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위반에 행인 치었는데…운전자 혈액 폐기돼 원인 수사 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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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집행 과정서 보관기간 지나 병원이 폐기…음주 등 규명 차질
전문가 "혐의 입증 필요시 의료 증거 보관 의무화 등 규정 필요"
신호를 위반하고 행인을 치어 다치게 한 운전자의 사고 당시 혈액이 폐기 처분돼 경찰이 사고의 음주·약물 관련성을 수사하는 데 난항을 겪고 있다. 혈액 확보를 위한 압수수색 영장 집행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병원의 혈액 샘플 보관 기간이 지나 폐기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범죄 혐의 입증에 필요한 경우 등에 한해 혈액 등 의료 증거를 의무 보관하도록 하는 등 대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오후 2시께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호반마을 삼거리에서 50대 A씨가 운전하던 BMW SUV가 정지 신호를 위반하고 직진하다가 좌회전하던 다마스 승합차를 충격한 뒤 횡단보도를 건너던 B(23) 씨 등 행인 2명을 치었다.
이 사고로 B씨가 전치 14주의 중상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당시 A씨도 사고 충격으로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이송돼 현장에서 음주 측정은 이뤄질 수 없었다.
현행법상 경찰관이 법원이 발부한 영장이나 당사자의 동의 없이 채혈한 경우 이는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다.
이에 경찰은 A씨를 치료한 병원으로부터 A씨의 혈액 샘플을 확보하고자 사고 다음 날인 지난달 30일 병원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 검찰이 보완 수사를 요구해 경찰이 이달 초 영장을 재신청하면서 영장 집행은 지난 10일에야 이뤄질 수 있었다.
그러나 A씨의 혈액은 병원에 남아있지 않았다.
병원은 혈액 샘플 보관 기간이 지나자 이를 폐기 처분했다. 병원 관계자는 "통상 채혈한 지 3∼7일가량 지난 혈액 샘플은 폐기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이 기간이 지나도 영장이 집행되기 전까지 혈액을 보관해야 한다거나 수사기관에 제출해야 할 의무는 없어서 규정에 따라 처분했다"고 밝혔다.
결국 경찰은 가장 확실하고 직접적인 증거인 A씨의 혈액 없이 사고 당시 A씨의 음주와 약물 투약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피해자인 B씨 측은 최악의 경우 A씨의 음주·약물 투약 여부를 확인 못 하게 되는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B씨의 아버지는 "신호를 위반해 차와 사람들을 들이받을 정도면 운전자가 사고 당시 어떤 상태였는지 명확하게 밝혀져야 한다"며 "딸이 치료 과정에서 고통을 받고 있어 가뜩이나 상심이 컸는데 최근 경찰로부터 핵심 증거물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소식까지 들으니 황당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는 일반 환자가 아닌 범죄 혐의가 있는 사건에 연루된 환자의 의료기록에 대해서는 의료기관의 보관 의무와 관련한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피의자의 의료 기록이 폐기될 경우 수사기관이 관련 혐의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생기는 것은 물론 때에 따라 피의자가 자신의 방어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며 "영장 발부 여부가 결정되기 전까지라도 의료기관이 관련 기록을 의무 보관하도록 하는 등 관련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검경 간 협력 강화를 통해 수사의 신속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검경 간 유기적인 수사 협조를 통해 영장 집행까지 불필요하게 시일이 소요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음주를 의심할 만한 정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사기관이 증거물 확보를 위해 무리한 수사를 벌여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현행법상 경찰은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고 해당 사건과 연관이 있다고 판단되는 증거물에 한정해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할 수 있다"며 "수사기관은 사안별로 증거물을 확보할 필요성이 있는지 등을 세밀하게 검토하며 적법한 절차에 따라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A씨에 대한 병원 진료 기록 등 다른 증거물을 토대로 음주와 약물 투약 여부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사고 발생 후 지체 없이 영장을 신청했지만 발부받기까지 다소 시일이 소요됐다"며 "추후 관련 수사에 힘써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전문가 "혐의 입증 필요시 의료 증거 보관 의무화 등 규정 필요"
신호를 위반하고 행인을 치어 다치게 한 운전자의 사고 당시 혈액이 폐기 처분돼 경찰이 사고의 음주·약물 관련성을 수사하는 데 난항을 겪고 있다. 혈액 확보를 위한 압수수색 영장 집행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병원의 혈액 샘플 보관 기간이 지나 폐기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범죄 혐의 입증에 필요한 경우 등에 한해 혈액 등 의료 증거를 의무 보관하도록 하는 등 대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오후 2시께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호반마을 삼거리에서 50대 A씨가 운전하던 BMW SUV가 정지 신호를 위반하고 직진하다가 좌회전하던 다마스 승합차를 충격한 뒤 횡단보도를 건너던 B(23) 씨 등 행인 2명을 치었다.
이 사고로 B씨가 전치 14주의 중상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당시 A씨도 사고 충격으로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이송돼 현장에서 음주 측정은 이뤄질 수 없었다.
현행법상 경찰관이 법원이 발부한 영장이나 당사자의 동의 없이 채혈한 경우 이는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다.
이에 경찰은 A씨를 치료한 병원으로부터 A씨의 혈액 샘플을 확보하고자 사고 다음 날인 지난달 30일 병원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 검찰이 보완 수사를 요구해 경찰이 이달 초 영장을 재신청하면서 영장 집행은 지난 10일에야 이뤄질 수 있었다.
그러나 A씨의 혈액은 병원에 남아있지 않았다.
병원은 혈액 샘플 보관 기간이 지나자 이를 폐기 처분했다. 병원 관계자는 "통상 채혈한 지 3∼7일가량 지난 혈액 샘플은 폐기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이 기간이 지나도 영장이 집행되기 전까지 혈액을 보관해야 한다거나 수사기관에 제출해야 할 의무는 없어서 규정에 따라 처분했다"고 밝혔다.
결국 경찰은 가장 확실하고 직접적인 증거인 A씨의 혈액 없이 사고 당시 A씨의 음주와 약물 투약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피해자인 B씨 측은 최악의 경우 A씨의 음주·약물 투약 여부를 확인 못 하게 되는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B씨의 아버지는 "신호를 위반해 차와 사람들을 들이받을 정도면 운전자가 사고 당시 어떤 상태였는지 명확하게 밝혀져야 한다"며 "딸이 치료 과정에서 고통을 받고 있어 가뜩이나 상심이 컸는데 최근 경찰로부터 핵심 증거물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소식까지 들으니 황당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는 일반 환자가 아닌 범죄 혐의가 있는 사건에 연루된 환자의 의료기록에 대해서는 의료기관의 보관 의무와 관련한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피의자의 의료 기록이 폐기될 경우 수사기관이 관련 혐의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생기는 것은 물론 때에 따라 피의자가 자신의 방어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며 "영장 발부 여부가 결정되기 전까지라도 의료기관이 관련 기록을 의무 보관하도록 하는 등 관련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검경 간 협력 강화를 통해 수사의 신속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검경 간 유기적인 수사 협조를 통해 영장 집행까지 불필요하게 시일이 소요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음주를 의심할 만한 정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사기관이 증거물 확보를 위해 무리한 수사를 벌여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현행법상 경찰은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고 해당 사건과 연관이 있다고 판단되는 증거물에 한정해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할 수 있다"며 "수사기관은 사안별로 증거물을 확보할 필요성이 있는지 등을 세밀하게 검토하며 적법한 절차에 따라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A씨에 대한 병원 진료 기록 등 다른 증거물을 토대로 음주와 약물 투약 여부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사고 발생 후 지체 없이 영장을 신청했지만 발부받기까지 다소 시일이 소요됐다"며 "추후 관련 수사에 힘써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