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안 거치고 만든 반도체 없다…시총 10조엔 넘은 도쿄일렉트론 [이슬기의 주식오마카세]

글로벌 톱3 반도체 장비업체
연일 사상 최고가…시총 10조엔 첫돌파
올해 반도체 장비투자 왕성한 덕
내년에도 증익 예상…"투자 계속될 것"
※이슬기의 주식오마카세에서는 매 주 하나의 일본종목을 엄선해 분석합니다. 이번주 다룰 종목은 반도체 장비기업 도쿄일렉트론입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전세계에 유통되는 반도체 중에 도쿄일렉트론의 장비를 거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가와이 도시키 도쿄일렉트론 사장)
반도체 장비기업 도쿄일렉트론(종목번호 8035)이 상장 이후 처음으로 시가총액 10조엔을 기록하며 장을 마쳤다. 올 들어서만 주가가 71% 오르는 등 연일 사상최고가를 경신한 결과다. 1963년 창업 이후 여러 위기에 봉착했던 도쿄일렉트론은 과감한 결단으로 어려운 국면들을 타개하며 글로벌 3위의 반도체 장비기업이 됐다. 탄탄한 사업구조가 반도체 업황 호조를 만나 주가가 급등 중이다.

○ 반도체 수요 증가에 주가 70%↑

27일 동경증권거래소에서 도쿄일렉트론은 전거래일 대비 2.09% 오르며 6만5600엔으로 장을 마감했다. 전거래일에 이어 사상최고가를 또 경신했다. 시가총액도 지난 24일 처음으로 10조엔을 돌파하며 현재 10조3130억엔을 기록 중이다. 도쿄일렉트론은 올 한해만 주가가 70.83% 올랐다. 지난해 말에만 해도 동경증권거래소 내 시가총액 20위에 머물렀지만, 올해 주가 급등으로 14계단이나 올라 6위에 안착했다.
도쿄일렉트론은 글로벌 3위의 반도체 장비기업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점유율 16.4%)와 ASML(15.4%) 다음으로 12.3% 점유율을 갖고 있다. 특히 반도체 장비 중에서도 코터·디벨로터 부문에선 세계 점유율 90%로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밖에도 웨이퍼 프로버(세계 1위·웨이퍼칩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검사하는 장비), 확산로(세계 1위), 세정장비(세계 2위), 플라스마에칭(세계 2위) 등 반도체 공정 전부문에 있어서 전세계 탑티어를 차지하고 있다. ASML을 비롯해 반도체 장비기업들은 보통 특정 공정에 특화된 장비를 만드는데, 도쿄일렉트론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반도체를 만드는 모든 공정에 들어가는 장비를 만든다. 때문에 도쿄일렉트론은 이 세상에 유통되는 반도체 중 자신들을 거치지 않은 반도체는 없다고 자신한다.
올해의 주가 급등은 전세계 반도체 업체들이 앞다퉈 설비투자에 나선 덕에 이뤄졌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올해 반도체 설비투자 규모는 1520억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종전 최고치인 작년 1131억달러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특히 파운드리 업계 1위 대만 TSMC의 투자금이 전체의 57%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TSMC는 도쿄일렉트론의 고객사이기도 하다.

○ 오일쇼크·AMAT 합병 무산도 자양분 삼아 성장

도쿄일렉트론은 과거 굵직한 위기들을 자양분 삼아 혁신을 일궈냈다. 1963년 종합상사에서 근무하던 쿠보 토쿠오와 코다카 토시오는 통역 등 잡무에 시달리다 당시 부흥하고 있던 반도체 사업에서 기회를 모색하고 싶단 생각에 회사를 창업한다. 집적회로(IC) 테스터 장비를 팔되 상사는 할 수 없는 애프터서비스(A/S)를 추가해 판로를 넓혔다. 1965년 미국 실리콘밸리의 출발이 된 페어차일드와 계약을 체결해 이후 반도체 제조장비 전문업체로 전문성을 쌓는다.당시에만 해도 도쿄일렉트론은 자동차 라디오 같은 일반 전자제품 위탁생산(OEM)으로 매출의 60%를 냈다. 막 창업한 기업으로선 당장 수익이 많지 않은 반도체 장비에만 집중하긴 어려웠다. 그러나 1971년 달러쇼크·1973년 오일쇼크로 상황이 완전히 뒤바뀐다. 민생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전자제품이 팔리지 않고 온전히 재고로 쌓이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도쿄일렉트론은 3년간에 걸쳐 개인소비자대상(B2C) 사업을 모두 접는다. 하지만 당장 타격을 입은 매출도 몇 년 지나지 않아(1975년) 다시 증익 사이클로 돌아선다.

이후 승승장구 하던 도쿄일렉트론에 닥친 시련은 또 있었다. 글로벌 1위 반도체장비업체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의 합병이 무산된 것이다. 미국을 비롯해 여러 국가가 반독점 우려를 표하면서 합병이 무산됐다. 그러나 합병 과정에서 도쿄일렉트론은 돈 안 되는 사업을 접어 그 이후 오히려 승승장구했다. 전자부품상사인 도쿄일렉트론디바이스의 출자비율이 55%였으나 서로 거래가 적고 시너지효과가 크지 않다는 판단에 이 비율을 34%까지 끌어내렸다. 또 사업다각화의 일환으로 진출했던 태양광 전지사업은 완전히 접었다. 도쿄일렉트론은 2012년 해당 분야의 세계 3위였던 스위스 올리콘솔라(Oerlikon Solar)를 인수해 2015년엔 흑자까지 달성했으나 중국이 저렴한 태양광판넬을 대량으로 생산하면서 적자로 돌아섰었다.

○ 올해 사상 최대 실적…내년도 증익 예상

도쿄일렉트론은 반도체 업계를 일본 기업들이 휘어잡았던 1980년대부터 이들과 밀접히 거래하며 경쟁력을 높여왔다. 반도체 기업들의 니즈를 미리 추측하고 이를 현실화 시키는 과정에서 글로벌 탑티어 기업으로 발돋움한 것이다. 또 여기서 안주하지 않고 1990년대 초반 해외에 직접 법인을 설립해 삼성전자나 대만의 TSMC 등 글로벌 기업들을 고객으로 맞이했다. 1992년만 해도 매출의 80%는 일본에서 나왔는데, 현재(3월 말 기준) 도쿄일렉트론의 매출 85%가 해외(중국 28.5%·한국 20.4%·대만 17.9% 등)에서 나온다.
"실패했다 생각하면 금방 결단하는 게 기업문화". 츠네이시 테츠오 도쿄일렉트론 이사회회장은 과거 도쿄일렉트론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도쿄일렉트론은 그 말대로 창업 이후 60년 간 과감히 도전하되 실패는 깔끔히 인정하며 매출성장을 이룩했다. 매출은 1조1000억엔(2019년)→1조4000억엔(2020년)→1조9000억엔(2021년 추정치)으로, 영업이익도 2373억엔(2019년)→3207억엔(2020년)→5510억엔(2021년 추정치)로 수직상승했다.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증권가에선 내년에도 증익을 예상하고 있다. 미토증권은 내년 매출이 2조2000억엔, 영업이익은 6800억엔을 기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올해 대비 16%, 23% 증가한 규모다. 미토증권은 "디램(DRAM) 등 수급 악화에 따른 투자 감소가 우려되고 있으나 디램은 차세대 메모리인 DDR5의 양적투자가 기대된다"며 "낸드(NAND) 플래시 메모리는 고층화되며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