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 근로자 사고책임 어디까지"…답답한 기업들

원청의 관리수준·책임범위 모호
정부 두차례 지침에도 현장 혼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협력업체 안전보건 관리는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와 ‘하청 근로자 사고에 원청 대표이사가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하는지’인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노동계에서는 기업이 경영책임자의 책임 회피 방안에만 골몰하고 있다고 비판해 왔으나 정작 기업들은 법률의 불명확성으로 구체적인 준비에 애를 먹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법무법인 율촌이 최근 개최한 중대재해처벌법 웨비나 질의 내용을 한국경제신문이 분석한 결과 기업들은 하도급, 외주, 용역업체 근로자 사망사고 시 원청의 책임 범위와 처벌 여부에 가장 큰 관심을 보였다. 해당 웨비나에는 3000여 명의 기업 관계자가 참석해 250개가 넘는 질문을 쏟아냈다.우선 “하도급 업체 소속 근로자 사고 발생 시 원청 대표가 중대재해법상 책임을 지는가”와 관련한 질의가 20.8%(51건)로 가장 많았다. 중대재해법은 원청의 경영책임자에게 소속 사업장 종사자에 대한 안전보건관리 책임을 부과하고 있는데 도급은 물론 용역, 위탁 계약 시 협력업체나 외부업체 관리는 어느 수준까지 해야 하는지가 주된 관심사였다. 사고가 발생하면 용역이나 위탁을 받은 하청업체의 경영책임자도 처벌 대상인지를 묻는 질의도 많았다.

법 제정 당시부터 죄형법정주의 위반 논란을 일으켰던 ‘경영책임자가 중대재해법상 형사책임을 피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의도 14%(35건)에 달했다. 최고안전책임자(CSO)를 두고 안전보건에 관한 전권을 위임했을 경우에도 대표이사가 처벌받는지 등 기존의 우려도 여전했지만, 중대재해 발생 시 대표이사가 기소될 경우 변호사 비용이나 벌금을 회사가 대납할 수 있는지, 안전보건공단 위험성 평가 인증 등을 거치면 책임이 감경될 수 있는지 등 사후적 대처에 관한 우려 또한 적지 않았다.

정부가 지난 8월 ‘가이드북’에 이어 11월 ‘해설서’까지 두 차례 지침을 내놨지만 법령의 불명확성을 호소하는 목소리는 여전했다. ‘CSO를 등기 임원으로 해야 하는지’ ‘안전보건관리자 업무를 기존 안전보건 임원이 겸직해도 되는지’ ‘안전보건 전담조직은 대표이사 직속이어야 하는지’ ‘동일 법인 안에 여러 사업장이 있는 경우 전담조직을 사업장별로 둬야 하는지’ 등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 사업주의 안전 조치에도 근로자의 비협조나 과실로 사고가 발생한 경우나 출퇴근 사고의 경우 중대재해법상 처벌 여부와 재해 예방에 필요한 적정 예산 수준을 묻는 질의도 상당수였다.조상욱 율촌 중대재해센터장(변호사)은 “기업 자문을 하다 보면 아직도 많은 기업이 중대재해법 준비는 물론 사후 대처 방안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며 “법 시행 이후 중대재해 발생 시 고용노동부와 검찰의 조사 방식, 후속 조치에 대한 정부의 선제적 안내가 필요해 보이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곽용희/백승현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