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정 뮤지컬 음악감독 "뮤지컬은 아름다운 거짓말…찬란한 어둠속에서 함께하죠"

피플스토리
뮤지컬계 '직은 거인' 김문정 음악감독

명성황후·레베카 등 50여개 작품 담당
국내 첫 뮤지컬 전문 오케스트라 창단

"아무리 힘들어도 지휘봉 잡으면 마음 편안
배우·스태프 육성하는 아카데미 운영이 꿈"
뮤지컬의 성패는 음악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탄탄한 스토리와 함께 좋은 음악이 뒷받침돼야 작품의 생명력이 살아난다. 관객들에게 음악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깊이 각인시키는 음악감독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까닭이다.

김문정 음악감독(50)은 수많은 러브콜을 받는 ‘뮤지컬계의 작은 거인’이다. ‘레미제라블’ ‘맘마미아’ ‘명성황후’ ‘맨 오브 라만차’ ‘레베카’ ‘광화문 연가’ 등 수많은 작품이 김 감독의 손을 거쳤다. 지금까지 공연한 작품은 초연작 기준으로만 50여 편에 달한다. 데뷔 20주년을 맞은 지금도 한 달 평균 30회가량의 공연을 무대에 올린다. 인터뷰를 위해 만났을 때도 그는 서울 퇴계로 충무아트센터에서 ‘레베카’ 공연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잠자는 시간을 빼곤 전부 일하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지치기도 하지만 억지로 극복하려고 하기보다 그저 버티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무리 힘들어도 지휘봉을 잡으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제가 기분이 좀 안 좋다 싶으면 ‘빨리 지휘봉 가져다 드려라’라고 얘기할 정도예요.”

‘보이는 음악’에 빠지다

서울예술대에서 작곡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건반 세션 활동을 했다. 그러다 1997년 ‘명성황후’ 건반 연주자로 뮤지컬 음악을 처음 시작했다. 음악감독으로 정식 데뷔한 건 2001년 ‘둘리’였다. 뮤지컬 음악에 빠져든 이유를 묻자 그는 “대중음악과 달리 1절, 2절 등 정해진 형식이 없어 자유롭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노래를 들으면 캐릭터들과 무대가 그대로 머릿속에 그려지는 ‘보이는 음악’이라 더욱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뮤지컬은 ‘진실로 아름다운 거짓말’이에요. 영화는 실제 배경을 찍지만 공연은 그렇지 않잖아요. 배우들은 무대 한쪽을 가리키며 ‘저게 파도야’라는 식의 거짓말을 하면서 진짜처럼 연기하고, 관객들은 그게 가짜인 줄 알면서도 속아줍니다. 그리고 그 거짓말 안에서 함께 진정성을 발견하고 공유하는 것이 뮤지컬이죠. 이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일입니까.”워킹맘이었던 그는 시간적인 여유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도 쉬지 않고 실력을 키워왔다. 덕분에 각종 뮤지컬 어워즈를 휩쓸었다. 올해엔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국무총리 표창까지 받았다.
맡고 있는 직책도 다양하다. 2019년 국내 최초의 뮤지컬 전문 오케스트라 ‘더 피트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지휘를 맡고 있고, 한세대 공연예술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최근엔 강력한 뮤지컬 팬덤을 바탕으로 KBS 예능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도 출연했다. 음악감독을 비롯한 다양한 경험을 담아 첫 에세이집 《이토록 찬란한 어둠》도 최근 출간했다.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제가 데뷔할 때만 해도 국내에서 1년에 뮤지컬 2~3편을 올리는 게 전부였는데 이젠 작품 수도 많아졌고 시장도 산업화됐어요. 이 과정에서 창작자와 제작진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었는데 그런 변화 덕분에 오늘날의 저도 있는 것 같습니다.”

“리더십 중요…소통도 공부도 끊임없이”

음악감독은 공연을 이끄는 주요 리더 중 한 명이다. 무대 아래 작은 피트석에서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추며 지휘할 뿐 아니라 배우들의 노래 지도, 넘버(삽입곡) 재배치 등도 그의 몫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다양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리더십이 중요한 자리다.

“무엇보다 신의를 지키기 위해 소통을 많이 하려고 해요. 쉽진 않지만 음악을 기본 바탕으로 하는 작업이라 일반 직장에서의 관계보다는 부드럽게 풀리는 것 같습니다. 또한 공연이란 게 다수의 사람이 동시에 같은 목표를 갖고 공동의 결과물을 내는 것이다보니 더욱 그렇죠.”

음악 공부도 게을리해선 안 된다. 국악, 재즈 등 다양한 장르가 뮤지컬 음악에 결합되기 때문에 끊임없이 공부하고 관련 아티스트도 섭외해야 한다. “‘맨 오브 라만차’엔 플라멩코 음악이 들어가 있었는데 익숙하지 않아 이론을 다 찾아보고 아티스트도 직접 찾았어요. ‘서편제’를 할 땐 국악을 공부해야 했고 ‘맘마미아’ 땐 아바(ABBA) 음악을 할 줄 아는 분을 찾아야 했죠. 힘들지만 스스로 발전하는 기회라 생각하고 있어요. 그 분야의 전문 연주자들과 함께할 수 있어 흥분되고 설레기도 하죠.”김 감독은 장기적으로는 뮤지컬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영화와 달리 뮤지컬 쪽에선 배우, 스태프, 연출, 안무가 등을 한데 모아 육성하는 곳이 없어요. 언젠가 이런 아카데미를 통해 창작 뮤지컬을 발전시키고 많은 인재를 육성하고 싶습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