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따스하게 할 14명의 사랑 이야기…영화 '해피 뉴 이어'

곽재용 감독의 신작 '해피 뉴 이어'는 여러모로 '러브 액츄얼리'(2003)를 떠올리게 한다.

성탄절을 맞은 여러 커플의 이야기를 옴니버스로 구성한 점이나, 단독 주연으로도 손색없을 법한 호화 출연진이 똑 닮았다. 무엇보다 누군가에게는 가장 외로운 시기일 수 있는 연말에 따스하고 착하디착한 사랑 이야기를 선사한다는 점이 그렇다.

'엽기적인 그녀', '클래식' 등 2000년대 초반 한국을 대표하는 로맨스 영화를 선보였던 곽 감독은 이번에는 서로 얽히고설켜 있는 14명의 사랑에 대해 들려준다.

특정 인물에 과하게 쏠리지 않고 다채로운 질감의 사랑을 능숙한 솜씨로 조명했다.
영화는 서울의 특급 호텔인 엠로스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호텔리어 소진(한지민 분)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밴드 활동을 한 친구 승효(김영광)를 오랫동안 짝사랑해왔다.

미루고 미루다 고백도 하지 못했는데, 갑작스레 승효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해온다. 강박증으로 고생하는 호텔 대표 용진(이동욱)은 하우스키퍼 이영(원진아)을 우연히 만나게 되고, 그에게 점점 더 호감을 느낀다.

둘의 관계를 두고 사람들의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공무원 시험에 낙방하고 애인한테서까지 버림받은 재용(강하늘)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마지막으로 "럭셔리하게" 살아보겠다고 엠로스에 투숙한 상태다. 하지만 모닝콜을 해주는 수연(임윤아)과 아침마다 나누는 대화에 점차 웃음을 되찾는다.

도어맨 상규(정진영)는 여느 날처럼 손님을 맞다가 40년 전 첫사랑인 캐서린(이혜영)과 재회한다.
승효가 연출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DJ인 이강(서강준)은 긴 무명 기간을 거쳐 톱스타가 됐다.

매니저 상훈(이광수)은 계약 만료를 앞두고 그가 '큰물'에서 놀 수 있도록 놓아줄 준비를 하고 있다.

소진의 남동생 세직(조준영)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영(원지안)을 좋아만 하다가 결국 친구들의 등쌀에 밀려 고백을 앞뒀다.

소진의 호텔 레스토랑에는 매주 새로운 사람과 맞선을 보는 진호(이진욱)가 새해 마지막 날도 어김없이 맞선을 보러 나왔다.

고등학생의 풋풋한 사랑부터 중년의 완숙한 사랑 그리고 짝사랑부터 우정까지. 영화는 세대와 종류를 아우르는 사랑을 고루 보여준다.

14명의 서사에는 관객이 공감할 법한 '나의 이야기'가 녹아 있을 듯하다.

몰아치는 연출이나 극적인 전개는 없지만, 그 덕에 스트레스 없이 편하게 이들의 사랑을 눈에 담을 수 있다.

다만 상투적인 관계 설정이나 평면적인 캐릭터 등 아쉬운 점도 있다.
배우들의 연기는 주·조연을 막론하고 하나같이 뛰어나다.

특히 사랑하는 남자가 결혼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소진 역의 한지민은 복잡한 감정선의 변화를 섬세한 표정 연기로 담아냈다.

유일하게 중년 로맨스를 선보인 이혜영과 정진영은 무심한 듯 보이지만 무게감 있는 연기로 극의 중심을 잡아준다.

이혜영은 27일 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해피 뉴 이어' 시나리오를 보고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며 "무엇보다 상대역이 정진영씨라는 얘기를 듣고 출연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진영은 "곽 감독이 젊은이들의 사랑이 욕망이라면, 중년의 사랑은 욕망을 절제해 더 진한 사랑이 아니겠느냐고 했다"며 "우리 두 배우에 감독님의 마음을 투영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오는 29일 극장 개봉 및 티빙 공개.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