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터질게 터졌다"…할머니·손녀 목숨 앗아간 전통시장 입구도로

부산 수영팔도시장 상인·손님 "마을버스 지나는 이면도로 위험천만"
차와 보행자 뒤엉켜…노인보호구역 미지정·보행 안전 시설물도 전무
"노인들이 많이 다니는 데 이렇게 위험한 도로가 또 있을까요. "
돌진한 승용차에 60대 할머니와 18개월 손녀가 함께 숨진 부산 수영팔도시장 입구는 평소 수영구에서 가장 유동 인구가 많은 곳 중 한 곳이다.

마을버스가 지나는 이면도로지만, 별다른 보행 안전 시설도 없이 항상 자동차와 보행자가 뒤엉켜 늘 사고위험을 안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23일 취재진이 두시간가량 사고 현장을 지켜본 결과 차량과 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뒤엉켜 반복적으로 아찔한 상황이 연출됐다. 전통시장 입구는 코로나19와 평일 오후임에도 인파로 북적였고, 시장 안에 공영주차장이 위치한 특성상 시장 입구는 차와 인파가 계속해서 뒤엉켰다.

이면도로 옆쪽으로는 노점상들이 자리 잡고 있어 보행자들은 도로 중앙으로 내몰렸다.

이곳은 차와 보행자가 함께 지날 수 있는 이면도로인데 심지어 마을버스도 지나다닌다. 마을버스가 지날 때면 시장 입구는 더 혼잡해져 경적을 계속 울리기도 했다.

이날 추모 공간에서 헌화 한 40대 여성 A씨는 "아이와 시장을 자주 방문하는데 항상 오토바이, 차량 등 위험에 노출돼 있다"며 "이렇게 어르신과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시장 입구에 보행자 안전 대책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이곳은 상인과 시장을 찾는 시민들에게 위험하기로 널리 알려진 도로이다. 이들은 "이번 사고도 80대 운전자가 급발진을 해서 일어난 것으로 인식될 수 있지만 이런 보행환경에서 언제든지 날 수 있는 사고였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정판훈 수영팔도시장 상인회장은 "워낙 복잡하고 보행자가 위험에 노출된 곳이라 지역 정치권 등에 시장 입구 통행 개선 등을 건의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모두가 위험한 도로로 인식하고 있었지만, 행정당국은 안전한 보행환경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었을까.

전국의 여러 지자체는 노인들이 많이 오가는 전통시장 주변을 노인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있지만, 수영팔도시장 주변은 아직 지정되지 않았다.

전통시장 노인보호구역 지정은 시 조례로 가능하나 부산시도 관할인 수영구도 보호구역 지정에 무관심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노인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 시속 30㎞ 이하로 차량 속도가 제한되고 도로표지 등 도로부속물과 교통안전시설을 설치할 수 있다.
수영구는 노인 일자리사업 일환으로 수영팔도시장 입구에 안전요원을 한 명 배치해 교통관리를 해왔지만, 올해 사업이 이달 중순에 종료돼 사고 당시에는 안전요원이 없었다.

시장 입구에는 차량진입 방지봉이나 시선유도봉, 과속방지턱 등 최소한의 보행안전 시설물이나 도로 부속물도 없는 상태다.

강성태 수영구청장은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해 너무 마음이 아프다"며 "관계기관과 논의해 안전한 보행환경을 조성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수영구는 당장 1월 3일부터 금·토·일요일 오후 시간은 안전요원을 두 명씩 배치해 관리하기로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