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쉬하고 덮는 데만 치중한 IBK기업은행·흥국생명(종합)

조송화 "구단 언론 접촉 막았다" vs 기업은행 "사실 아니다"
흥국생명은 쌍둥이 자매 학폭 때 선수 보호 대신 여론 눈치만
2005년 출범한 프로배구는 현재 18번째 시즌을 진행 중이다. 국내 4대 프로 스포츠 중 가장 늦게 출발한 프로배구는 해마다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해 겨울철 대표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을 일컫는 '가을 야구'와 쌍을 이루는 '봄 배구'라는 말이 이젠 어색하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프로배구는 인기 면에서 프로야구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위상이 커졌다.

그러나 프로배구 각 구단의 운영 능력이 그만큼 성장했는지를 따지면 고개를 가로젓는 이가 많다. 몇 구단을 빼곤 여전히 프로라는 타이틀을 버거워하는 팀이 많아서다.

이번 시즌 비상식적인 행보로 팬들의 질타를 받은 IBK기업은행 구단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주전 세터 조송화의 무단이탈로 뒤늦게 알려진 IBK기업은행의 내홍 사태는 올해 지휘봉을 맡긴 서남원 감독의 조기 경질, 서 전 감독에게 항명한 김사니 코치의 일시 감독 대행 승격으로 몰상식의 정점을 찍었다. IBK기업은행 구단은 또 바뀐 규정도 모른 채 논란의 당사자 조송화를 본인의 동의 없이 임의해지 하려다가 비웃음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서둘러 김호철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선임하고 임의해지와는 별개로 조송화와의 계약을 해지해 팀 정상화의 첫발을 뗐지만,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조송화는 22일 KBS와의 인터뷰에서 IBK기업은행 구단이 그간 언론과의 접촉을 막았다고 했다. 그는 "구단 측이 언론과 따로 접촉할 경우 계약해지 사유가 된다고 말했다"며 "구단에 연락해서 아닌 부분을 바로잡고 싶다고 했는데 하나하나 반박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팀 내홍 사태의 빌미를 제공해 '국민 욕받이'가 된 처지에서 구단의 제지로 언론 대상 '방어권'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게 조송화의 주장이다.

하지만 IBK기업은행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구단이 파악한 바로는 조송화 선수의 언론 접촉을 막은 사실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반박했다.

조송화의 팀 무단이탈 여부는 이번 사태의 책임이 선수 또는 구단 어느 쪽에 있는지를 가름할 중대 쟁점이다.

선수의 언론 접촉을 두고도 '막았다'(조송화), '그런 사실이 없다'(구단)고 맞서면서 양측이 법정에서 다툴 사안이 하나 더 늘었다.

진실은 법 앞에서 가려지겠지만, 구단이 선수의 입을 막으려고 했다는 조송화의 주장은 옳고 그름을 떠나 IBK기업은행에 적지 않은 부담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무단이탈 건도 복잡하다.

조송화는 부상에 따른 휴식 차원이었다며 무단이탈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데 반해 IBK기업은행은 처음에는 선수가 아파서 훈련에 나오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가 일이 커지자 무단이탈로 표현을 바꿨다.

조송화가 줄기차게 무단이탈이 아니었다고 주장하자 이탈은 맞지만, 무단이탈인지는 검토해야 한다는 어정쩡한 태도로 후퇴했다.

IBK기업은행은 한국배구연맹(KOVO) 상벌위원회가 조송화 무단이탈과 관련한 판단을 보류하자 독자적으로 조송화의 계약 해지를 발표했다.

법률 대리인을 선임해 IBK기업은행과 소송을 예고한 조송화는 자유신분선수가 돼 이달 28일까지 다른 구단과 계약을 못 하면 이번 시즌에 뛸 수 없다.
배구계를 들썩이게 할 시끄러운 사건이 벌어지면 구단이 선수의 공개 의견 개진을 나서서 막으려 했거나 해당 선수를 팀에서 쫓아내는 방식으로 일을 매듭지었다는 측면에서 이번 사태는 올해 흥국생명과 이재영·다영(25) 쌍둥이 자매 때와 비슷하다.

쌍둥이 자매는 올해 2월 함께 운동했던 동료들로부터 학창 시절 폭력(학폭) 가해자로 지목된 뒤 급추락했다.

당시 자매는 학폭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면서도 피해자들의 폭로 내용 중 일부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며 언론 또는 법률 대리인을 통해 진실 규명을 바랐다.

그러나 여론을 두려워한 흥국생명 구단이 이를 막았다.

흥국생명은 그저 비판 여론이 잦아들기만을 기다리며 사실 파악을 위한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고, 결국 시즌 후 쌍둥이 자매를 팀에서 방출했다.

물론 폭력 행사(쌍둥이 자매)와 무단이탈(조송화)은 무게가 전혀 다른 사안이다.

하지만, 흥국생명과 IBK기업은행의 처신은 거액을 주는 선수를 구단의 자산이 아닌 언제든 폐기할 수 있는 소모품으로 보고, 명확한 진실 규명보다는 사건 덮기에 치중했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남긴다. 이는 선수, 팬, 구단이 각각 한 축을 담당해 리그 발전을 도모하는 다른 프로 종목 구단의 행보에도 뒤떨어진 모양새이며 선수 권익을 중시하는 최근 추세에도 맞지 않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