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두기 속 차분한 성탄절 이브…야경 명소엔 연인들 북적(종합)

오전에 한산하던 도심, 오후 들어 활기 되찾아
시민들, 추운 날씨에 연탄 봉사하기도
사건팀 = 성탄절을 하루 앞둔 24일 시민들은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차분한 분위기 속에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한산하던 도심은 오후 들어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시민들은 야경 명소를 찾아 코로나로 얼어붙은 마음을 녹였다.

이날 오전 11시께 서울 종로구 혜화 대학로 일대는 조용했다.

예년 같으면 대학생과 젊은 연극인들로 북적거렸을 거리에는 곳곳에 폐업한 가게에서 인부들이 폐자재와 짐을 내려놓는 소리만 시끄럽게 울렸다. 마로니에공원에도 대형 트리가 설치됐지만 지나가는 사람은 10명도 채 되지 않았다.

유모차를 트리 앞에 세우고 포토존에서 롱패딩을 껴입은 아이 2명의 사진을 차례대로 찍던 송모(32)씨는 "애들 데리고 어디 들어가기가 무서운 때"라며 "트리라도 보여주고 싶은데 어제 보니 명동 같은 데는 사람이 몰려서 무섭고, 그냥 지나가던 김에 이렇게라도 분위기 내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로 6년째 크리스마스 예술시장에 나와 좌판을 벌이고 있다는 목공예가 김모(48)씨는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코로나가 심해서 아예 행사를 못 했다. 2년 만에 왔는데 분위기가 완전히 딴판"이라며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하나도 안 난다.

캐럴은커녕 사람도 안 다니니 오늘 뭐 하나라도 팔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마포구 서교동 홍익대 근처 KT&G 상상마당 앞 거리도 카페와 식당 등이 밀집한 곳이지만 문을 연 곳은 10곳 중 3곳에 불과했다. 3년째 홍대입구에서 돈가스집을 운영하는 김순심(55) 씨는 "크리스마스이브가 오히려 평일보다도 못할 것 같다.

아무런 기대가 없다"며 "월세는 워낙 비싼데 손님은 줄기만 하니, 아르바이트생도 올해 차례로 다 내보내고 가족들과 일하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영등포 타임스퀘어 앞에 설치된 크리스마스트리 앞에는 지나가던 행인들이 발길을 멈추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남자친구와 함께 나왔다는 이규의(33) 씨는 "원래라면 여행을 갔을 텐데 코로나 상황 때문에 서울에서 호캉스를 하기로 했다"며 "올해는 정말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안 나는 것 같다.

캐럴도 듣기 힘들다"고 했다.

영화관이나 인기 있는 식당들이 몰려있는 번화가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관악구의 한 영화관은 마치 영업하지 않는 것처럼 한산했다.

무인 티켓 발매기에 손님 1명이 있을 뿐 음식 매대와 대기 좌석에는 아무도 없었다.

황금 시간대인 오후 7시 인기 상영작의 예매 인원도 전체 좌석의 4분의 1을 채우지 못했다.

관악구 '샤로수길'에도 오가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식당은 물론 카페에도 앉아 있는 손님이 없었고, 스타벅스 등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에는 공부나 업무를 하기 위해 홀로 온 손님들만 있었다.

캐럴도 들리지 않아 연말 분위기를 느끼기 어려웠다.

대학생 심모(24) 씨는 "작년부터 크리스마스나 연말은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게 그냥 지나가는 것 같다"며 "홈파티다 뭐다 하지만 대부분은 평소와 다름없는 조용히 일상을 보내는 듯하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시민이 길어지는 코로나19 사태로 지친 마음과 우중충한 날씨 탓에 차분히 성탄절 전날을 보내는 가운데 봉사활동에 나선 이들도 있었다.

이날 오전 성북구 정릉3동 일대에는 밥상공동체 연탄은행이 진행하는 연탄 배달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봉사자 150여명이 모였다.

연인이나 가족 단위로 오거나 봉사활동을 위해 연차를 내고 홀로 왔다는 이들도 있었다.

봉사자들은 오전 10시부터 2시간가량 기초생활 수급·독거노인·장애 가정 등 취약 계층 40가구를 방문해 가구당 연탄 200장씩 총 8천 장의 연탄을 배달했다.

연인 사이인 정다운(27)·정설(24) 씨는 "특별히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어떠냐고 여자친구가 제안해서 찾아보니 이런 좋은 활동이 있다는 걸 알게 돼 참여했다"며 "기념일에 취약계층분들은 더 외로우실 것 같아 봉사활동에 나섰다"고 했다.

동네 이웃끼리 봉사활동에 나선 경우도 있었다.

아이 2명씩을 데리고 나온 정민하(36) 씨와 한아름(36) 씨는 "가족끼리 친구처럼 정말 친해서 매달 아이들을 데리고 봉사활동을 함께 한다"며 "원래 노숙자분들께 빵을 전달하는 봉사를 하는데 성탄절을 맞아 연탄 배달 봉사를 하러 왔다"고 했다.

적막했던 마을에 봉사자들이 모이자 동네 주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사람이 모이니까 성탄절 분위기가 나네", "참 고마운 일을 하네"라며 모처럼 웃음을 지었다.

연탄을 전달받은 김성희(85) 씨는 "연탄을 사려고 해도 주변에는 파는 곳이 없어 항상 어려웠는데 이렇게 연탄을 주니 그 고마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며 "할아버지가 항상 연탄 봉사자들이 언제 오나 목이 빠져라 기다렸는데 정말 고맙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한산하던 도심은 오후 들어 크리스마스 전야를 즐기러 나온 시민들로 활기를 되찾았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크리스마스 명소'로 입소문을 탄 중구 한 백화점 앞은 날이 어둑해지자 사람으로 북적였다.

거리에 선 사람들은 '우와'하고 탄성을 내지르며 사진을 찍기 바빴고, 전망 좋은 카페에서는 창가 자리를 잡으려는 손님들의 눈치싸움이 벌어졌다.

친구들과 야경을 보러 온 박민지(22)씨는 "거리두기라서 아무것도 못 하는데 크리스마스 분위기라도 좀 느껴보려고 나왔다"고 말했다.

홍대 거리도 저녁이 되자 데이트를 하러 나온 연인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입구에는 연인·일행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주머니 깊이 손을 찔러넣고 발을 굴렀다.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던 직장인 이영은(26)씨는 "커플 여행을 가고 싶은데 코로나 확산세도 심상치 않고 회사 눈치도 보여서 그냥 데이트에 만족하려고 한다"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상인들은 "코로나 전보다 못하다"며 아쉬운 반응을 보였다.

홍대에서 10년 넘게 포장마차를 해온 한 상인은 "작년보다는 살짝 손님이 많은 것 같지만 코로나 전이랑 비교하면 손님이 거의 5분의 1 수준"이라며 "아무래도 모여서 연말 분위기를 낼 수 없는 탓 아니겠냐"고 말했다. (김치연 송은경 임성호 홍유담 홍규빈 조다운)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