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법인 부회장·거래소 출신도…횡령 앞엔 '속수무책'

오스템임플란트 '그들의 태만'

빅4 회계법인·거래소 출신…
거물급 사외이사진도 유명무실
감사팀 인원, 2년 새 절반으로
회계법인은 인덕회계가 담당

거래소와 감독원은 뭐했나
"작년 동진쎄미켐 지분 매수 때
자금 출처 의심했어야" 지적도
임플란트 국내 1위 기업인 오스템임플란트에서 직원 이모씨가 1900억원에 육박하는 회삿돈을 빼돌린 사건이 발생했다. 회사는 이씨를 횡령 혐의로 고소했다. 사진은 서울 강서구 오스템 임플란트 본사. /연합뉴스
사상 초유의 횡령 사건이 발생한 오스템임플란트가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시장 관계자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국내 대형 회계법인 부회장과 한국거래소 출신이 사외이사로 있는 상황에서 엄청난 규모의 횡령이 이뤄졌기 때문에 신뢰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주식 거래가 장기간 정지될 것으로 예상되자 금융당국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피의자가 횡령 자금으로 추정되는 돈으로 주식을 사 지분공시까지 했음에도 이상징후를 포착하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유명무실한 사내 내부통제 시스템

5일 엄태관 오스템임플란트 대표는 입장문을 내고 “완벽한 재발방지대책을 수립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오스템임플란트는 지난 3일 공시를 내고 자금 관리 직원인 이모씨가 1880억원의 자금을 횡령한 사실을 확인해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엄 대표는 “이번 사고를 뼈저리게 반성하고 내부통제시스템을 강화해 확고한 경영개선계획을 수립하겠다”며 “거래 재개 시점을 앞당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엄 대표의 선언에도 시장은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다. 오스템임플란트의 내부통제 시스템이 유명무실했다는 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현재 오스템임플란트 사외이사 3명 중 1명은 정준석 EY한영회계법인 부회장이다. 밝혀지지 않은 횡령이 과거에도 있었다면 빅4 회계법인 최고위층을 사외이사로 영입하고도 분식회계를 막지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 회사 상근감사인 조재두 전 한국거래소 상무도 누구보다 자본시장을 잘 이해하는 인물이다.

이해 가지 않는 대목도 있다. 오스템임플란트는 감사팀 인원을 2년 새 절반(11명)으로 줄였다. 이후 대형 횡령사고가 터졌다. 회계감사는 인덕회계법인이 맡고 있다.

금융당국은 미리 알 수 없었나

시장 관계자들이 의문을 갖는 또 하나의 포인트는 금융당국이 미리 알아챌 수 없었냐는 점이다. 지난해 10월 1일 횡령 피의자 이씨가 동진쎄미켐 주식을 1430억원어치나 매수하면서 시장의 관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주식 매수 금액은 횡령 자금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만약 이때 금융당국이 이씨의 자금 출처를 수상하게 여겼다면 횡령을 조기에 발견할 수도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당시 이씨가 자금 출처를 ‘투자수익’이라고 적었음에도 금융감독원은 이를 수상히 여기지 않았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특별한 문제가 없는 이상 작성한 자금 출처가 사실인지 따져보진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금융당국이 들여다봤다 하더라도 조기에 잡아낼 수 있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한국거래소에서 이상거래 징후를 포착해 심리에 나서고, 또 이를 금감원에 통보해 검찰 수사와 재판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1년 이상 걸리기 때문이다. 거래소가 심리에 나서면 특정 계좌 주인을 대상으로 입출금 내역과 자금출처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를 한다. 실제 한국거래소는 지난해 10월 이씨의 동진쎄미켐 주식 매수를 계기로 이씨의 계좌를 분석하기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투자자 피해는

금융당국은 경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고 회계 감리 등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수사를 통해 횡령 금액과 날짜가 특정되고 재무제표가 수정되면 이를 근거로 회계 감리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정은보 금감원장은 이날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금감원이 구체적인 사실을 파악하기 어렵다”며 “모니터링을 하며 추후 대응 방법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오스템임플란트의 거래정지는 다른 종목과 금융상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날 최규옥 오스템임플란트 회장이 지분 7.64%를 보유 중인 APS홀딩스는 전 거래일 대비 8.1% 떨어졌다. 최 회장은 자사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렸는데 통상 금융회사는 담보 주식의 거래가 정지되면 대출 만기를 연장해주지 않는다. 최 회장이 상환을 위해 보유 자산을 처분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 최 회장이 들고 있던 APS홀딩스의 오버행(잠재적 매물) 우려가 높아졌다.

상장지수펀드(ETF)도 영향을 받았다. ETF에 호가를 제시하는 시장조성자(LP)들이 오스템임플란트의 상장폐지 등을 가정하고 거래 정지 전 종가 대비 낮은 가격을 매겨 호가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스템임플란트를 7.21% 담고 있는 TIGER 의료기기 ETF는 이날 순자산가치(NAV)가 1만9368원이었는데, 실제는 이보다 낮은 1만9215원(괴리율 0.79%)에 거래됐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투자자들은 원래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매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오스템임플란트가 담긴 펀드도 비상이다. 하나은행은 오스템임플란트가 단 1주라도 담긴 77개 펀드에 가입한 고객들에게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신규 가입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이슬기/서형교 기자 surugi@hankyung.com