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카페·문화공간…일상이 된 근대유산

근대 유산, 그 기억과 향유

이광표 지음
현암사 / 288쪽│2만원
최근 근대 유산에 대한 관심이 급속히 커지고 있다. 인천의 개항장 거리 일대, 일제강점기 상흔이 남아 있는 군산의 도심, 군항제가 열리는 창원 진해구 도심은 인기 명소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인 군산 이성당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린다. 경주 대릉원 옆 황리단길에선 젊은이들이 1970~1980년대 식으로 꾸민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고 옛날 사진관에 들러 흑백사진을 찍는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1500년 전 신라 고분과 50여 년 전 근대 풍경이 어우러진 모습이 흥미롭다.

《근대 유산, 그 기억과 향유》는 우리 일상에서 살아 숨쉬는 근대 유산의 흔적을 찾고, 이를 어떻게 기억하고 향유하는지 살펴본 책이다. 문화재위원인 이광표 서원대 교수가 썼다.근대 유산은 과거이자 현재다. 과거가 연속되는 동시에 새로운 변화가 축적된다. 따라서 근대 유산의 보존과 발전을 위해선 이 시대 대중의 수용과 인식이 중요하다. 최근엔 많은 사람이 일상에서 근대를 기억하고 경험하고 소비한다. 근대 건축물을 문화공간, 카페 등으로 활용하는 것은 이미 익숙한 풍경이 됐다. 옛 서울역, 서울 당인리발전소, 대구와 청주의 연초제조창처럼 규모 있고 유명한 공간뿐만 아니라 제주 도심의 순아커피, 문경의 가은역 카페처럼 작고 아담한 공간도 적지 않다.

근대 건축물과 같은 물리적인 공간을 기억하는 것을 뛰어넘어 근대의 분위기나 이미지 자체를 되살려 소비하는 경향까지도 나타나고 있다. 오래된 브랜드에 대한 향수도 다시 제품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곰표 밀가루의 브랜드를 활용한 곰표 맥주, 말표 구두약의 브랜드를 활용한 말표 흑맥주 등이 대표적이다.

아쉽고 우려할 만한 일도 많다. 근대 유산을 훼손하거나 파괴하는 일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근대 건축물을 활용하는 방식도 지나치게 단순하다. 거의 대부분은 전시장, 공연장, 카페다. 저자는 “원래 건물의 맥락과 의미는 무시되고 있다”며 “고민과 성찰이 결여된 너무나 손쉬운 활용”이라고 지적한다.근대 유산을 체계적으로 이론화하는 작업도 아직 부족한 편이다. 저자는 “근대 유산은 그 양상이 워낙 다양하고 사회적 주목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론화 작업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그럼에도 근대 유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흥미로운 변화가 포착되고 있기 때문에 좀 더 논리적이고 깊이 있는 탐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