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한국이 하면 개도국도 가능하다고 생각”

윤순진 2050 탄소중립위원장은 한국의 탄소중립 목표를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제조업 비중이 높아 탄소 배출량 감소가 다소 까다롭지만 역으로 에너지 전환을 이뤄낼 시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강점이 있는 국가라는 점도 강조됐다.
[한경ESG] 대한민국 ESG클럽 월례포럼
대한민국 ESG클럽 월례포럼에서 강연을 하고 있는 윤순진 2050 탄소중립위원장.사진=이승재 기자
“정권 변화에 따라 NDC를 낮추거나 후퇴할 수 없다.”윤순진 2050 탄소중립위원회 위원장(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은 지난해 12월 22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ESG클럽 월례포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파리협정에 따라 당사국들은 진전 원칙(principle of progression, 5년에 한 번씩 이전보다 강화된 목표 제출)을 지켜야 한다는 설명이다.

윤 위원장은 지난해 5월 출범한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고 있다. 윤 위원장은 “지역마다 기후변화 영향에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은 맞지만, 빈부와 지역을 가리는 문제는 아니다.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책임감을 느끼고 기후 행동에 적극 나서야 할 때”라며 적극적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했다.

지구 온도와 이산화탄소 농도는 태양 흑점 활동, 공전, 화산 폭발 등 자연 변동으로 인해 꾸준히 변화해왔다. 하지만 최근의 변화는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지난해 8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서 발표한 제6차 보고서는 “기후 체계의 온난화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명백하며 현재의 변화는 자연 변화가 아닌 인간의 사회경제 활동이 원인”이라고 명시했다.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이상기후 현상이 그 증거다. 2021년 미국 북서부 지방의 산불, 서유럽을 강타한 홍수 등 이상기후의 빈도와 강도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합의에서 전진

전 세계 탄소배출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각국은 글로벌 합의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2015년 채택한 파리기후변화협약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온도를 2℃, 1.5℃ 이하로 유지하자는 목표를 담고 있다. 파리협정의 실제 시행 첫해인 2021년 말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는 1.5℃ 온도 상승 억제 목표를 재확인하고 파리협정 세부 규칙(rule book)을 만들었다.

윤 위원장은 온실가스는 더 이상 단순한 감축 수준이 아닌, 중립 달성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탄소중립은 자연기관 흡수나 인위적인 과학기술을 활용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이다. 탄소중립 이슈와 함께 등장한 것이 탄소포집·저장 및 활용 기술(CCUS)이다. 윤 위원장은 “연구에 따르면 CCUS 기술은 저장공간의 한계로 활용 가능한 시기가 2100년까지로 제한되어 있다. 하지만 현시점에서는 온도 상승 억제를 위해 최대한 활용해야 할 기술 중 하나”라고 말했다. 현재 한국의 탄소중립 목표가 국제적으로 중요한 상징성을 지닌다는 점도 강조했다. 한국은 지난해 7월 제68차 유엔무역개발회의에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가 변경됐다. 윤 위원장은 “모두가 한국의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이 하면 개도국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상징성이 부여되면서 한국의 탄소중립 목표, 전환 계획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온실가스 중 감축해야 할 배출원은 7가지다. 그중 가장 많은 75%를 차지하는 것이 이산화탄소다. 핵심 방안으로 이야기되는 것은 에너지 전환이다. 에너지 전환은 농림어업, 토지 이용, 폐기물, 산업공정의 변화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특히 한국은 에너지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원이 약 87%에 달하기에 에너지 전환을 이행하는 것이 탄소중립 달성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에너지 전환 방식으로는 재생에너지를 주목하고 있다. 전 세계 재생에너지 투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선진국에서 재생에너지를 주목하는 이유는 첫째는 기후 대응, 둘째는 일자리 창출이다. 재생에너지를 통해 만들어질 전 세계 일자리는 2560만 개로 추정된다. 이해관계자가 많은 시장은 축소되기 어렵다. 그렇기에 재생에너지는 앞으로도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시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한민국 ESG클럽 월례포럼에서 강연을 하고 있는 윤순진 2050 탄소중립위원장.사진=이승재 기자
국내 제조업 탈탄소 기대

정부도 탄소중립위원회 출범과 함께 탄소감축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탄중위는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 통과와 함께 법정 기구로 자리 잡았다. 탄중위가 제출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는 탄소중립이 실현됐을 때 부문별로 전망되는 미래상과 전환 내용이 담겼다. 윤 위원장은 “과학기술 발전과 혁신적 접근이 없으면 탄소중립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 열린 자세로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정부 차원의 적극적 지원이 필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에 열린 탄소중립위원회 전체 회의에서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2030 NDC가 심의를 통과해 정부에 제출됐다. 최종안으로 제출한 탄소중립 시나리오 A, B안의 차이점은 전환, 수송, 수소, 탈루 부문의 배출량이다. 특히 전환 부문은 재생에너지 비율이 A안은 70.8%, B안은 60.9%로 차이가 나며 B안에서는 LNG를 유연성 전원으로 잔존시켰다는 점이 다르다.

수송 부문에서는 전기, 수소차 비중을 A안, B안에서 각각 97%, 85%로 두고 B안에서는 탄소중립 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차를 포함하는 등의 차이도 있었다. 흡수원은 동일하나 B안의 배출량이 더 크기 때문에 CCUS 기술의 활용도도 높아야 한다.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함께 결정된 한국 NDC 목표는 2030년까지 2018년 배출량 대비 40% 감축으로 상향됐다.

윤 위원장은 “한국 기업의 변화나 움직임은 이제 태동 단계다. 한국은 특히 탄탄한 제조업 기술을 보유하고 있기에 탈탄소만 잘 이뤄낸다면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의 글로벌 혁신 지수는 세계 5위, 아시아 1위 수준으로 탄소중립을 위한 혁신 DNA는 충분하다고 본다. 기후 위기와 경제 위기에 대응해 기회를 선점하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며 앞으로 방향성을 제시했다. 대한민국 ESG를 이끌어가는 기업인과 전문가가 한데 모인 ESG클럽 월례포럼은 2022년에도 더 나은 ESG 경영을 위한 심도 깊은 토론을 이어간다. 신년 첫 월례포럼은 1월 19일 삼성역 파르나스 호텔에서 열릴 예정이다.

조수빈 기자 subin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