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못 믿을 정부의 폐기물 관리

폐기물 재활용 중요성 커졌는데
전문성 낮은 지자체에 떠넘기고
기업엔 이력 파악 부담까지 지워

화려한 친환경 구호만으론 부족
행정·사법적 처벌도 능사 아냐
투자확대·합리적 제도 마련해야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폐기물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새만금 태양광 부지의 도로 건설에 사용한 제강 슬래그에서 고농도의 독성 물질이 포함된 침출수가 흘러나오고 있다. 반도체 공장의 폐기물인 암모니아수를 변환시킨 황산암모늄이 충분한 처리·확인 절차도 없이 식품기업의 보조사료 제조용 발효제로 둔갑해버리는 일도 있었다. 일상생활에서 분리수거한 플라스틱의 재활용도 도무지 만족스럽지 않다.

폐기물은 일상생활이나 산업현장에서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화학물질을 말한다. 인구가 늘어나고 삶의 질이 향상되면서 폐기물 종류도 많아지고, 양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폐기물 처리가 사회적으로 심각한 부담이 되고 있는 형편이다. 결국 정부가 폐기물의 처리 과정을 엄격하게 관리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국민의 건강과 안전, 그리고 환경의 보존에 신경을 더 많이 쓰는 선진국일수록 정부가 폐기물을 더욱 엄격하게 관리한다.폐기물 처리가 쉬운 일은 아니다.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제도를 만드는 일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기물 처리에 대한 투자와 노력은 절대 외면할 수가 없다. 기업의 입장에서 폐기물 처리가 부담스럽기만 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폐기물의 엄격한 처리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실천하고, 생산에 필요한 원료의 구입 과정에서 불필요한 비용을 줄여주는 길이 될 수도 있다.

강한 독성·감염성·오염성 때문에 인체에 위해가 되거나 환경을 오염시킬 수 있는 ‘지정’ 폐기물은 반드시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매립·소각·방류해야만 한다. 독성을 저감시키는 화학적 방법도 있다. 맹독성의 암모니아수에 황산을 넣어서 저독성의 황산암모늄으로 변환시키면 악취와 독성이 강한 지정 폐기물의 처리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일반 산업 폐기물은 재활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나에게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져버린 폐기물이 남에게는 소중한 자원이 되는 것이 산업현장의 현실이다. 유한한 자원의 재활용은 이제 기업에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폐기물의 재활용이 새로운 것도 아니다. 동아시아의 전통 농업에서 오래전에 정착된 퇴비가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가장 오래된 사례다.실제로 산업현장에서 폐기물의 재활용은 생각보다 훨씬 흔한 일이다. 자동차 타이어용 가황(加黃)고무의 생산에 사용되는 황은 정유공장의 탈황(脫黃) 공정에서 배출되는 폐기물이다. 새로운 재활용 가능성도 등장하고 있다. 전기·전자제품 및 자동차 등에서 금속 광물을 회수하는 ‘도시광산’이 그런 사례다. 전기자동차와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의 배터리에 사용되는 리튬의 재활용에 대한 적극적인 준비도 필요하다.

일상생활에서의 분리수거도 생활폐기물의 재활용을 위한 훌륭한 제도다. 물론 플라스틱을 분리 배출하고, 수거하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다. 운반과 재활용에 대한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썩는 플라스틱이 유일한 대안일 수도 없다. 플라스틱은 반드시 재활용한다는 적극적인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폐기물의 재활용산업은 정부가 반드시 관리해야 한다. 재활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먼지·악취·침출수·소음·진동도 차단해야 하고, 폐기물 재활용으로 생산한 제품의 유해성과 품질도 철저하게 확인해야만 한다. 특히 환경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폐기물에 대한 환경부의 전문성과 함께 윤리성을 획기적으로 강화시켜야 한다. 폐기물 재활용에 대한 전문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지방자치단체에 모든 부담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보조사료를 생산하는 기업이 발효제의 생산 이력까지 파악해야 한다는 주장은 비현실적인 억지다.

폐기물 재활용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폐기물의 수거·운반·재활용에 대한 합리적·종합적인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행정적·사법적 처벌이 능사는 아니다. 모든 부담과 책임을 기업과 소비자에게만 떠넘길 수도 없다. 오히려 기업과 국민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겉으로만 화려한 친환경의 구호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