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아직은 섣부른 '팬데믹 낙관론'

박영태 바이오헬스부장
데칼코마니 같다. 1년 전과 지금의 글로벌 팬데믹 양상이 그렇다. 연일 코로나 확진자 신기록을 썼던 미국과 유럽에선 지금도 기록적인 확진자가 쏟아지고 있다. 심지어 ‘방역 모범국’으로 꼽히던 호주도 하루 확진자가 1만 명을 넘었다. 연말연시 축제 분위기는 올해도 찾아보기 어렵다.

공교롭게도 1년 전과 지금의 팬데믹을 이끄는 요인은 변이 바이러스다. 1년 전엔 영국에서 생겨난 알파 변이가 대유행을 이끌었다. 지금 바통을 이어받은 변이는 오미크론이다.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에선 우세종이 됐다. 머잖아 델타를 밀어내고 코로나 바이러스의 맹주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코로나 맞설 창과 방패 있지만

1년 전과 지금 닮은꼴은 또 있다. 인류의 손에 ‘무기’가 들렸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인류의 희망은 백신이었다. 화이자·모더나의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백신이 코로나를 막을 ‘방패’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넘쳤다. 코로나 종식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 미국 영국 등에서 접종이 먼저 시작됐을 때 우리가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혹시나 모를 부작용 등을 염려해 구매를 늦췄다던 우리 방역당국은 또 얼마나 곤경에 처했던가.

인류가 이번에 손에 든 무기는 치료제다. 백신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침투하는 것을 막는 방패라면 치료제는 감염된 바이러스를 무찌르는 창이다. 화이자의 팍스로비드, 미국 머크(MSD)의 라게브리오가 그 주인공이다. 특히 팍스로비드는 제2의 타미플루 후보로 기대를 모은다. 임상시험 결과 때문이다. 고위험군 입원·사망 예방 효과가 89%였다. 입원 환자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팬데믹 상황을 바꿔놓을 게임체인저로 지목받는 이유다.

우리 정부는 팍스로비드 36만2000명분에 40만 명분을 추가 계약하려고 협상 중이다. 하루 5000명에게 처방한다고 가정하면 5개월을 버틸 수 있는 물량이다. 올초 백신 부족으로 홍역을 치렀던 것에 비하면 발 빠른 대응이다.아직 낙관은 이르다. 1년 전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중증으로 악화할 가능성은 낮춰주지만, 확산 차단의 확실한 보루가 되지는 못한 백신의 전철을 밟을 수 있어서다.

방역, 대선판에 휘둘려선 곤란

변이가 계속되면서 우리 국민이 올초 집중적으로 접종했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물백신으로 판명 났다. mRNA 백신도 허가 당시 90%를 넘는다는 예방률을 발휘하진 못했다.

그런 점에서 먹는 치료제도 지켜봐야 한다. 실제 현장에선 효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 다음달 말 팍스로비드가 현장에 투입되면 한 달 만에 막을 내린 ‘위드 코로나’를 소환하려는 정치권의 요구가 거세질 게 뻔하다. 대선까지 앞두고 있으니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방역당국이 휘둘려선 안 된다. ‘접종 완료 70%’를 집단면역 잣대로 믿고 시도했던 일상회복(위드 코로나) 때문에 지금 우리는 너무 큰 희생을 치르고 있지 않은가.팬데믹 종식의 출발점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정체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2년이 흘렀지만, 인류가 얻은 지식은 그다지 많지 않다. 나라마다 방역 기준과 백신 접종 간격이 제각각인 게 그 방증이다.

과학계 일각에선 코로나19가 감기나 독감처럼 전염성은 높지만 위력은 떨어지는 감염병이 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오미크론 변이가 그 첫 단계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예측이 꼭 맞아떨어져 새해가 코로나 종식 원년이 되길 바란다. 하지만 아직은 예측에 불과하다는 걸 방역당국도, 우리 국민도 모두 잊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