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능력 없는 LCC에…대한항공 '알짜노선' 나눠주라는 공정위
입력
수정
지면A2
공정위,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조건부 승인'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 인수합병(M&A)의 승인을 위해 공정거래위원회가 29일 내건 전제 조건의 핵심은 공항 슬롯(비행기 이착륙 횟수) 반납과 운수권 재배분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장거리 노선 운항을 축소하고, 저비용항공사(LCC) 등 신규 항공사의 진출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소비자의 선택권 축소를 최소화해 독점을 해소하겠다는 취지지만 국가 기간산업의 경쟁력 확보라는 당초 통합 취지가 퇴색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위 "두 항공사 유럽 등 중복노선 일부 반납해야"
국내 LCC에 넘겨도 활용 못 하면 외국항공사만 이득
운임 인상 등 제한…운항횟수 줄면 인력감축 불가피
○황금노선 축소 불가피
공정위는 시장 경쟁이 제한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노선별로 경쟁 제한성을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중복 운항하는 노선은 △미주 5개 △유럽 6개 △중국 18개 △동남아시아 19개 △기타 5개 등 65개다. 공정위는 운수권을 반납해야 하는 노선 수는 공개하지 않았다. 운수권은 항공 자유화가 이뤄지지 않은 국가와 협상을 통해 정한 항공기 운항 권한이다. 항공 자유화 협정이 맺어진 미국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운수권을 확보해야 운항이 가능하다.공정위는 인천~로스앤젤레스(LA), 뉴욕, 시애틀, 바르셀로나, 장자제, 프놈펜, 팔라우, 시드니 및 부산~나고야, 칭다오 등 10개 노선이 두 항공사 통합 시 100% 독점 노선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 중 미국 등 항공 자유화 노선을 제외한 유럽, 중국, 동남아·일본 일부 노선이 운수권 반납 대상이라는 설명이다. 공정위는 항공업계의 ‘황금노선’으로 불리는 인천~런던, 파리 등 유럽 노선의 운수권이 반납될 수 있다는 뜻도 내비쳤다.영국 노선은 주 17회 운수권 중 대한항공이 10회, 아시아나항공이 7회를 갖고 있다. 독일 노선은 주 14회의 절반씩을 두 회사가 나눠 보유하고 있다. 공정위는 두 항공사가 반납한 운수권을 국내 LCC에 재분배하겠다는 계획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운수권은 관련법령상 국내 항공사에만 재배분이 가능하기 때문에 외국 항공사에 혜택이 돌아갈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알짜시간대 슬롯도 축소
공정위는 운수권 축소와 함께 인천공항 및 외국 공항에서 두 항공사가 슬롯을 축소해야 한다는 전제조건도 내걸었다. 슬롯은 공항에서 시간당 항공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최대 횟수다. 항공사는 출발·도착 공항의 슬롯을 확보해야만 운항할 수 있다.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기준 대한항공의 인천공항 슬롯 점유율은 24%, 아시아나항공은 16%다. 계열 LCC인 진에어(6%), 에어부산·에어서울(3%)을 합쳐도 점유율은 49%에 그치지만 낮 시간대는 57%까지 올라간다. 두 항공사가 탑승객이 몰리는 낮 시간대 슬롯을 반납해야 한다는 뜻이다.공정위는 외국 공항 슬롯에 대해서도 국토교통부와 협의해 이전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에 슬롯·운수권 이전이 끝날 때까지 △운임 인상 제한 △공급 축소 금지 △서비스 축소 금지 등을 이행하도록 했다.
○“남는 비행기, 인력은 어쩌나”
항공업계는 공정위 결정에 대해 “항공업의 현실을 모르고 내린 결정”이라고 반발했다. 장거리 노선은 대형 기종을 보유한 회사만 운항이 가능한데, 코로나19로 부도 위기를 겪고 있는 LCC들이 대형기를 구매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설사 리스 등을 통해 대형기를 마련하더라도 LCC가 노리는 ‘타깃 시장’이 달라 운수권을 적절히 활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운수권을 국내 LCC들이 흡수하지 못하면 외국 항공사들의 시장 점유율만 높아지게 된다.운수권이나 슬롯을 줄일 경우 남는 인력과 비행기를 처리해야 하는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공정위가 운임 인상은 안 된다고 못 박았기 때문에 운항 횟수가 줄면 노선의 경제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인천공항의 환승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정위의 요구대로 인천공항 슬롯을 반납하면 환승 네트워크에 구멍이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등 인근 국가들의 공항으로 환승 수요가 빠져나갈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남정민/강경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