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의 아침 시편] 생업(生業)과 직업(職業)은 어떻게 다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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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업
종로6가 횡단보도
원단두루마리를 가득 실은 오토바이들이
숨을 고르고 있었다.신호총이 울렸다.
장애물을 요리조리 헤치며
동대문시장 안 저마다의 결승선을 향해
순식간에 사라졌다.
좀처럼 등위를 매길 수 없었다.모두 1등이었다.
* 윤효 : 1956년 충남 논산 출생. 198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물결』, 『얼음새꽃』, 『햇살방석』, 『참말』, 『배꼽』 등 출간. 편운문학상, 영랑시문학상, 풀꽃문학상 등 수상.
---------------------------------------------------------------- 벌써 12월 31일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아침, 짧으면서도 강렬한 시 ‘생업’을 배달합니다. 생(生)은 윤효 시인의 문학적 화두 중 하나입니다. 생이란 ‘생명’과 ‘목숨’의 비밀을 여는 열쇳말이죠. 나무로 치자면 가장 큰 가지, 풀꽃으로 치면 가장 실한 줄기가 곧 생입니다.
갑골문에서 ‘생(生)’은 땅 위로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새싹이 돋아나는 것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의미하지요. 그래서 날 생(生)이고, 낳을 산(産)입니다. 이 글자는 살 활(活)과 있을 존(存)의 뜻까지 아우르지요.
생업을 위한 일은 가장 절박하고, 숭고하면서 거룩한 일입니다. 그렇기에 모두가 1등인 것이지요. 자기 몸을 오토바이처럼 부릉부릉 달군 사람들의 생은 뜨겁습니다. 그 최선의 힘으로 일생을 완성하는 과정 또한 뜨겁지요.
윤효 시인은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완생(完生)’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그의 어머니는 90 생애를 누리고 편안히 눈을 감으셨는데, 작지 않은 체구였지만 아주 가볍게 육신을 비우고 먼길을 떠났습니다.
그는 “죽음이란 생명이 없어지는 현상이지만, 그 생애를 살아온 이가 가슴 가득 품었던 꿈과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겪어야 했던 눈물겨운 희로애락을 그냥 그렇게 무화시켜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마지막 호흡을 통해 자기 생애를 완성한다는 적극적인 의미로서 ‘죽음’을 ‘완생’이란 말로 고쳐 부르면 자기 생의 꿈을 이루기 위해 저마다 더욱 애쓰게 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탄생한 시 ‘완생’은 이렇습니다.
‘그렇게 좋아하시던 홍시를 떠 넣어/ 드려도/ 게간장을 떠 넣어 드려도/ 가만히 고개 가로저으실 뿐,/ 그렇게 며칠,/ 또 며칠,// 어린아이 네댓이면 들 수 있을 만큼/ 비우고 비워 내시더니/ 구십 생애를 비로소 내려놓으셨다.// ―완생(完生).’
어머니가 인생의 마지막을 정리하면서 오랜 생애를 완성하는 과정, 그런 어머니를 정갈하게 보듬어 안는 아들의 배웅 인사가 한 폭의 수묵담채화처럼 단아합니다.
‘날이 풀리자 아파트 마당에 실금이 또 하나 늘었다./ 어제는 비까지 내려 더 아프게 드러났다./ 풀리지 않는 일 탓이겠으나 심란했다./ 손바닥에 자주 눈이 갔다./ 내내 뒤숭숭했다./ 그런데 오늘 보니 풀 죽을 일이 아니었다./ 실금을 따라 푸른 것들이 일제히 돋아나 있었다.’
그의 문학적 관심은 ‘실금을 따라’ 살아나는 ‘푸른 것들’처럼 살아 있는 생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그 생명의 뿌리에서 나무와 풀과 꽃의 심성이 돋아나지요. 이는 세상을 대하는 시인의 문학적 자세이기도 합니다. 그가 제1회 풀꽃문학상 수상소감에서 밝힌 고백이 이를 대변하기도 합니다.
‘푸른빛 풀꽃들이 일러주었습니다. 나대지 말 것, 치장하지 말 것, 단칸살림을 하되 단아와 절제를 잃지 말 것, 외롭고 쓸쓸한 자리가 가장 정결한 성소(聖所)임을 알 것, 다만 그 낮은 자리에서 조촐히, 다만 조촐히 나부낄 것... 꾀죄죄하니 짧고 옹색한 제 시가 작디작은 풀꽃만큼의 울림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은 순전히 그들 풀꽃에게서 배운 것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시인의 화두는 이렇게 ‘생업’과 ‘완생’ ‘생명선’의 순환 고리를 타고 오늘도 우리 곁에 부릉부릉 살아 있는 오토바이 소리로 다가옵니다.
올 한 해 ‘원단두루마리를 가득 실은 오토바이들’처럼 신호총 앞에서 숨을 고르고 기다려 온 우리, 모두가 1등이었습니다. 참으로 애 많이 쓰셨습니다. 새해에는 둥글고 환한 ‘생명선’처럼 빛나는 날들 가득 누리시길 빕니다.■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종로6가 횡단보도
원단두루마리를 가득 실은 오토바이들이
숨을 고르고 있었다.신호총이 울렸다.
장애물을 요리조리 헤치며
동대문시장 안 저마다의 결승선을 향해
순식간에 사라졌다.
좀처럼 등위를 매길 수 없었다.모두 1등이었다.
* 윤효 : 1956년 충남 논산 출생. 198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물결』, 『얼음새꽃』, 『햇살방석』, 『참말』, 『배꼽』 등 출간. 편운문학상, 영랑시문학상, 풀꽃문학상 등 수상.
---------------------------------------------------------------- 벌써 12월 31일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아침, 짧으면서도 강렬한 시 ‘생업’을 배달합니다. 생(生)은 윤효 시인의 문학적 화두 중 하나입니다. 생이란 ‘생명’과 ‘목숨’의 비밀을 여는 열쇳말이죠. 나무로 치자면 가장 큰 가지, 풀꽃으로 치면 가장 실한 줄기가 곧 생입니다.
갑골문에서 ‘생(生)’은 땅 위로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새싹이 돋아나는 것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의미하지요. 그래서 날 생(生)이고, 낳을 산(産)입니다. 이 글자는 살 활(活)과 있을 존(存)의 뜻까지 아우르지요.
생업(生業)은 목숨 걸고 집중하는 일
이 가운데 생업(生業)은 우리가 목숨을 영위하기 위해, 먹고살기 위해 집중하는 일입니다. 각자 맡은 일을 하는 직업(職業)과 다르죠. 윤효 시인은 분초를 다투며 원단을 실어 나르는 시장통 오토바이 짐꾼들을 보면서 ‘생업’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이 시에는 ‘숨을 고르고’ 잔뜩 긴장해 있다가 ‘땅’ 하는 총소리를 듣자마자 튀어 나가는 달리기 선수들의 속도가 응축돼 있습니다. ‘장애물을 요리조리 헤치며/ 동대문시장 안 저마다의 결승선을 향해/ 순식간에’ 사라지는 이들의 삶에 어찌 등위를 매길 수 있겠습니까.생업을 위한 일은 가장 절박하고, 숭고하면서 거룩한 일입니다. 그렇기에 모두가 1등인 것이지요. 자기 몸을 오토바이처럼 부릉부릉 달군 사람들의 생은 뜨겁습니다. 그 최선의 힘으로 일생을 완성하는 과정 또한 뜨겁지요.
윤효 시인은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완생(完生)’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그의 어머니는 90 생애를 누리고 편안히 눈을 감으셨는데, 작지 않은 체구였지만 아주 가볍게 육신을 비우고 먼길을 떠났습니다.
그는 “죽음이란 생명이 없어지는 현상이지만, 그 생애를 살아온 이가 가슴 가득 품었던 꿈과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겪어야 했던 눈물겨운 희로애락을 그냥 그렇게 무화시켜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마지막 호흡을 통해 자기 생애를 완성한다는 적극적인 의미로서 ‘죽음’을 ‘완생’이란 말로 고쳐 부르면 자기 생의 꿈을 이루기 위해 저마다 더욱 애쓰게 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탄생한 시 ‘완생’은 이렇습니다.
‘그렇게 좋아하시던 홍시를 떠 넣어/ 드려도/ 게간장을 떠 넣어 드려도/ 가만히 고개 가로저으실 뿐,/ 그렇게 며칠,/ 또 며칠,// 어린아이 네댓이면 들 수 있을 만큼/ 비우고 비워 내시더니/ 구십 생애를 비로소 내려놓으셨다.// ―완생(完生).’
어머니가 인생의 마지막을 정리하면서 오랜 생애를 완성하는 과정, 그런 어머니를 정갈하게 보듬어 안는 아들의 배웅 인사가 한 폭의 수묵담채화처럼 단아합니다.
‘오늘 보니 풀 죽을 일이 아니었다’
그에게 ‘완생’의 의미는 새 생명의 탄생과도 맞닿아 있지요. ‘생명선’이라는 시에 그 장면이 나옵니다.‘날이 풀리자 아파트 마당에 실금이 또 하나 늘었다./ 어제는 비까지 내려 더 아프게 드러났다./ 풀리지 않는 일 탓이겠으나 심란했다./ 손바닥에 자주 눈이 갔다./ 내내 뒤숭숭했다./ 그런데 오늘 보니 풀 죽을 일이 아니었다./ 실금을 따라 푸른 것들이 일제히 돋아나 있었다.’
그의 문학적 관심은 ‘실금을 따라’ 살아나는 ‘푸른 것들’처럼 살아 있는 생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그 생명의 뿌리에서 나무와 풀과 꽃의 심성이 돋아나지요. 이는 세상을 대하는 시인의 문학적 자세이기도 합니다. 그가 제1회 풀꽃문학상 수상소감에서 밝힌 고백이 이를 대변하기도 합니다.
‘푸른빛 풀꽃들이 일러주었습니다. 나대지 말 것, 치장하지 말 것, 단칸살림을 하되 단아와 절제를 잃지 말 것, 외롭고 쓸쓸한 자리가 가장 정결한 성소(聖所)임을 알 것, 다만 그 낮은 자리에서 조촐히, 다만 조촐히 나부낄 것... 꾀죄죄하니 짧고 옹색한 제 시가 작디작은 풀꽃만큼의 울림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은 순전히 그들 풀꽃에게서 배운 것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시인의 화두는 이렇게 ‘생업’과 ‘완생’ ‘생명선’의 순환 고리를 타고 오늘도 우리 곁에 부릉부릉 살아 있는 오토바이 소리로 다가옵니다.
올 한 해 ‘원단두루마리를 가득 실은 오토바이들’처럼 신호총 앞에서 숨을 고르고 기다려 온 우리, 모두가 1등이었습니다. 참으로 애 많이 쓰셨습니다. 새해에는 둥글고 환한 ‘생명선’처럼 빛나는 날들 가득 누리시길 빕니다.■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