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으로 끝난 투투 대주교의 '진실과화해위원회'
입력
수정
자백 통한 사면으로 용서와 치유 추구…흑인정권, 위원회 권고사항 이행 미흡 26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인권운동의 얼굴 데스몬드 투투 명예 대주교의 별세와 함께 그가 생전에 이끌었던 진실과화해위원회(TRC)의 성과와 한계도 함께 조명됐다. 1996∼1998년 활동한 TRC는 우리나라에서 반민주적 인권유린과 의문사 사건 등을 조사하기 위해 2005년 출범해 현재 제2기로 활동 중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도 영감을 줬다.
TRC는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정책)를 무자비하게 집행한 백인 소수정권의 가해자들과 고문 피해자, 실종자 가족 등이 당시의 인권유린을 고백하고 참상을 증언하는 자리였다.
TRC 위원장을 지낸 투투 대주교는 나중에 7권 분량의 TRC 보고서에서 "희생자들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국민과 나누는 공간"이라고 적었다
2차대전 전범들을 단죄한 뉘렘베르크 재판과 달리 투투 대주교와 14인의 동료 위원들은 사람들이 저지른 행동의 도덕성을 판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적 치유와 화해, 용서를 위한 부화(incubation) 역할을 하기 위해 모였다는 것이다. 끔찍한 폭력을 저질렀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의 하수인들은 위원회에 출석해 자신들의 행위를 고백하는 대가로 사면을 받았다. 투투 대주교는 이에 대해 많은 관찰자와 피해자들이 삼키기 힘든 약이었지만 정의를 인과 응보적이고 처벌적인 면에서만 봐서 그렇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른 종류의 정의가 있다. 회복적 정의가 그것으로 처벌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치유, 조화, 화해로 불균형을 시정하고 깨어진 관계를 복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가를 지불해야 사면을 얻게 돼 있다면서 화해와 용서는 전면 폭로를 통해서만 이뤄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고통스러운 경험이어도 과거의 상처는 곪아 터지게 놔둬서는 안 된다"면서 "그것은 공개돼 깨끗하게 돼야 하며 연고를 발라서 고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TRC 앞에 나온 수백 명의 남편과 아버지들은 자신의 최악의 범죄를 자세하게 진술했다.
그 과정에서 숨겨왔던 비밀과 분열된 충성심이 드러나면서 가족, 친구들과 갈라지기도 했다.
TRC 전직 위원이자 인권 변호사인 두미사 은체베자는 2015년 당시 AFP통신에 "사람들은 사면이 값싸다고 말한다"면서 "왜 싼가.
단지 사람들이 감옥에 안 가서 그런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사실 사면은 형사적 사법 체계를 통하는 것보다 더 무게가 있는 정의였다"며 "사면을 신청하는 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짓을 변호사 입회하에 자신의 입으로 고백한다.
그것은 종신형으로, 씻어버릴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진실을 통해 깨끗해진 남아공'이라는 투투 대주교의 비전은 미완으로 끝났다.
TRC가 976쪽의 보고서를 1998년 발간한 뒤 흑인 자유투사들이 이끄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정권은 TRC의 권고 사항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인권을 유린한 범법자로 자백을 하지 않아 사면을 거부당한 어떤 누구도 기소되지 않았다.
또 청문회를 아예 회피한 장군과 사령관 누구도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았다.
정부는 남아공에 깊이 뿌리내린 부의 불평등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일회성으로 부유세를 부과하라는 권고도 시행하지 않았다.
투투 대주교는 남아공의 첫 민주선거인 1994년 총선 후 20년이 지났을 때 정부는 위원회 권고를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환자인 남아공에 대한 치료를 계속하지 않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영혼은 심각하게 힘든 상태에 남아있다"고 진단했다.
남아공은 여전히 인종 간 거대한 빈부 격차와 흑백 간 제한적 통합, 고질적인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은체베자는 AFP에 투투 대주교의 TRC 비전이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가해자와 피해자 간 화해에 집중하느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빈부 간의 화해를 다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오늘날 TRC의 비전이 없는 남아공은 생각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TRC는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정책)를 무자비하게 집행한 백인 소수정권의 가해자들과 고문 피해자, 실종자 가족 등이 당시의 인권유린을 고백하고 참상을 증언하는 자리였다.
TRC 위원장을 지낸 투투 대주교는 나중에 7권 분량의 TRC 보고서에서 "희생자들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국민과 나누는 공간"이라고 적었다
2차대전 전범들을 단죄한 뉘렘베르크 재판과 달리 투투 대주교와 14인의 동료 위원들은 사람들이 저지른 행동의 도덕성을 판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적 치유와 화해, 용서를 위한 부화(incubation) 역할을 하기 위해 모였다는 것이다. 끔찍한 폭력을 저질렀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의 하수인들은 위원회에 출석해 자신들의 행위를 고백하는 대가로 사면을 받았다. 투투 대주교는 이에 대해 많은 관찰자와 피해자들이 삼키기 힘든 약이었지만 정의를 인과 응보적이고 처벌적인 면에서만 봐서 그렇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른 종류의 정의가 있다. 회복적 정의가 그것으로 처벌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치유, 조화, 화해로 불균형을 시정하고 깨어진 관계를 복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가를 지불해야 사면을 얻게 돼 있다면서 화해와 용서는 전면 폭로를 통해서만 이뤄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고통스러운 경험이어도 과거의 상처는 곪아 터지게 놔둬서는 안 된다"면서 "그것은 공개돼 깨끗하게 돼야 하며 연고를 발라서 고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TRC 앞에 나온 수백 명의 남편과 아버지들은 자신의 최악의 범죄를 자세하게 진술했다.
그 과정에서 숨겨왔던 비밀과 분열된 충성심이 드러나면서 가족, 친구들과 갈라지기도 했다.
TRC 전직 위원이자 인권 변호사인 두미사 은체베자는 2015년 당시 AFP통신에 "사람들은 사면이 값싸다고 말한다"면서 "왜 싼가.
단지 사람들이 감옥에 안 가서 그런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사실 사면은 형사적 사법 체계를 통하는 것보다 더 무게가 있는 정의였다"며 "사면을 신청하는 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짓을 변호사 입회하에 자신의 입으로 고백한다.
그것은 종신형으로, 씻어버릴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진실을 통해 깨끗해진 남아공'이라는 투투 대주교의 비전은 미완으로 끝났다.
TRC가 976쪽의 보고서를 1998년 발간한 뒤 흑인 자유투사들이 이끄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정권은 TRC의 권고 사항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인권을 유린한 범법자로 자백을 하지 않아 사면을 거부당한 어떤 누구도 기소되지 않았다.
또 청문회를 아예 회피한 장군과 사령관 누구도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았다.
정부는 남아공에 깊이 뿌리내린 부의 불평등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일회성으로 부유세를 부과하라는 권고도 시행하지 않았다.
투투 대주교는 남아공의 첫 민주선거인 1994년 총선 후 20년이 지났을 때 정부는 위원회 권고를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환자인 남아공에 대한 치료를 계속하지 않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영혼은 심각하게 힘든 상태에 남아있다"고 진단했다.
남아공은 여전히 인종 간 거대한 빈부 격차와 흑백 간 제한적 통합, 고질적인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은체베자는 AFP에 투투 대주교의 TRC 비전이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가해자와 피해자 간 화해에 집중하느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빈부 간의 화해를 다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오늘날 TRC의 비전이 없는 남아공은 생각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