. 웅장하지만 흥겨운 곡은 아니다. 한경필은 관객들이 쉽게 빠져들 수 있으면서도 무게감 있는 곡들을 골랐다. 전형적 고전음악이 아닌 레퍼토리로 관객들에게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선사했다.
이병욱 인천시향 상임지휘자가 한경필 객원지휘자로 화음을 조율했다.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모두 섭렵해온 그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국립음대를 졸업한 뒤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활동하다 2009년 귀국했다. 이후 오페라와 발레극 음악감독을 맡아 극음악에서도 강점을 보여줬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매년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을 연주해왔는데 캐럴과 대중음악으로 송년음악회를 마련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첫 도전이었지만 원숙하게 공연을 이끌었다.
한경필이 미국 작곡가 르로이 앤더슨의 ‘크리스마스 페스티벌’로 2부의 시작을 알린 뒤 국내 정상급 성악가 네 명이 무대에 올랐다. 소프라노 김효영과 장혜지, 테너 이명현, 바리톤 이동환이 1부의 흥겨운 분위기를 캐럴로 이어갔다. 이들은 19~20세기에 나온 전통적 캐럴로 공연장 분위기를 성탄절 축제로 바꿔놓았다. 1847년 프랑스 작곡가 아돌프 아당이 쓴 ‘거룩한 밤(O Holy Night)’을 비롯해 미국 작곡가 어빙 벌린이 1942년 발표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연달아 들려줬다.성악가의 독창 무대로 공연은 절정으로 향했다. 소프라노 장혜지는 프랑스 작곡가 세자르 프랑크가 쓴 미사곡 ‘생명의 양식’을, 바리톤 이동환은 굵은 음색으로 프랑스 작곡가 에리크 레비의 ‘I Believe’를 열창했다. 테너 이명현은 프랑스 작곡가 조르주 비제의 ‘신의 어린양’을, 소프라노 김효영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며 공연장을 경건한 분위기로 이끌었다.
공연의 피날레는 장혜지와 이명현이 장식했다. 둘은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와 소프라노 세라 브라이트먼이 함께 불렀던 ‘Time to Say Goodbye’를 열창하며 관객들의 안녕을 기원했다. 한경필은 관객들의 아쉬움을 달래려 앙코르곡을 두 곡 선사했다. 김효영, 장혜지, 이명현, 이동환 등 네 성악가가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 3막의 4중창 ‘이젠 정말 끝인가 내 사랑’을 열창한 데 이어 캐럴 메들리를 선사했다. 코로나19로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준 따뜻하고 흥겨운 음악회였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